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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흔한 말 카오스, 제대로 알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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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제임스 글릭의 <카오스>국내외 주요 검색 사이트에서 '카오스'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게임 '카오스 온라인'(워크래프트3의 유명 유즈맵 게임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온라인 게임), 미드 '카오스', 가수 '카오스', 영화 '카오스', 사전에 등재된 '카오스' 등이 나온다. 정작 내가 찾고 싶었던 책 <카오스>(동아시아)는 저 아래에 조그마하게 나타났다. 정말 예측 불허의 혼돈(카오스)이 난무한 검색 시간이었다. 

위의 순서는 각 사이트의 담당자 또는 컴퓨터 시스템이, 사람들이 '카오스'라는 단어를 검색했을 때 찾고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콘텐츠를 예측해 일종의 순위를 매겨 놓은 것일 게다. 사이트마다 순서가 다른 이유는 사이트의 특징, 사이트를 찾는 사람들의 특성 등이 다양하게 결합될 것이기 때문이고. 

하지만 필자는 전혀 다른 콘텐츠를 찾고 있었고, 모든 사이트는 필자의 생각을 예측하지 못했다. 그들의 예측은 적어도 필자한테는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고 만 것이다. 이처럼 어떤 거대한 집합에 대한 예측은 평균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고로 집합 안의 모든 것을 대변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런 예측불허성과 복잡성은 20세기를 지나 21세기의 과학을 관통하는 하나의 화두이자 과제이다. 

<카오스> 표지 ⓒ 동아시아

<카오스>는 이 새로운 화두이자 과제가 과학자들의 의해서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노력을 기울였으며,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는데 엄청난 공헌을 한 책이다. 1987년 초판이 나와서 전 세계적으로 번역되어 많은 인기를 받았지만, 당시 조악한 번역으로 많은 아쉬움을 자아냈다고 한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단순히 '카오스 이론'을 설명하는 이론서가 아니라 '카오스 이론'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당시 동시다발적으로 활약한 과학자들의 삶과 생각이 마치 소설처럼 읽히는 교양서이다. 그래서인지 조악한 번역에 더욱 시선이 많이 갔고, 다른 과학이론서와는 다른 차원의 아쉬움이 있었을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쥐라기 공원>을 기억할 것이다. 영화에는 말콤 박사는 카오스이론 전공자이다. 그는 가끔가다 카오스 이론을 언급하는데, 대표적으로 '북경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한 달 후 뉴욕에 폭풍이 몰아친다'라는 말을 하였다. 이는 완벽한 통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또한 영화 <나비효과>는 제목부터 카오스 이론의 명제인 '브라질에 있는 나비가 한 번 날갯짓을 하면 텍사스에 토네이도가 분다'는 '나비효과' 이론에서 따왔다. 내용과 주제도 말할 것 없이 '나비효과' 이론의 거대한 틀 안에서 진행되고 발현된다. 

'나비효과' 이론은 <카오스>의 첫 장을 장식하며, 저자는 '나비효과' 이론으로 '카오스 이론'이 시작되고 있다고 말한다. 제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이는 예측불가능의 대표적 성질을 설명한다. '카오스 이론'이 출현하기 전까지 물리학은 뉴턴이 정립한 예측의 절대적 성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눈에 빤히 보이는 대류 흐름이나 진자의 운동은 너무나 단순해서 예측할 필요도 없이 거대한 질서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혁명과도 같은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당시로서는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던 과학자들이, 즉 정통적 과학의 범주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거나 못했던 과학자들이 카오스 혁명을 이뤄낸 것이다. 이들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일상의 단순하고 당연한 것들에 관심을 두었고, 거기에서 예측할 수 없는 무질서를 발견한다. 나아가 그 무질서 속에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까지 알아내기에 이른다. 

