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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영화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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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카이에 뒤 시네마>1997년 개봉한 <타이타닉>을 시작으로 전 세계 영화 흥행의 기준은 10억 달러가 되었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는 거의 매년마다 10억 달러 또는 그 언저리의 흥행을 올리는 영화들이 등장했다. 즉, 영화 한 편으로 1조 원 이상의 수익을 내는 '영화 1조 원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미국 할리우드에 한해서). 영화는 당당히 세계 유수 산업의 한 방면이 되었고, 자연스레 돈을 쏟아 부어서라도 관객들의 눈을 홀리는 재미있고 판타스틱한 영화들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는 2001년 <실미도>를 시작으로 흥행의 기준이 관객 1,000만 명 동원이 되었다. 역시나 거의 매년마나 1,000만 명 흥행 돌풍의 영화들이 등장했다. 1000억원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흥행 기준을 바로 금액으로 환산하는 미국의 박스오피스 집계 방식과는 다르게, 우리나라는 관객을 집계하기 때문에 금액으로 환산된 추이는 '영화진흥위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야 알 수 있다.) 혹자는 영화를 예술이라고 표현하지만, 이런 모습에서 예술을 찾아보기란 너무 힘들게 되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작품성의 좋고 나쁨을 떠나 흥행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영화는 애초에 투자를 받지 못해 만들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비평할 거리가 없는 대중친화적인 영화들만 만들어진다. 영화의 '다양성'은 희미해지고 모두 획일화되어 간다. 더욱 자극적이고 볼거리가 풍부한 쪽으로 치우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영화와 함께 성장해온 영화 잡지는 아이러니하게도 멸종의 위기에 봉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4년에 <스크린>이, 1989년에는 <로드쇼>가 창간된다. 이어 1995년에 <씨네 21>과 <프리미어> 등이 창간되고, 2000년과 2001년에 각각 <필름 2.0>과 <무비위크>가 창간된다. 그리고 오래는 10~30년 새에 모두 멸종했다. 

그 많던 영화 잡지는 몇 달 전 <무비위크>의 폐간으로, <씨네 21> 정도만 살아남았다. 인터넷 시대에 발맞춰 영화의 완전한 상품화가 진행되다보니, 평론이나 비평은 온대간대 없이 할리우드 영화를 찬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화가 갖는 고유의 예술성이나 미학, 그리고 작가주의는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이쪽으로만 쏠리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대중과 예술의 조화를 꾀하지 못했다. 이것이 결정적 패착이라 생각된다. 

<카이에 뒤 시네마>의 역사

<카이에 뒤 시네마> 표지 ⓒ 이앤비플러스



세계 최고의 영화 잡지라 칭해지는 프랑스의 <카이에 뒤 시네마>의 역사도 비슷한 맥락이다. <카이에 뒤 시네마>는 1951년 프랑스 '누벨바그'(뉴 웨이브-새로운 물결) 영화 운동을 이끈 평론가와 감독들이 뭉쳐 창간한 영화잡지이다. 이 잡지는 당시 영화계에 팽배했던 구시대적 유물을 전투적인 시각으로 매섭게 비판하며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황색 시대'(<카이에 뒤 시네마>의 표지 색깔이 황색이다. 즉, <카이에 뒤 시네마>의 시대이자 절정기라 할 수 있다.)의 황금기를 구사하며, '작가주의' 개념을 창안하며, 미적 취향에 심취한다. 영화를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자연스레 당시 세계 영화계를 주름잡던 미국 할리우드를 겨냥한다. 그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가 세계 영화계를 주름잡았지만 미국으로 넘어갔고, <카이에 뒤 시네마>같은 영화 잡지가 프랑스에 생기게 된 이유가 되었다. 그러며 할리우드의 아웃사이더들 몇몇을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알프레드 히치콕 등이 있다. 

1970년대는 '적색 시대'(마오쩌둥주의를 채택하는 등의 정치적 입장을 명확히 표명한다.)라 칭한다. 1968년 세계를 강타한 68혁명의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급진적 선회였다. 오로지 미적인 시각에서 영화를 판단하는 성향에서 탈피해 정치적 색깔을 입는다. 비(非)할리우드적인 정치적・형식적 대안 영화의 발굴에 힘을 실었다. 일종의 과도기라고 할 수 있겠다. 특유의 전투적 비판과 작가주의 성향, 그리고 영화 자체의 격상을 위한 활동은 계속되었다. 

<카이에 뒤 시네마>는 1980년대 들어서 위기에 봉착한다. '대중'과 '예술'의 조화를 중시하는 고유의 성향을 외면한 채, '대중'에게로 쏠리는 현상이 생긴 것이다. 이는 1981년 새로 부임한 편집장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빠르게 변하는 영화 세계에 발을 맞추기 위해 변화를 시도하였다. 예술을 버리고 문화를 선택했다. 

마지막 보루, <카이에 뒤 시네마> 무너지다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한 책 <카이에 뒤 시네마>(이앤비플러스)는 이런 일련의 역사를 훑고 있다. 이 잡지가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이 잡지를 움직인 사람들은 역사의 소용돌이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말이다. 

저자는 전투적 비판이 상징인 이 영화 잡지를 전투적으로 비판한다.

특히 1980년대 이후 변해버린 <카이에 뒤 시네마>를 통렬히 비판한다. 이 영화잡지의 움직임을 '모더니스트 최후의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설명하면서, 1980년대 이후 이 프로젝트는 끝나버렸다고 말한다. 일종의 마지막 보루가 무너진 것이다. <카이에 뒤 시네마>만은 전투적 영화 비평에 기반을 둔, '대중'과 '예술'의 조화를 무너뜨리지 않았을 줄 믿었던 모양이다. 저자의 통렬한 비판은, 저자의 <카이에 뒤 시네마>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비례한다. 

<카이에 뒤 시네마>는 1988년 <르몽드>에 합병되면서 주류에 편승된다. 비록 비평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주류에 편승하는 비평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여전히 전투적 비평가들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미 <카이에 뒤 시네마>라는 훌륭한 선례가 있기에(구시대의 주류 비평을 청산하기 위한 '뉴 웨이브' 운동을 전개), 다시 부활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저자의 시각은 확고해 보인다. '문화'로써의 영화보다 '예술'로써의 영화를 선호하고, 이는 통렬하고 전투적인 비평 위에서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이라는 게 존재한다. 앞으로 영화는 산업으로써 소비의 형태로 관객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예술 영화'의 존재가 꼭 필요하다고 할지라도, 모든 영화에 '예술성'을 부여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게 된다. 

영화의 위상에 있어서 <카이에 뒤 시네마>의 역할은 실로 막중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카이에 뒤 시네마>의 위상은, 판매부수나 그 유명함을 제외하고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닐 정도로 축소되었다. 어느 한 쪽으로 쏠리는 현상은 결국 획일화를 불러오고, 그 획일화는 분명 사회를 황폐화시킬 것이다. 현재 영화산업은 거의 획일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치우치지 않는 조화의 모습이 필요한 때이다. <카이에 뒤 시네마>가 추구했던 비평을 기반으로 하는 '대중'과 '예술'의 소통이 그리워진다.


"오마이뉴스" 2013.06.25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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