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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스노든과 국정원의 시대... 예언은 적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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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조지 오웰의 <1984>"세기의 고발자"라는 칭호가 붙은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조셉 스노든의 폭로가 미국을 넘어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는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프리즘이라는 기간 통신망을 구축해 통화내역과 인터넷 사용내역 등의 개인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해왔다는 사실을 폭로하였다.

프리즘은 전산 시스템으로 주요 기업이나 단체, 개인 등의 서버 컴퓨터에 접속해 이메일, 영상, 사진, 음성 데이터, 파일 전송 내역, 통화 기록, 접속 정보 등 온라인 활동에 관한 모든 것을 전방위적으로 수집할 수 있다. 그는 이어 2차 폭로 내용으로 프리즘을 이용해 민간인 사찰은 비롯해 중국과 홍콩 등 세계 국가들을 상대로 다양한 정보를 해킹하고 수집해왔다고 말했다. 단순히 논란으로 그칠지, 이 시대를 새롭게 규정할 거대한 쟁점이 될지 지켜봐야겠다. 

조지 오웰의 <1984> ⓒ 문예출판사

조지 오웰의 기존 소설들 중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버마시절> 등은 확연히 그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혹자는 <1984> 역시 그의 어린 시절을 빚 대어 그리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지 않다는 쪽으로 무게가 실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작가 조지 오웰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소설 <1984>에 치중해서 진행해 나가도록 하겠다. 이와 함께 떠오르는 책 한 권과 단어가 하나 있다. 조지 오웰의 <1984>와 '빅 브라더'. 많은 사람들이 스노든의 폭로에서 이 책을 떠올렸는지, <1984>의 판매가 급증해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고 한다. 정말 똑같다고 할 수밖에 없는, 예언서와도 같은 작품이다. 

<1984>는 스토리텔링에서 이 소설이 가지는 재미를 완전히 취득하기란 힘들다. 이 소설은 수많은 상징과 폭로·고발의 성격을 띤 분위기에서 참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때는 제목과 같이 1984년을 배경으로 한다. 세계는 세 개의 강대국인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로 나뉘어져 있다. 오세아니아의 하급공무원인 윈스턴 스미스는 역사를 다시 쓰는 임무를 맡고 있다. 정부의 방침에 따라 기존의 모든 사실들을 갈아엎는 것이다. 일종의 조작이다. 

오세아니아의 국가원수이자 모든 것의 정점에 있는 '빅 브라더'(대형)는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어디를 가나 그의 초상이 걸려 있다. 여기에 "빅 브라더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말이 쓰여 있다. 스노든이 폭로한 프리즘의 실체. 마치 CCTV처럼 모든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다는 섬뜩한 사실. <1984>을 보면 방송과 감시를 겸용하는 ‘텔레스크린’이 언제 어디서든 지켜보고 있다. 조지 오웰의 예언 아닌 예언은 실제가 되었다.

2011년부터 미국에서 방영되어 얼마 전 시즌2를 마치고 내년에 시즌3으로 돌아올 예정인 미국드라마가 한 편 있다. 제목은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Person of Interest)’.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다. 한 천재 프로그래머가 뉴욕시의 범죄를 사전에 막기 위해 ‘머신’이라는 컴퓨터 시스템을 개발해 모든 CCTV, 전자 통신을 분석해 범죄를 예측할 수 있게 하였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보여준 윤리적 문제와 요즘 점점 부각되고 있는 감시 시스템의 문제를 잘 버무려 낸 수작이다. 15년 전 나왔던 윌 스미스 주연의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도 생각난다. 이 영화에서 미국 국가안보국(NSA)는 첨단 장비를 동원해 음모를 꾸민다. 


어느 날 윈스턴은 우연히 낡은 일기장을 하나 구입한다. 일기장을 작성하는 것이 극형에 처할 정도의 범죄임을 알면서도, 그는 일기장을 작성한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줄리아라는 여자와 정을 통하게 된다. 미혼 남녀가 정을 통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렇게 그들은 스미스가 낡은 일기장을 구입한 점포 위에 있는 작은 방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형제단'이라고 알려진 혁명단체에 가입한다. 

