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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도서

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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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우리 안의 우주>초등학교 때까지 내 장래희망은 과학자였다. 당시 모든 초등학교에는 일주일에 두 시간씩 CA시간(특별활동 또는 클럽활동)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나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던 과학부에서 활동하였다. 굳이 정답을 도출하려고 하지 않았고, 틀에 짜인 관찰이나 실험을 하지 않았다. 

먼저 선생님께서 시범을 보이고, 학생들은 일단 똑같이 따라 하며 같은 결과를 도출한다. 그런 뒤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본격적으로 자신들만의 관찰과 실험이 시작되었다. 거기까지는 아주 좋았다. 그런데 이런 과학 활동은 더이상 확대될 수 없었다. 무슨 말인고 하면, 나는 과학 활동을 일상생활에까지 확대해 뭔가 실용적인 활동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과학이 좋아서 시작했던 과학부 클럽 활동은 "과학은 과학실에서"라는 명제만 확고히 심어준 채 점점 멀어져만 갔다. 

중학교에 올라와서는 역사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과학은 완전히 논외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실험과 관찰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암기해야만 하는, 아주 아주 지루한 과목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내 머리에서 과학은 잊혔지만, 과학의 역사는 흥미롭게 다가왔다. 열역학 법칙을 달달 외우는 대신, 역사적 인물들과 에피소드를 알게 되었다.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쳤고, 뉴턴이 지구의 중력을 발견했고, 코페르니쿠스가 태양계의 중심은 지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고,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견했고...

저자의 독특한 서술

<우리 안의 우주> 표지 ⓒ 시공사

세계 최고의 이론 물리학자 닉 투록이 쓴 <우리 안의 우주>(시공사)는 오랜만에 과학의 흥미를 되살려 주었다. 물리학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개괄하면서, 인물들과 에피소드들을 버무렸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저자가 글을 풀어가는 서술 방식이다. 저자는 단순 명료하게 물리학의 역사만을 다루고 있지 않다. 기본적인 물리 이야기 위에 자신의 이야기와 예술, 문학, 영화 등의 이야기를 아주 자연스럽게 버무린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저자는 뉴턴의 물리법칙을 말하기에 앞서 자신의 어린 시절 가족들의 얘기를 꺼낸다. 이후 학교에 들어가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선생님의 도움으로 각종 과학 활동을 자유롭게 하게 되었다. 점점 수학과 물리학에 끌리기 시작하였고, 때마침 달 착륙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저자는 그 순간에 매료되었다. 그를 더욱 매료시킨 장면을 옮겨본다. 조금 길다. 

"달 착륙만큼이나 매력적이었던 것은 그로부터 불과 1년 후에 있었던 아폴로 13호의 드라마였다. 집에서 32만 킬로미터 떨어진 깊은 우주공간에서 커다란 폭발음을 듣는 상상을 한 번 해보라. "휴스턴, 문제가 생겼다." 두 개의 주요 산소탱크 중 하나가 폭발하여 소중한 산소가 두 시간 동안 우주공간으로 흘러나갔다. 세 명의 우주비행사들이 하나밖에 없는 구명정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것은 지구로 돌아가는 데 필요한 연료가 전혀 없는 작은 달 탐사 캡슐이었다. 놀라운 드라마였다. 매일 상황이 TV에 방송되었다.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손톱을 깨물고 있었다. 저 비행사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사의 기술진들은 환상적인 해결책을 찾아냈다. 달의 중력을 이용하여 그들을 끌어당긴 다음 작은 구명정을 달의 반대편으로 보냈다가 다시 지구를 향해 던지는 슬링 샷을 사용한 것이다. 며칠 후 우주비행사들이 탄 작고 뜨거운 깡통이 태평양으로 쏜살같이 떨어졌다. 그곳에서 건져진 우주비행사들은 놀랍게도 TV 속에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수척하고, 면도도 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그들은 살아 있었다. 모두 살아 있었다. 완벽한 마법이었다."(본문 속에서)

이 비행경로는 아이작 뉴턴이 발견한 방정식을 이용하여 계산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며 뉴턴의 물리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며 뉴턴의 이야기는 현실과 이어지고, 또 다른 과학자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조금 모자란 부분이 있겠지만, 요즘 새롭게 각광 받고 있는 '빅 히스토리'의 물리학 부분인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저자의 서술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저자의 서술은 나를 매료시켰다. 

