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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누구도 보기 힘든 인간 본연의 그곳에서 일어나는 살인 <살인을 예고합니다> [지나간 책 다시읽기] 애거서 크리스티의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 없는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 세계 추리 소설계를 대표하는 동시에 역사상 가장 많은 소설을 판 소설가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무지막지한 재미를 선사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소설에는 이야기와 함께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도 있으니, 이보다 완벽한 소설가의 예는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그녀는 1920년 첫 소설을 시작으로 살아생전 60년 가까이 동안 80여 편의 작품을 썼는데, 말년에 스스로 가장 좋은 작품 10편을 선정한 바 있다. 등 그녀의 전성기인 1920~40년대 초중기 작품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와중에 50년대 이후 작품들이 몇몇 눈에 띈다. 그중 하나인 는 1950년작으로 그녀의 전성기 끝자락에 나온 소설이다. 이후에도 족히 30편.. 더보기
외부와 내부의 적, 무의미한 세상을 감당해야 했던 인간 이순신 <칼의 노래> [지나간 책 다시읽기] 김훈 작가의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위인 세 명을 뽑자면,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조선의 세종대왕, 이순신을 뽑지 않을까 싶다. 광활한 만주 대륙을 정복하고, 길이 남을 한글을 창제하였으며, 백전 백승으로 나라를 지켰다. 이 세 위인은 드라마(태왕사신기, 뿌리깊은 나무)와 영화(명량)은 물론 소설(뿌리깊은 나무, 칼의 노래)로 잘 알려져 있다. 두 왕에겐 정치적 내홍이 없었다. 큰아버지 소수림왕이 국가의 틀을 완벽히 잡고 아버지 고국양왕이 잘 이은 와중에 뒷탈 없이 정복 전쟁에만 힘을 쏟은 광개토대왕, 아버지 태종이 대대적 숙청으로 완벽하게 왕권을 강화한 와중에 백성들을 위해 힘을 쏟은 세종대왕. 이러나 저러나 그들은 '왕'이었던 것이다. 반면, 이순신에게는 평생 정치적 내홍이.. 더보기
'가족'은 다시 쓰여져야 한다, 소설 <고령화 가족> [지나간 책 다시읽기] 천명관 소설가의 쫄딱 망한 영화감독에 아내와 이혼한 후 혼자 사는 마흔여덟의 중년 남자 '나'는 죽기보다 싫은 일을 감행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칠순이 넘는 엄마 집에 얹혀살게 된 것. 칠순이 넘은 엄마는 별말 없이 나를 받아 주었고 이후에도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나를 챙겨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엄마는 그 연세에도 화장품을 팔러 밖으로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아버지는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가셨다. 엄마 집에는 쉰두 살이 된 형 '오한모', 일명 '오함마'가 얹혀살고 있었다. 그는 백이십 킬로그램, 폭력과 강간, 사기와 절도로 얼룩진 전과 5범의 변태성욕자, 정신불구의 거대한 괴물... 한마디로 인간망종이다. 교도소를 오가고 사업을 말아먹은 후 엄마 집에 삼 년째 눌어붙.. 더보기
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말라고요! 소설 <미스 함무라비> [서평] 지난 5월 21일 시작된 JTBC 월화 드라마 , 지금까지 본 적 없던 법원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솔직히 담아내 괜찮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법정 드라마나 영화는 많이 봐와서 익숙하고 거기에 검사나 변호사 또한 굉장히 익숙한 편이지만, 판사는 전혀 익숙하지가 않다. 이 드라마가 신선하고 색다른 재미를 주는 건, 다름 아닌 판사들이 주인공이 되어 판사들의 일상과 일을 그리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드라마의 원작 소설 (문학동네)는 글쓰는 판사로 유명한 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문유석의 세 번째 책이다. 그는 '현직 부장판사'가 전하는 법과 사람과 일상에 대한 전문적 혹은 비전문적 글을 모아 이미 두 권의 베스트셀러 (21세기북스), (문학동네)을 내놓은 바 있다. 저자의 기존 두 책이 판사.. 더보기