그러나 이 작고 구석진 방조차 '텔레스크린'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었다. 윈스턴은 끌려가 구타를 당하고 각종 고문을 받는다. 결국 그는 '둘 더하기 둘은 다섯'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사실에 동의하게 된다. 모든 사실을 조작하는 정부의 방침에 두말 않고 따라야 한다는 뜻일 게다. 문뜩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영화 <넘버 3>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조필의 대사.

"내, 내가 하, 하늘 색깔 빨간색! 하면 그때부터 무, 무조건 빨간 색이야."

비록 더듬거리며 한 말이지만 그 안에 내포된 뜻이 무시무시했다. 윈스턴에게 주어진 최후의 고문. 그가 가장 싫어하는 쥐가 가득한 상자를 머리에 씌우려는 고문이었다. 윈스턴은 결국 이 고문을 자기 대신 애인인 줄리아에게 행하라고 빌게 된다. 한 인간으로서의 자존심과 도덕성을 완전히 뭉개버렸다. 윈스턴은 그렇게 빅 브라더에 대한 반항을 멈추게 된다. 

시대를 넘나드는 '예언'이 된, 조지 오웰의 비판과 풍자

<1984>는 어느 모로 보나 당시 나치 독일의 히틀러와 소련의 스탈린 독재를 형상화하고 있다. 빅 브라더는 스탈린과 닮았고 빅 브라더를 위시한 정부가 행하는 짓은 히틀러가 한 짓과 닮았다. 또한 혁명단체인 형제단의 지도자 '골드스타인'은 트로츠키처럼 그려졌다. 극 중에서 골드스타인이 한때는 충성스러운 당의 지도자였다는 점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시각 자체가 미국과 영국을 위시한 진영의, 공산주의 국가에 대한 공격적 시각에서 파생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1984>는 단순히 공산주의 국가에 대한 공격적 시각이 아니라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으로 보는 것이 맞다. 그건 조지 오웰의 또 다른 걸작 <동물농장>도 마찬가지이다. 조지 오웰은 '전체주의' 비판을 위해, 당시의 대표적 인물들을 차용해 형상화한 것뿐이다. '수단'이 '목적'으로 둔갑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1984>에서 정작 중요시 다루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빅 브라더가 행하는 '역사'와 '언어'의 통제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조작하며 지배하고 있다는 설정이다. 사상경찰, 텔레스크린과 고문보다 훨씬 무서운 장치들이지만,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기에 신경을 쓰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도 아무도 모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조지 오웰이 진정 하고 싶은 말이고, 예언이다. 

극 중에서 윈스턴을 비롯한 수천 명의 사람들은 모든 사실과 역사를 정부의 방침에 따라 왜곡하고 조작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모든 기록은 없어지거나 날조되고 책은 깡그리 다시 쓰여 지고 그림은 다시 그려진다." 언어 또한 마찬가지이다. "다른 사고방식을 일절 불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구어인 영어를 대체하는 신어를 개발한다. 기존의 생각에 의한 이해같은 것은 없어져버릴 것이었다. 

이런 기초적인 지배 수단 위에 '전쟁'이라는 거대한 지배 수단을 덧씌운다. 전쟁은 여러 모로 대중을 컨트롤하기 쉽게 한다. 이미 세계는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날 수 없는 상황에 있음에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에 의해 전쟁은 계속 일어난다. 대중들의 눈을 그곳으로 쏠리게 함과 동시에, 쓸데없이 부(富)를 계속 소비함으로써 대중의 안락한 삶을 방해하려는 속셈이다. 

일본이 역사 교과서를 왜곡하려 하고, 중국이 동북공정과 서남공정으로 역사를 조작하려 하며,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전쟁을 일으키는 누군가들. 그리고 스노든이 폭로한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실체와 대한민국 국가정보원(NIS)의 선거개입 논란 등. '빅 브라더'들은 세계 곳곳에 상존하고 있다.

이처럼 어느 한 개체가 모든 걸 독점하고 왜곡하고 조작하는 사회. 1949년에 조지 오웰이 바라본 1984년의 사회이다. 그리고 2013년 현재의 사회이다. 그의 당대 비판과 풍자는 시대를 넘나드는 예언이 되었고, 현실이 되었다. <1984>에 나오는 한 구절로 마무리 해본다. 빅 브라더의 당 슬로건이다. 지금 이 세계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분들도 이 슬로건에 찬성하고 있을까?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오마이뉴스" 2013.6.28일자 기사  (본 포스팅에는 편집 전 원본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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