과학과 사회, 그리고 인간

저자는 과학이 순전히 인간에 대한 것이고, 과학은 사람이 하는 활동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이 이루고 있는 사회는 과학이 이루어 낸 성과에 고마워해야 하고 더욱 관심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과학도 자신들이 왜 과학을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과학은 인간과 사회를 위해 과학을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한 전제 조건이 있다. 모든 인간이 인지해야 하는 사실이 있다. 인간은 인간이 생각하는 그 이상의 놀라운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과학은 과학실에서"라는 명제는 "과학은 우주에서"라고 바뀌어야 마땅하다. 

저자는 신 르네상스를 설파한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에 따르면 우주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누구이며 누구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열쇠였다는 것이다. 인간의 문제에 있어서 국지적이고 단기적인 시각이 아닌 한 발자국 떨어져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시각으로 보려 할 때, 비로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들의 근원인 우주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고, 우리 인간은 고대부터 그런 노력을 해왔다는 것이다. 

과학사에서 혁명의 의미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라파엘의 <아테네 학당>에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사람들이 표현되어 있다. 그들은 전통적인 미신과 교조적인 믿음, 그리고 높은 권위를 밀어내고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이후 1927년 브뤼셀에서 열린 전자와 광자에 대한 제5차 솔베이 국제 콘퍼런스를 통해 우주를 거대한 기계로 보던 고전 물리학자들의 관점은 완전히 뒤집혔고 훨씬 더 직관적이고 덜 익숙한 모습으로 바뀐다. 이것은 아마도 물리학 역사에서 가장 불편한 콘퍼런스였을 거라고 말한다. 기존의 부정과 새로운 출발 사이에 있었기 때문일까. 모든 시선은 그들에게로 쏠릴 것이고, 그들은 완전한 타깃이 되어 그들 또한 언젠가 반드시 부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류학적인 혁명들은 계속해서 일어난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단절은 일어나지 않는다. 선대의 발견은 후대의 발견에 의해 부정되지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제5차 솔베이 국제 콘퍼런스가 있은 지 어언 85여 년이 흘렀고, 언젠가는 그들의 발견은 확인되고 부정될 것이 분명하다. 아니, 부정되어야 마땅하다. 

과학사에서 혁명은 기존의 것을 부정하면서 일어나지만, 결코 단절되지 않는다. 벽돌 위에 시멘트를 바르고 그 위에 벽돌을 얹는 것이지, 벽돌을 치워버리고 그 자리에 벽돌을 놓지 않는다. 다만 시멘트를 바름으로써 기존의 흔적은 지우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품은 우주

저자는 고향이 아프리카라고 한다. 그는 물리학의 이론을 연구하면서 다른 한편 저개발 국가의 어린이들을 어떻게 과학의 세계로 안내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렇게 그는 아프리카에 연구소를 만들고 아프리카의 수재들을 교육시켰다. 선입관과 차별을 극복하는 것 또한 우리가 품은 우주의 한 방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20세기의 위대한 물리학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유대인이었는데, 본래 그들은 차별과 멸시를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선입관과 차별을 극복하였다. 저자는 아프리카에서도 이와 같은 일종의 혁명을 일으키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많은 과학자들의 도움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우주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우리는 우주를 품고 있다. 하늘에 있는 우주를 비롯해, 다른 의미로의 우주들도 말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굳이 인지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알고 있는지, 과학자들도 굳이 알리려고 하지 않는다. 이들의 소통 없이 과학은 일방적으로 우리 생활 속으로 흘러들어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지금의 사회가 도래했다. 우리의 능력은 출중하지만 과학기술의 성장은 이를 훨씬 뛰어넘었다. 우리가 우주를 품었다는 사실을 빨리 인지하고 지금이라도 우주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과학과 사회(인간)는 서로 연결해 더욱 넓은 시야를 가질 필요가 있다. 

디지털 시대에 디지털(국지적이고 단기적인 시선을 뜻함)을 보지 말고 우주(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시선을 뜻함)를 보라는 것이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렇게 해야만 세계가 무엇이고, 인간이 무엇이고, 내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현재야말로 최고의 기회다. 


"오마이뉴스" 2013.6.7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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