기존의 정통적인 과학 범주에 머물러 있던 과학자들은 이에 반발한다. 자신들의 속세를 떠나 아주 작은 소립자를 연구하며 세상의 근원을 알아내려 하는데 반해, 그들은(카오스 연구 과학자) 연구할 가치도 없는 일상의 것들을 관찰하고 연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카오스 연구 과학자들은 굴하지 않고 그 영향력을 점점 넓혀간다. 급기야 카오스 이론은 20세기의 과학 혁명을 이끌었던 상대성이론과 양자 역학 이론에 필적할 만한 가치를 창출하고 그 영향력을 만방에 떨친다. 이는 어느 과학자 혼자만의 힘이 아닌 동시다발적인 관심과 연구, 그리고 파격적인 혁명의 파도로부터 시작되었다.

<카오스> 중에서. 왼쪽 위가 '이상한 끌개'이다. '무질서 속의 질서'의 카오스 이론을 나타내는 그림들이다. ⓒ 동아시아


이 책의 제목이자 카오스 이론의 핵심인 <카오스>는 한마디로 '무질서 속의 질서'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너무나 단순하고 당연해서 더 이상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고 연구되지 않았던 부분에서 카오스 이론의 핵심이 존재함을 발견한다. 그 완벽한 질서 속에 무질서가 존재하고, 그 무질서가 질서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카오스 이론'은 모든 과학에서 통용된다. 기존의 수많은 이론이 어느 한 부분에서만 통용되는 것과는 다르게, 어떤 이론이나 상황에서든 카오스는 적용된다. 과학계에 위대한 이론이 많이 정립되어 왔지만, '카오스 이론'만큼 과학계 전체의 패러다임을 바꾼 이론이 드물다는 자부심을 갖는 것도 결코 허투루는 아닌 것이다. 

'카오스 이론'은 심지어 의학과 생물학 등의 분야를 넘어,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경제경영, 인문사회, 예술까지 섭렵한다. 여기에는 그 유명한 '나비 효과', '프랙탈', '이상한 끌개'의 개념들이 활약한다. 

"카오스의 여러 측면―대체로 다른 측면―들은 한편으로는 현대 경영이론가들에 의해, 다른 한편으로는 초현실주의 문학이론가들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 금융시장의 차트 패턴들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조각가들은 물론 화가들도 프랙탈 기하학의 용어나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았다. … 카오스가 의기양양하게 부상하던 초기 시절 과학자들은 카오스를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에 뒤이어 자연과학계에 일어난 20세기의 세 번째 혁명이라고 묘사했다."(본문 속에서)

지금은 카오스에 대해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고, 그래서 너무나도 대중적이고 상투적인 표현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과학계를 넘어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이 책을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인 동시에 큰 손해일 것이다. 

20세기 과학의 역사를 대략적이나마 훑고 있는 이 책은, 약 60여 년 전부터 30여 년간의 과학계 분위기를 알게 해준다. 챕터마다 다른 과학자들이, 비록 다른 지역과 다른 시대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마치 옴니버스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감독의 탁월한 연출이 빛을 발해, 짜임새 있게 진행된다. 중요 인물들은 챕터마다 카메오나 조연으로 등장해 풍미를 더해준다. 왠지 모르게 그리워지는 20세기 과학계의 모습이다. 

수많은 과학자(주로 카오스 연구 과학자)의 생각과 삶을, 기자이자 편집자 출신의 저자가 비교적 자세히 그리고 재미있게 그려놨기에 소설책 읽듯 읽는 재미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유려하고 멋진 문장을 훌륭하게 다시 살려낸 번역자를 능력과 노력을 믿고 즐기면 문제없다. 그동안 과학을 멀리했던 필자의 눈을 돌려 세운 책이라는 사실을 미리 말씀드린다. 

정통적 과학 이론서와 심도 깊은 과학적 지식과 성찰에서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사이언스북스)처럼 어느 정도 두 마리 토끼는 충분히 잡을 만하지 않나 싶다. 과학이 갖는 태생적 단점을 맛깔 나는 글쓰기와 감성으로 극복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풍부한 사례와 성찰은 과학이 갖는 장점 또한 잘 이끌어 내고 있다. 현대판 고전으로 손색이 없다.


"오마이뉴스" 2013.6.21일자 기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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