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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세자로 살아가기,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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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선의 세자로 살아가기>

<조선의 세자로 살아가기> 표지 ⓒ 돌베개

요즘 한창 진행중인 KBS 2TV 수목드라마 <천명 : 조선판 도망자 이야기>를 보면, 임슬옹이분한 비운의 왕세자 이호가 나온다. 중종의 아들로 훗날 인종이 되는 인물이다. 

어머니는 장경왕후인데, 그를 낳고 산후증으로 7일 만에 숨을 거두었다. 이후 문정왕후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는데, 그녀와 그녀의 측근들 때문에 목숨을 위협받는 세자 생활을 하게 된다. 

드라마를 보면 세자를 죽이기 위한 음모를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이처럼 조선 시대에서 세자로 살아가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몇몇 세자들은 피 튀기는 정쟁 속에서 목숨을 위협받는다.

돌베개 출판사의 왕실문화총서의 마지막 연구 결과물인 <조선의 세자로 살아가기>(돌베개)는, 이처럼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종종 등장하지만 정작 제대로 연구가 되지 않았던 '세자'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조선 시대 '세자'를 깊이 앎으로써 조선시대 정치사, 궁중생활사를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 첫걸음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세자들을 소개해본다.

비운의 세자들

조선 시대를 통틀어 세자로 그 유명세가 왕을 능가하는 인물들이 몇몇 있다. 대표적으로 태종대의 '양녕대군', 인조대의 '소현세자', 그리고 영조대의 '사도세자(장헌세자)'가 있다. 이들은 각각 13년, 20년, 26년동안 세자의 자리에 있었는데, 결국 왕에 오르지 못하였다. 그 기구한 삶의 단면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세월이다.

먼저 양녕대군은 비운의 세자들 중에서 단연 비운하였다. 그는 조선 3대 왕 태종의 맞아들로 태어날 때부터 원자였다. 그는 나이가 차면 자연스레 세자로 책봉되고 훗날 왕이 될 운명이었다. 그에게는 철저한 제왕교육이 실시된다. 이에 싫증이 났는지, 아니면 스스로 왕의 재목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혹은 정치적 술수에 의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훗날 세종이 되는 충녕대군의 재목을 알아보는 깊이 있는 센스를 발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제왕이 되기에 부적합한 모습을 보이며 세자의 자리에서 퇴출된다. 학문을 멀리하고 여자와 술을 가까이 했다고 하지만, 스스로 세자를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소현세자와 사도세자의 경우는 비운을 넘어 비극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세자의 자리에서 훌륭한 인품과 능력으로 국정을 이끌었지만, 결국 정쟁에 휩쓸려 비극적 삶을 마감한 것이다. 소현세자는 부왕 인조에게 독살당했다는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으며, 사도세자는 부왕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이들의 삶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에 굳이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왕이 된 세자들

주지했듯이 조선 왕조에서 맞아들이 태어나면 그 즉시 원자가 되었다. 원자는 7~8세 혹은 9세 정도가 되면 세자로 책봉되었다. 세자는 책봉 의식인 책례와 성균관 입학 의식인 입학례, 유교식 성인식인 관례와 결혼식인 가례의 통과의례를 치르며 성장하였다. 그 사이사이에 제왕학 수업을 받고, 권력 행사가 아닌 여러 국가의례에 참석하였다.

국가의 제2인자의 자리에 있지만, 왕이 모든 권력을 갖고 있기에 세자는 실질적인 권력이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1인자의 자리에 오르게 될 몸이었다. 어찌보면 참으로 애매하기 그지없는 자리였던 것이다. 그만큼 자리를 보존하기가 힘들었다. 미래의 권력을 노리는 자들이 도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왕위 계승의 기본 원칙은 왕비가 낳은 첫째 아들인 왕자가 왕이 된다는 것인데, 이는 당시의 일반적 상속 원칙이었던 적장자 계승의 원칙을 따른 것이다. 그런데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이 같은 원칙에 따라 왕위에 오른 경우는 전체 스물일곱 명 가운데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 이렇게 일곱 명에 불과하였다."(본문 중에서)

위의 일곱 왕들의 삶을 살펴보면, 세자 때의 삶과 왕일 때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 어렵게 세자의 자리를 지켜내고 (또는 누군가에 의해서 지킴을 받았고) 어렵게 왕의 자리에 올랐지만, 단명하거나 쫓겨나거나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는 뜻이다. 세자가 되기도 힘들고 세자의 자리를 지키기도 힘들고 왕이 되기는 더욱 힘들며 왕으로써의 삶은 더더욱 힘든 것이었다. 양녕대군은 이런 세자의 삶을 꿰뚫어 봤던 것일까?

세자로 살아가기

<조선의 세자로 살아가기>는 크게 6개의 파트로 나누어 세자를 조명하고 있다. 1부에서는 세자의 탄생과 세자 책봉 그리고 세자의 교육를 거론한다. 세자가 될 운명으로 태어난 어떤 이의 유년기를 다루고 있다. 2부에서는 세자의 혼례를 자세히 다룬다. 세자의 가족이 된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지만 그만큼 많은 견제를 받기에 선뜻 그자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문들이 많았다고 한다. 3부에서는 세자의 대리청정을 자세히 다룬다. 대리청정은 '왕을 대신하여 특정인, 특히 세자가 정무를 관장하는 것'(157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세자가 국정에 참여해 본격적으로 왕을 보좌하며 왕이 되는 길의 초입에 섰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수많은 변수들이 작용했다는 사실.

4부에서는 왕이 되지 못한 비운의 세자들을 다룬다. 위에서 다뤘던 양녕대군, 소현세자, 사도세자를 비롯하여 이방원(훗날 태종)에게 죽임을 당한 조선 제1대 세자 의안대군(이방석)의 사례를 다루고 있다. 이들의 사연과 그 질곡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수없이 회자되고 있다. 5부에서는 사도세자와 효명세자의 삶과 그들이 남긴 글, 시들을 다룬다. 효명세자는 23대 순조대 세자로, 17년 동안 세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조선왕조 중 가장 빼어난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 그는 왕권이 약화되었을 때 대리청정을 하여 왕실의 권위를 높이려 하였지만, 어수선한 세상에서 정치적 역량을 펼치지 못하고 요절하고 말았다.

마지막 6부에서는 세자와 그의 형제들을 다룬다. 세자와 형제들이 우애로써 왕실을 번영시켰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였다. 세자가 훌륭한 성심과 자질로 현명하게 대처하며 형제들을 포용하였으면 큰 문제가 없었겠지만, 현실이 그렇지만은 않았나 보다.

조선에서 세자로 살아가기란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 태어날 때부터 원자였다면 그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과도한 교육과 보호를 받으며, 실질적인 권력은 없음에도 미래의 권력을 노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견제와 음모 속에서 살아갔다. 이를 겨우 물리치며 왕의 자리에 올라도, 여전히 자신을 노리고 있는 조직이 존재한다. 세자가 비운하고 비참하다고 표현할 것이 아니라, 아예 비운하고 비참한 세자라고 못을 박아도 될 정도이다.

그렇게 못을 박음으로써 세자의 삶을 규정한다해도, 세자를 알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위에서 밝혔듯이 세자의 삶을 앎으로써 조선시대 정치사와 궁중생활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인간으로써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거대한 세계에서의 한 인간의 삶과 고투를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고찰하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오마이뉴스" 2013.5.1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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