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엑스맨: 아포칼립스>
영화는 끝내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유치하고 졸렬하기 짝이 없었다. 영화 <엑스맨: 아포칼립스> 포스터 ⓒ20세기폭스코리아
'엑스맨' 시리즈는 달랐었다. 여타 히어로 시리즈와는 달랐었다. 돌연변이와 인간, 돌연변이와 돌연변이의 구도를 통해 소수자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고, 그들의 탄생과 관계가 인류사의 여러 굴곡점과 얽히게 하여 잘 짜인 스토리를 선보였으며, 장대한 스케일에 맞는 엄청난 비주얼을 선사했다.
또한 시리즈 마니아를 양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캐릭터를 들 수 있겠다. 수많은 캐릭터들이 각자의 능력과 개성있는 성격을 보여주었는데, 무엇보다 촘촘히 짜인 그들 간의 관계도가 매력 있었다. 정녕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 시리즈다. 21세기 할리우드를 이끌 기수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 재능을 '엑스맨'으로 만개한 브라이언 싱어이 탄생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그 '엑스맨' 시리즈도 <엑스맨: 아포칼립스>로 잠정적 끝을 보았다. 현재 엑스맨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프리퀄 3부작이 1960년대, 70년대, 그리고 80년대로 끝을 맺었다. 과연 유종의 미를 잘 거두었을까. 시리즈를 계속 봐온 사람이라면 반드시 봐야 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도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나 출연진, 또는 사상 최고의 블록버스터라는 광고 때문에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을 것이다.
끝내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유치하고 졸렬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래도 '엑스맨' 시리즈 최악이라는 <엑스맨: 최후의 전쟁>보다는 낫지만 그 바로 위에 위치할 정도라고 생각한다. 시리즈의 마지막이니까, 브라이언 싱어니까, 엑스맨이니까!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는 끝내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유치하고 졸렬하기 짝이 없었다.
영화는 최초의 돌연변이 아포칼립스가 수천 년 전에 가까스로 봉인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무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진행되니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대략 짐작이 갔기에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곤 이어지는 수많은 캐릭터들을 위한 시간, 자그마치 영화의 절반 가량을 차지했다.
어김 없이, 그러나 터무니 없이, 왜 깨어나는지도, 누가 깨웠는지도 모르게 아포칼립스는 깨어난다. 그러고는 곧 '공포의 외인구단' 만들기에 돌입한다. 영화 <엑스맨: 아포칼립스>의 한 장면. ⓒ20세기폭스코리아
어김 없이, 그러나 터무니 없이, 왜 깨어나는지도, 누가 깨웠는지도 모르게 아포칼립스는 깨어난다. 그러고는 곧 '공포의 외인구단' 만들기에 돌입한다. 그는 분명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가 아닌가. 그런데 <소림축구>에서 가진 건 강철다리밖에 없는 씽씽이 특출난 능력을 지닌 이들을 찾아 설득하는 것처럼 돌연변이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각성을 시켜주며 같이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합류한 이가 스톰, 아크엔젤, 사일록 그리고 마그네토이다. 신과 같은 존재가 그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하나하나 찾아가 설득해야 했던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반면, 찰스 자비에 교수와 그가 세운 자비에 학교에 관계된 이들을 소개시켜 주는 장면은 납득이 가거니와 프리퀄 이전의 '엑스맨' 본편과 이어지는 촘촘한 그물 관계도를 잘 설명해주는 것 같아 감회가 새로웠다. 다분히 '엑스맨' 시리즈를 챙겨봤던 이들을 위함인 것 같은데, 반대로 <엑스맨: 아포칼립스>로 처음 접한 이들에겐 굉장히 생소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이 영화의 초중반까지는 패스하고 봐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랄까. 시리즈에 대한 감독의 지극한 정성과 사랑이 마지막에선 역풍을 맞았다고 본다.
이 시리즈는 몰라도 이 영화는 물 건너갔다
더 큰 문제는 이 시리즈가 아닌 이 영화가 갖는 스토리의 매끈함에 있다. 시리즈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영화가 산으로 간 듯하다. 시리즈 전체를 마무리 함에 디테일을 쏟아부어 잘 처리했고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렇지만 영화의 짜임새를 엉망으로 만들면서까지 그래야 했을까 싶은 것이다. 아포칼립스가 외인구단을 만들고 자비에 학교를 소개하고는, 준비도 없이 바로 전투에 돌입하는 장면에서 확 와 닿았다. 이 시리즈는 몰라도 이 영화는 물 건너갔다는 걸.
아포칼립스가 외인구단을 만들고 자비에 학교를 소개하고는, 준비도 없이 바로 전투에 돌입하는 장면에서 확 와 닿았다. 이 시리즈는 몰라도 이 영화는 물 건너갔다는 걸. 영화 <엑스맨: 아포칼립스>의 한 장면. ