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서평 쓰는 법>
<서평 쓰는 법> 표지 ⓒ유유
서평이랍시고 책 읽고 글 쓴지 4년이 넘었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지라, '내가 만든 책 내가 홍보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체계적으로 제대로 방법을 배우지 않은 채 엉겹결에 시작한 서평, 그 수가 족히 4백 편 가까이 된다. 이젠 매너리즘의 시기를 지나, 퇴행의 시기가 온 것 같다. 슬슬 힘에 부치는 게 아닐까.
다른 분들의 서평을 두루 살펴왔다. 각기 다른 스타일, 거기에 정답은 없었다. 나에게 맞은 옷을 찾기란 힘들었다. '나는 나의 길을 가련다' 라며 내 식대로 밀어 붙였다. 쓰면 쓸수록 의문이 들었다. 내가 잘 쓰고 있는 게 맞는지, 한 번쯤 제대로 된 방법을 연구해봐야 하는 게 아닌지 자문했다. 그렇지만 나름 베테랑(?)이라 자부하는 바, 다른 누구의 지도편달을 받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계속 뒷걸음칠 치는 것 같은 느낌이 한없이 들었다. 그동안 '황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 격으로 우연에 우연이 겹쳤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책 읽기와 서평 쓰기의 방법론을 이번에는 집고 넘어가고자 했다. 그 일환으로 이원석 작가의 <서평 쓰는 법>(유유)을 들었다.
서평은 무엇이고, 서평을 왜 쓰는가
이 책에서 어떤 빛나는 깨달음을 얻고자 한 건 아니다. 그렇다고 제목처럼 '서평 쓰는 방법' 즉, 기술을 얻고자 한 것도 아니다. '진짜' 서평가는 서평을 어떻게 쓰는지 한 번쯤 들여다보고 싶어서 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동안의 내 서평을 진단받고 싶었던 것이다. 내 서평은 형편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저자에 따르면 애초에 내 서평은 서평보다 독후감에 가깝다. 매우 정서적이고 내향적이며 일방적이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초장부터 자괴감을 들게 만드는 저자의 단호함이 짧디짧은 이 책의 페이지를 빨리 넘기기 어렵게 만들었다. 차근차근 일게 되었다. 본질을 건드리니 머리와 가슴이 모두 반응하는 게 아닌가.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건 서평보다 독후감 쪽에 가깝다고 진단한 나의 서평들이다.
서평이 무엇인지만큼 중요한,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서평을 왜 써야하는지일 것이다. 저자 또한 동의하는 분위기인데, '자아 성찰'과 '삶을 통한 해석이자 실천'이라는 다소 모호하고 추상적이며 진부하지만 지극히 올바른 논의를 끄집어 낸다. 매우 공감하는 바다. 서평을 쓰고자 마음 먹었을 때 목적을 정했는데, '책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거창하기 이를 데 없는 모토였다. 저자한테 칭찬 좀 들을 것 같다.
저자는 독후감과 서평 구분에 책 소개와 서평을 엄격히 구분하고자 하는데, 역시 한 발 빼고 다시 최후 변론을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독후감과 서평이 궁극적으로 서로 통하는 것처럼, 책 소개와 서평도 서로 통한다는 것. 제대로 된 서평이 되려면 논리에 입각한 서평가의 목소리가 존재해야 하겠다. 서평쓰는 게 이리도 힘든 일이었나, 싶다. 난 단지, 세상을 바꾸겠다는 큰 목적 하에 독자에게 좋은 책과 나쁜 책을 소개해주면 왜 그 책이 좋은지 혹은 나쁜지 말하고자 했다. 문제는 그 초심이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 초심으로 돌아간 나를 보여주고 싶다.
서평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
이 책은 지금의 나에게 딱 알맞은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어줍잖게나마도 서평의 목적과 방향을 설정해두고 꾸준히 상당량의 서평을 써왔지만, 제대로 체계를 세우진 않은 사람에게 말이다. 반면, 제목만 믿고 초보자가 덤벼들었다간 시작도 못한 채 끝맺음을 할 수도 있겠다. 실용적 기술보다 본질적 기술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인데, 초보자는 이 책을 읽을 바에 차라리 좋은 서평을 찾아 읽고 그 구성을 따라해보는 게 좋을지 모른다.
서평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에서도 여전히 실용보단 본질에 가까운 설을 풀어내고 있는 저자는, 깊고 다양한 책 읽기와 양가적 태도 장착을 전제로 요약과 평가라는 핵심을 가장 길게 펼쳐놓는다. 그러곤 10개도 채 되지 않는 '서평의 방법'을 짧게 설명하고 있으니, 누군가는 '낚였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반면 나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는 걸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특히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자리하고 있는 '평가'는, 저자가 몇 번이고 언급하고 강조하는 '서평'의 '평'에 해당하는 바로, 핵심 중의 핵심이다. 다른 건 건너 뛰고 이 부분만 잘 살펴도 이 책에 충분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거니와 더불어 저자와 내공까지 짐작할 수 있다.
서평의 핵심인 평가, 평가의 핵심은 맥락화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는 맥락화를 잘 해왔는가? 그렇지 못했다는 쪽이 맞을 것이다. 책 한 권 읽고 그 책에 대한 요약과 평가를 하는 데도 벅찼으니까. 일전에 아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저자의 말과 일맥상통하는데, 내 서평에 없는 게 있다면 다름 아닌 맥락화라고 말이다. 맥락화가 기본이 되는 (석사)논문을 기똥차게 잘 쓴 아내가 한 말이었으니 맞는 말일 텐데 애써 무시하고 지금까지 왔다. 지금에라도 나는 제대로 된 서평을 쓸 수 있을까.
책 읽는 모두가 서평을 쓰자
'책으로 세상을 바꾸자'라는 모토는 아직 변함 없고 앞으로도 변함 없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서평으로 세상을 바꾸자'일 텐데, 그것이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책도 읽지 않는데, 서평은 무슨 서평... 물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의 서평 쓰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책을 좋아했고, 이제 막 글도 좋아지기 시작했으니까.
아마 혼자서는 아무리 수천 편의 좋은 서평을 써도 세상을 바꾸진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혼자가 아닌 우리 모두라면 어떨까? 우리 모두 좋은 서평을 쓰고자 한다면? 그래, 좋다. 한 발 물러나 우리 모두 서평을 쓰고자 한다면 어떨까? 저자도 말했듯이, 저자와 독자 사이의 위계가 사라지고 대등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을까? 이는 분명 '사회를 번혁하고 세상을 바꾸는' 혁명에 다름 아니다.
내가 꿈꾸는 게 바로 그런 모습이 아닌가, 싶다. 그동안 추상적으로만 그려왔던 '바뀐 세상'의 모습 말이다. 내가 이 얇지만 강한 책에서 발견한 가장 빛나는 생각은 서평이 무엇인지, 서평을 왜 써야 하는지, 서평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아닌 '서평이 가야할 길'이다. 이 책은 나에게 '모두가 서평을 쓰는 그 날까지 난 서평을 쓰겠다'는 일념을 새롭게 심어준 것이다. 정녕 열심히 쓸 것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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