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나간 책 다시읽기

서평으로 먹고사는 이 사람의 독서법은?

반응형



[지나간 책 다시읽기] 금정연의 <서서비행>


<오마이뉴스> 책동네에서 서평족(서평가라고 하기엔 턱없이 부족함으로)으로 지낸 지도 10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그동안 쉬지 않고 기사를 써왔고, 영화 리뷰를 비롯해서 기사의 수가 어느새 140개가 넘었다. 얼마 되지 않는 원고료이지만 어쨌든 돈이 생긴다는 욕심과 내 이름 석자 조금이나마 알려보자는 허영심에서 그토록 줄기차게 써왔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이 있다. 서평을 계속 써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게 뭐냐? 답은 글로 먹고살기. 그럼 서평 쓰려고 책을 읽는 것이냐? 답은, '어느 정도 그렇다'. 나는 책을 읽는 것보다 책 자체를 좋아했으니까 딱히 부정할 생각은 없다. 서점 MD 같은 역할을 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좋은 책이 있으니 우리 같이 읽어 보자라는 생각으로.  

그래 좋다. 그러면 자신 있냐? 책으로 먹고살 자신이 있냐고? 지금 책으로 먹고살고 있고(편집자), 훗날에도 책으로 먹고살고 싶다(서평가?). 하지만 그것이 지금으로선 요원한 생각이라는 걸 알고 있다. 나의 글이 정말 훌륭하거나 정말 맛깔나지도 못할 뿐더러, 결정적으로 이 방면에서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은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굳이 거론하자면 (순전히 나의 생각이지만, 어느 정도 증명된) 로쟈 이현우 교수, 활자유랑자 금정연 서평가, 어크로스 출판사 김류미 편집자 등이다. 질투유발자인 동시에 롤모델,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책의 홍수에서 탈출하기


<서서비행> 표지 ⓒ 마티



<서서비행>(마티)은 선배 서평가 로쟈 이현우 교수가 '다음 세대의 서평가'라 칭하는 활자유랑자 금정연의 서평 책이다. 로쟈의 서평들이 인문학에 발을 적시고 있다면, 금정연의 서평은 에세이에 가깝다. 무슨 말인고 하면, 책에 대한 평이라기 보다 책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는 것이다. 제목 '서서비행'에서 '비행'의 한자가 '飛行'인 이유이자, 그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단어라고 생각되는 '활자유랑자'라는 수식이 생긴 이유이다. 그는 책 속에 파묻히지 않은 것이다. 아니, 더 이상 파묻히기 싫었나 보다.

그는 프리랜서 서평가로 활동하기 전, 온라인 서점 알라딘 MD로 3년 반 동안 있었다. 그곳에서 하루에도 몇 십, 몇 백 권씩 쏟아져 나오는 책을 다루었고, 책의 홍수에 파묻혔다. 덕분에 누구보다도 책 소개를 잘 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많은 회의감도 들었을 것이다. 직업에 대한 회의는 물론이고, 책에 대한 회의, 서평과 책 소개에 대한 회의까지.

어느새 생활을 가득 채운 책의 홍수에 가뭇없이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 나는 상상의 비행기를 탄다. 발아래 책들의 풍경을 바라본다. 바라본다. 바라본다. 전혀 상관없을 것만 같던 책과 책이 서로 겹치며 다채로운 무늬를 만들어내는 장관을 그저 넋을 잃고 바라보는 것이다. (중략) 몇 권의 책을 나란히 펼쳐보다 창밖으로 던져버린 후, 먼 곳에 아물거리는 또 다른 책을 향해 선회하기도 하면서.(프롤로그 중에서)

내가 <오마이뉴스> 책사랑 서평단으로 일주일에 두 권을 받아들고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책의 홍수에 휩쓸리고 싶은 마음에 부럽기도 하면서, 막상 그렇게 되면 책이 싫어질까봐 두렵기도 하다. 그는 책의 홍수에서 허우적거리다가(자신의 말로는) 혹은 책한테 너무 미안해서 (나의 생각으로는) 그곳에서 탈출했고, 그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금정연의 "서평 스타일"

그런데 위에 옮겨놓은 책의 프롤로그 중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책을) 바라본다. 바라본다. 바라본다."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바라보고만 있다. 왜 그럴까? 이것이 그의 독서법이고 서평쓰는 법이란 말인가? 어느 정도 동의한다. 서평을 쓰기 위해서 꼭 책을 오롯이 읽고 완전히 이해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의 서평법은 방법론 자체가 다르다. 덕분에 서평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여기 하나의 실례가 있다. 형형색색의 표지 속에 움베르토 에코의 지적 작업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을 보라. 제작비 4억, 제작기간 5년, 원고지 3만 6000여 매로 이루어진 명실상부한 '블록버스터' 기획을 앞에 두고 나는 묻는다.(본문 중에서)

이 책의 한 챕터이자,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의 서평 중에서, 책에 관련 된 내용은 위에 3줄을 포함해 서평의 반도 차지하지 않는다. 즉, 그의 서평을 읽고 서평이 다루는 책을 온전히 이해하고자 하길 바라서는 안 된다. 어느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말하길, "(책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 서점 리뷰나 신문 기사에 다 나온다. 나까지 그 정보 더미에 하나 더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자신의 콘텐츠에 대한 자신감의 발로이자, 서점 MD 출신의 트라우마가 작용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서평가는 암울하다

그는 결코 암울한 서평가가 아니다. 이 시대의 어느 서평가, 서평족, 즉 서평으로만 먹고사는 사람들 중에서 단연 압도적이다. 그럼에도 암울하다. 서평가가 암울하다는 것이다.

책이 나오면 일차적으로 편집자 손에서 기본적인 리뷰가 이루어진다. 그 후에 서점 MD의 손에서 이차적으로 소개가 이루어지며, 이후 신문사와 신문사를 통한 서평가, 기고가들에 의해 소개가 이루어진다. 이 순서가 꼭 들어 맞는 건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그러하기에 서평가들의 서평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들어가지 않는 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책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요즘, 아무도 찾지 않는 책에 대한 서평을 과연 누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주요 일간지에 책 소개를 하면 불티같이 팔려나갔던 옛날이 그리운 지금, 서평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과감히 그 길로 뛰어들었다. 그의 지금은 어디이고, 그가 갈 길은 어디일까. 아마도 내가 가야 할 길이 그 곳에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의 목차를 간단히 살펴 보자. '비행준비', '이륙', '고도확인', '야간비행', '악천후', '임시착륙'. 나는 지금 어느 단계일까. 아마도 비행준비 단계이겠지. 아니면 악천후일지도(괜히 겸손을 떠는 것이 아니라). 그는 어느 단계일까. 그는 스스로 임시착륙의 단계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렇다는 건 이 시대의 젊은 서평족들은 아무도 제대로 된 착륙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부디 다시 이륙해서 제대로 된 착륙을 하길 바란다.

나는 아직 금정연식 서평을 쓸 수 없다. 안 쓰는 걸지도 모르고. 앞으로도 쓰지 않을 수도 있다. 방법론이 다른 것도 있겠지만, 책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책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 사람들이 책을 읽고 지혜를 얻어 그로 인해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포부는 좋지만 암울하기 그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는 책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냥 책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사실 책의 홍수를 피할 생각이 없는 것일 수도. 서평가는 암울하지만, 서평가 금정연은 암울하지 않은 이유이다. 그는 서평계의 새로운 세계를 열고 있다.



"오마이뉴스" 2013.5.8일자 기사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