1960년대 미국과 아웃사이더 가해자를 들여다보다 <인 콜드 블러드> [지나간 책 다시 읽기] 트루먼 카포티의 1959년 11월 15일, 미국 서부 캔자스 주의 작은 마을 홀컴에서 클러터 일가족 네 명이 근거리에서 엽총에 맞아 무참히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들은 모두 밧줄에 묶여 있었으며 각기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다. 하지만, 단서를 찾기 힘들었던 바 확실한 증거를 찾기 힘든 완전범죄에 가까웠다. 캔자스 주에서 명성이 자자한 클러터의 집인 만큼 범인들이 훔쳐간 게 엄청날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집에서 없어진 건 고작 4~50달러의 현금과 라디오, 만원경 따위였다. 이 믿기지 않는 살해 동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범인의 자백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을 터였다. 이에 범인들은 캔자스 주로 다시 돌아오는 모험을 저지르는데... 한편, 홀컴 마을은 이 사건 이후 범인이 잡힐 때.. 더보기
뼈아픈 진실과 함께 나아가는 삶과 사랑 <남아 있는 나날> [지나간 책 다시읽기] 가즈오 이시구로의 이야기가 옆길로 새는 건, 옆길로 새는 것처럼 느껴지는 데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야기의 원류를 제대로 이어나갈 능력이 없거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거나, 옆길로 새는 것도 전부 이야기 원류의 거대한 판 안에 있다거나. 대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으면 차라리 거대한 판을 만들어 버리곤 한다. 그런데, 여기 오로지 거대한 판을 만든 것도 아니면서 옆길로 새는 것처럼 느끼게끔 하거니와 그것들이 전부 이야기 원류에 포함되어 있게 하는 작가가 있다. 가즈오 이시구로가 그인데, 그가 전하는 이야기는 그 자체보다 샛길의 이야기가 훨씬 재밌거니와 그 샛길이 원류로 이어지기에 결국 이야기 전체의 완성도가 터무니 없이 올라간다. 아직 그의 소설을 와.. 더보기
세계 3대 추리소설이 선사하는 위대한 이야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지나간 책 다시읽기] 1800년대부터 시작되었다는 추리소설, 그 수많은 작품들 중 단연 가장 유명한 건 무엇일까? 우선, 가장 유명한 소설가는 누구일까? 아서 코난 도일이나 애거서 크리스티를 들 수 있겠지만, 뭐니뭐니 해도 추리소설의 창시자라 불리우는 애드거 앨런 포가 아닐까 싶다. 아니, 그는 '유명'보다 '위대'의 칭호를 붙여야 하겠다. 셜록 홈즈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최고의 추리소설 캐릭터이다. 아서 코난 도일이 창조해, 언젠가부터 그의 손을 떠나, 하나의 상징이자 살아 있는 인간처럼 되어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힘과 영향력이 더 막강해지니 신기할 노릇이다. 적어도 캐릭터로는 셜록 홈즈를 넘어설 게 절대 없다. 가장 유명한 작품을 들라고 하면, 그것도 또 골치가 아프다. 정녕 수없이 많은 .. 더보기
너무나도 유명한, 충분한 가치 <오리엔트 특급 살인> [지나간 책 다시읽기]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 아서 코난 도일과 영국 추리소설의 양대산맥이라 불리우는 '추리소설의 여왕'이다. 그녀의 소설들은 100여 편에 이르는 2차 콘텐츠(영화, 드라마 등)로 제작되어 소설 독자들뿐 아니라 수많은 관객과 시청자들까지 즐기고 환호할 수 있게 했다. 그녀는 80편이 넘는 단·장편 소설을 선보였는데, 과연 그중 어느 작품이 최고로 칠까? 흔히 세계 3대 추리소설이라 하여, 애거서 크리스티의 와 엘러리 퀸의 그리고 윌리엄 아이리시의 을 뽑는다. 이에 따르면 애거서 크리스티 최고의 작품은 일 것이고, 그녀의 주요 작품들을 읽어본 필자의 소소한 식견으로도 이견은 없다. 다만, 다른 건 몰라도 이전에 나왔던 과 을 빼놓으면 섭하다. 두 작품 모두 공교롭게도 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