[리뷰] <킬러의 보디가드>
2015년 <킹스맨>과 2016년 <데드풀>의 만남이자 두 영화 2편의 사전 맛보기라 할 수 있겠다.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저급하리만치 돼먹지 못한 말들의 향연에 의한 코믹, 지극한 사실성과 과도한 잔인성을 앞세워 오히려 현실감 없이 재밌게만 느껴지는 액션의 극단적이고 모순적인 조합의 영화가 최근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2015년 <킹스맨>과 2016년 <데드풀>이 그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데, B급의 메이저화 또는 메이저의 B급화이겠다.
공교롭게도, 아니 의도한 것이겠지만 두 영화에서 극단적 조합에 결정적 역할을 한 두 배우가 한 영화에서 뭉쳤다. 제목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이 흐르는, <킬러의 보디가드>. <킹스맨>의 라이언 레이놀즈와 <데드풀>의 사무엘 L. 잭슨이 그들인데, 성공적 캐릭터를 거의 그대로 가져 왔다.
백인과 흑인의 버디 케미 코믹 액션은 1980~90년대 <리셀웨폰> 시리즈, 1990~2000년대 <러시아워> 시리즈로 상종가를 쳤다. 자신의 한계를 완벽히 깨닫고 그 한계 내에서 자기 위치성을 뽐내며 시대가 원하는, 즉 대중이 원하는 입맛에 취합하기도 하고 오히려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기도 했다. <킬러의 보디가드> 역시 다분히 킬링타임용 일회성 무비라 칭하겠지만 가히 역대급의 자기 위치성을 뽐냈다. 현재 비슷한 시기에 나와 훨씬 월등한 위용을 뽐내는 <청년 경찰>과 비교해보는 것도 한 재미겠다.
복잡한듯, 단조로운
내용은 뭐, 적당히 꼬아서 적당히 마무리 한다. ⓒ제이앤씨미디어그룹
내용은 복잡한듯 단조롭다. 가타부타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고 바로 인물의 사연과 함께 캐릭터성을 선보인다. 자칭 '트리플 A'급 보디가드 마이클 브라이스(라이언 레이놀즈 분)는 특급 고객을 지키지 못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는 마약에 쩔은 변호사 보디가드나 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재판석에 앉게 된 벨라루스 대통령이자 독재자 두코비치(게리 올드만 분), 그는 악행을 증언하려는 증인들을 계속 암살해 무죄로 풀려나고자 한다. 그 와중에 인터폴은 아내의 사면을 조건으로 내밀며 사상 최고 최악의 킬러 다리우스 킨케이드(사무엘 L. 잭슨 분)를 증인으로 내세우고자 한다. 하지만 역시나 두코비치의 표적이 되어 재판이 열리는 국제형사재판소로 향하는 길이 만만치 않다.
이에 킨케이드 운반 책임자이자 브라이스의 옛 연인 아멜리아는 브라이스의 트리플 A급 복귀를 돕겠다는 조건으로 브라이스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브라이스와 킨케이드는 30번 가까이 서로를 죽이고자 했었던 철천지 원수지간, 서로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가 유일하게 서로인 만큼 실력 하나는 최고인 사이. 과연 이들은 모든 악연을 뒤로 하고 서로를 지키며 안전하게 국제형사재판소로 가서 두코비치를 끌어내리는 결정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두 주인공의 다양한 합(合), 케미
모든 게 완전히 다른 두 주인공의 합(合)이 영화의 모든 걸 이룬다.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영화는 브라이스와 킨케이드의 합(合)으로 거의 모든 걸 처리한다. 전작에서 엄청난 말빨을 선보였던 그들의 녹슬지 않은 욕의 향연의 합, 길지 않았지만 절정 고수들인 그들간의 맨몸 액션의 합, 정반대라고 해도 될 정도로 다른 성격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게 되는 극단끼리 통하는 합, 그리고 절묘하진 않지만 적어도 삐그덕거리지는 않는 시나리오의 합까지. '케미'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중에서 이 영화가 재미있는 결정적 이유는 다름 아닌 시종일관 쉬지 않고 나불대는 말 대결에 있다. 한마디 한마디 절대로 빠지지 않는 쌍욕은 덤이다. 그리고 그에 상반되는 느낌의 액션도 중요하다. 모든 액션이 다 그렇진 않지만, 상당히 진중하고 굉장히 사실적이다. 잔인하다는 얘기다.
<킹스맨>과 <데드풀>은 이 지점에서 다시금 불려나온다. 관객은 이 두 영화 덕분에 수많은 전작에서 로맨틱하고 진중한 분위기를 선사한 이 두 영화배우가 이토록 코믹하고 잔인한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 하등 기시감을 느끼지 못한다. 아주 친근한 것이다.
결정적으로, 이 둘은 여자와의 관계로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서로를 돕는다. 악의 화신이라 할 만한 킨케이드는 사랑의 화신이고, 고객을 지키는 게 일인 브라이스는 자기 여자 하나 지키지 못한다. 이 영화를 이루는 여러 모순적 재미들의 모습이 여기에도 통용되는 것이다.
결국 사랑이다
B급 정서가 다분한 '바퀴벌레'의 사랑을 보여주는, 그들만의 사랑 방정식이다. ⓒ제이앤씨미디어그룹
그렇다면, 여러 의미로 살인마(?)들인 이들이 꼼짝 못하는 여인들은 영화에서 어떻게 비춰질까? 죽음과 함께 하는 '바깥' 일을 하는 남자에 비해 여자는? 여자도 마찬가지로 죽음과 함께 한다. 즉 동종업계에서 일하는 이들이다. 비록 영화 전체적으로는 조력자에 불과하지만, 이 남자들보다 훨씬 더 강단 있는 모습을 비롯해 좌중을 압도하는 모습도 선보인다.
전쟁 중에도 사랑은 꽃핀다고 했던가. 자칫 증언 허락 시간에 늦어 두코비치가 풀려날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속에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수줍게 사랑을 고백하는 브라이스나 두코비치의 암살자들이 맹렬히 쫓아오는 와중에도 여유롭게 브라이스의 속마음을 전해주는 킨케이드의 모습은, 상황에 맞지 않는 어이없음을 전해주기보다 은은한 웃음꽃을 전해주기에 충분하다.
결국 사랑이다. 이 영화에서 사랑은, 특히 킨케이드 부부의 사랑은 다분히 영화의 병맛적인 느낌을 극도로 살리기 위한 장치일지 모르나 그럼에도 얼굴이 찌뿌려지지 않고 박장대소에 가까운 웃음이나마 보낼 수 있는 건, 우리 모두 사랑을 향한 열망이 그만큼 크고 사랑을 대하는 방식과 눈이 그만큼 유하다는 반증이겠다.
이 영화에서 뭔가를 끄집어내는 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반면 이 영화를 통해 내 안의 무엇을 끄집어내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저 마음 놓고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하나씩 하나씩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게 욕이든, 웃음이든, 환희든, 살인 충동이든, 사랑 열망이든,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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