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책 다시읽기] <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
<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 표지 ⓒ 갈라파고스
"당신은 가난한 자들이 도움 받기를 원하지만, 나는 빈곤이 아예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19세기 프랑스의 위대한 문호 '빅토르 위고'가 한 말이다. <레 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이라는 소설을 통해 가난한 자들을 그려냈으니, 본인이 가난했을 것 같지만 그는 풍요로운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정치에 직접 뛰어들었고, 역사의 현장으로도 직접 뛰어들었다. 세상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잘 알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자신의 현실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풍요로운 삶을 체험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풍요로운 삶 속에 있던 사람들은 가난한 현장으로 뛰어들 수 있다.
빅토르 위고가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고, <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갈라파고스)의 저자 장 지글러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책에서 밝히는 대로 그는 최초의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으로, 8년 동안 기아에 허덕이는 세계 각국에서 임무를 수행하였다. 직접 보고 느낀 8년이 책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기아와의 투쟁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보고서
기아의 위험에 가장 심하게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농촌 빈민, 도시 빈민, 재해 희생자들이라고 한다. 저자는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하는 8년 동안, 기아가 전염병처럼 창궐하는 영토에서 이들을 만나고 다녔다. 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아메리카 등지였다고 한다. 그곳에서는 기아에 의한 대학살이 벌어지고 있었다. 저자는 대표적인 곳으로 과테말라와 북한 등을 소개하고 있다.
"(2005년) 어제 대통령궁에서 (과테말라의) 부통령 에두아르도 스테인 바리야스가 설명했듯이 열 살 미만 어린이의 49퍼센트가 영양실조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서 9만 2천 명이 작년에 기아 또는 기아의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었죠. 그러니 한 가정의 아버지, 형들이 이따금씩 밤이면 농장의 과수원으로 숨어들어 과일 몇 알, 채소 몇 줌을 훔쳐오는 사정을 이해하시겠죠..."(39쪽)
"2400만 북한 주민 가운데 600만 명이 심각한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 1996년부터 2005년까지 반복적인 기아로 인해 200만 명가량이 목숨을 잃었다."(71쪽)
저자는 기아의 실체를 파악하고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원인에 대해서도 집요하게 파고들어, 기아에 허덕이는 주민들의 식량권을 인정하지 않는 '적'들을 고발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곡물업자인 '카길'이 엄청난 자본으로 시장을 독점해서 식품 가격의 폭등을 야기 시킬 수 있음을 폭로하고, 인도에서는 대지주들이 고위급 인사들과 줄을 대고 무농지 노동자나 빈민들을 압사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세계무역기구,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이 조직적인 기아의 묵시록의 중심에 서서 빈곤을 키우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 중 특히 세계무역기구는 시장의 자유를 규제하는 개입은 절대하지 않는다는 방침 아래에서 상품과 서비스, 자본, 특허의 자유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는 '부익부 빈익빈'의 결정적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2009년 유엔무역개발 회담에 모인 세계 각국 대사들이 이 정책에 대해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한 바 있다.
"농업 교역의 자유화는 지극히 불평등한 각국 농업 간에 경쟁을 강화하고 그에 따라 농산물 가격의 불안정을 야기하므로 필연적으로 식량 상황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과 재정 상황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168쪽)
신자유주의 시장 체제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가 보다. 저자는 "도처에서 항상, 사회적인 통제를 비롯한 그 어떤 규제도 받지 않는 시장은 죽음을 불러온다. 죽음은 빈곤과 기아를 통해서 온다."(177쪽)며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꼬집고 있다.
저자의 전작들을 아우르는 완전판
장 지글러는 사회학자이자 저명한 기아 연구자이다. 그는 2007년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에 이어 2008년 <탐욕의 시대>(갈라파고스)의 두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세계적인 문제적 지식인의 반열에 올랐다. 이번에 출간된 신작 <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는 그의 기아 문제를 다룬 책들의 완전판 같은 느낌이다. 공교롭게도 세 권 전부 '갈라파고스'라는 출판사에서 번역 출판된 점이 눈에 띈다.
이전 두 책을 간단히 살펴보자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기아의 진실, 즉 그 실태와 배후의 원인들을 대화 형식으로 알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 이어서 <탐욕의 시대>는 세계의 빈곤화를 주도하는 이들이 누구이며, 이들에 의한 부채와 기아가 어떻게 가난한 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지 고발하고 연대를 촉구하는 책이다. 앞의 책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진실을 말해주고 있다면, 뒤의 책은 문제적 발언과 주장을 서슴지 않고 표출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번 책 <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는 앞의 두 책이 가지는 요소들을 모두 아울렀고, 저자가 앞의 두 책을 집필할 당시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이었기 때문에 하지 못했던 말들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이전 책을 접하지 못한 분들도 이 책 하나면 그가 했던 모든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빈곤 퇴치를 위한 2퍼센트
그렇다면 그가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궁극적인 말은 무엇일까? 책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인구의 두 배에 해당하는 120억 인구가 먹을 수 있는 식량을 비축하고 있음에도 하루에 10만여 명이, 5초에 1명의 어린이가 죽어가고 있는 이유는 글로벌 금융 자본 포식자들의 탐욕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세계적인 부자 축에 속할 것이다. 이들이 가진 재산의 2%만 거두어들여도 세계의 빈곤과 기아를 몰아낼 수 있다고 한다. 해결 방법은 이미 나와 있지만, 실행에 옮기기란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2000년 9월 유엔의 193개 회원국 가운데 146개국이 뉴욕에 모여 새천년에 즈음하여 인류를 가장 가혹하게 괴롭히는 주요 비극들의 목록을 작성했다. 기아와 극빈, 수질 오염, 유아 사망률, 여성 차별, 에이즈, 전염병 등이 목록에 올랐으며 이에 맞서기 위한 투쟁의 목표도 정했다. 각국 정상과 행정부 수반들은 이 여덟 가지 비극, 그중에서도 특히 기아를 몰아내려면 15년 동안 해마다 800억 달러를 모아야 한다고 계산했다. 그런데 2010년 현재 10억 달러 이상을 보유한 1210명의 재산(약 4조 5천억 이상, 2010년 기준)에서 2퍼센트만 거두어들이면 이 목표액에 도달할 수 있다."(328쪽)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민중의 지지와 구체적인 행동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각국의 의회나 국제기구들을 통해 변화를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자본 포식자들의 탐욕을 중지시킬 수 있는 강력한 법안을 마련하고, 궁극적으로 농촌과 농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결 방법도 나와 있고 강력한 무기도 존재한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의지뿐. 민주주의라는 강력한 체제를 이용해 합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계 시민의 전적인 연대가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오마이뉴스" 2013.1.11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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