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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문소리가 전하는 여성의 현주소, 여배우의 현주소, 영화의 현주소 <여배우는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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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여배우는 오늘도>


18년차 한국 대표 여배우 문소리가 연출, 각본, 주연을 '꿰찬'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 ⓒ메타플레이



모든 콘텐츠는 '나'로부터 시작된다. 그, 그녀, 그들, 우리, 너도 모두 '나'이다. 그래서 창의적이고 참신하고 독특하고 전에 없던 이야기들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놀랍도록 황홀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궁극적으로 '보편타당'을 지향하는 것이다. 아니, 굳이 지향하지 않아도 이야기는 거기에서 출발해 거기로 나아간다. 


글쓰기의 기본이라 하면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는 '일기'이다. 그렇다면 글쓰기의 끝은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는 자서전 정도가 될까? 이를 영화로 옮겨보면 어떨까. 연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우선 자신을 돌아보는, 그중에서도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부분을 영화로 만드려 할 것이다. 


올해로 18년차 '여'배우 문소리, 한국을 넘어 세계에 자랑하는 연기파 배우다. 하지만 본인의 말대로 200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2010년대 후반기에 들어선 예전 같지 않은 분위기다. '여배우'의 숙명일까, '엄마'로서의 한계에 직면한 것일까, '영화계'의 변화 때문일까. 그녀가 직접 연출, 각본, 주연으로, 그녀의 모든 것을 보여준 <여배우는 오늘도>를 통해 들어보자. 


여배우, 생활인, 영화인 문소리


문소리 배우를 통해 보는 여배우, 생활인, 영화인의 3막. ⓒ메타플레이



영화는 세 개의 단편을 1막, 2막, 3막으로 나눠서 보여준다. 먼저 '여배우' 문소리 편. 친구들과 북한산 등반을 하는 문소리 배우는 우연히 한 제작사 대표를 만난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내려와 막걸리 한잔 하는데 또 만난 제작사 대표 일행. 그녀에게 무작위로 쏟아지는 '여배우'에 대한 생각 없는 질문들, 벅차다. 


다음으로 '생활인' 문소리 편.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며느리, 누군가의 아내로 살아갈 뿐인 문소리 배우. 그녀는 어느 역할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지만, 거기엔 항상 유명인의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모든 걸 뒤로 하고 도망가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마지막으로 '영화인' 문소리 편. 유명하지 않은 감독의 빈소에 가게 된 문소리 배우. 단촐한 빈소를 뒤로 하고 나오려는 찰나 누군가가 부른다. 그녀와 함께 쓰레기 같은 이 감독의 옛 작품에 함께 출연했던 남자 배우다. 흑역사와 자리를 함께 하려니 짜증부터 난다. 그런 와중에 젊은 여자가 빈소를 찾더니 오열을 하는데... 


여성의 현주소, 여배우의 현주소, 영화의 현주소


영화는 짜임새 있게 여성, 여배우, 그리고 영화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메타플레이



'문소리'를 구성하는 것들을 여러 시각으로 나눠서 바라보았다. 자신의 다른 모습을 봐달라는 호소, 자신이 감당하고 있는 바에 대한 공감에의 바람, 영화계를 향한 폭로 또는 비판적 시각이 담겨 있다. 그럼에도 그녀가 말하고 싶었던 건 '영화인' 문소리가 아니었을까. 문소리는 영화가 가장 잘 맞고 영화를 가장 좋아할 게 분명하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여자로서 살아가는 영화배우 또는 영화배우가 여자로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고찰 말이다. 간단히 말해서, 여배우로서 예뻐야 하는 게 좋은지, 매력이 있어야 하는 게 좋은지. 데뷔 때부터 주연으로만 살아온 그녀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연급으로 하향조정되고 있는 게 '여배우'이기 때문이 아닌지. 


그것도 모자라, 그녀는 그녀이기 때문에 해야 한다고 명명된 삶의 모양새가 있다. 집에 오면 여배우가 아닌 여성이 된다. 엄마 노릇, 딸 노릇, 아내 노릇, 며느리 노릇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지만 그 모든 노릇 노릇 사이에 공인된 여배우의 역할이 겹쳐진다. 각종 노릇을 하기에도 여배우 노릇을 하기에도 벅찬데, 혼용되어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려 하니 죽을 맛이다. 술을 끊을 도리가 없다. 


그 삶을,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에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을 듯. 그래서 다분히 노골적인 폭로성의 다큐멘터리도 아닌, 그렇다고 다분히 영화적인 설정의 비현실적인 천상의 메시지를 선보이는 것도 아닌, 충분히 설득력 있으면서 조금의 자학과 자기반성과 자신으로의 스포트라이트성 메시지를 담은 현실적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여성의 현주소, 여배우의 현주소, 영화의 현주소다. 


이 영화를 봐야하는 이유


영화 내외적으로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들이 있다. ⓒ메타플레이



얼핏 이 영화를 볼 이유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 어쨋든, 자신이 겪었던 일을 선보이든, 누군가가 겪었던 일을 선보이든, 충분히 일어날 만한 일을 선보이지 않았는가. 그 자체로 우리완 하등 상관없는 세계다. 하지만 문소리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어느 편을 보나 영화인이 아닌 사람이 나오고 문소리 배우를 포함한 영화인들과 엮인다. 결국 모든 영화인이 향하는 곳은 관객을 포함한 대중이기 때문일 텐데, 그래서 그녀의 삶은 그 자체로 우리와 지대한 상관 관계에 있는 것이다. 이건 특별한 존재인 영화배우와 평범한 일반인이 모두 살아가는 게 비슷하지 않겠냐는 시각과 또다른 동질성의 시각이다. 


이 영화가 단순히 개인으로서의 삶의 정리 또는 대중과의 소통으로서의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영화'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는 건, 가장 공을 들인 게 분명한 마지막 3막에 있다. 지극히 영화인으로서의 시각과 의견을 담고 있는 3막은 누가 봐도 홍상수로 대표되는 양식을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영화계와 영화인을 향한 수준 있고 강도 높은 비판과 영화를 향한 진정성 어린 연민을 담고 있다. 


문소리 배우의 오랜 팬으로서 또는 문소리라는 이름을 오래도록 들어온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특별하고 재미있는 영화이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본 모든 사람이 그런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일단 보면, 문소리의 팬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배우는 오늘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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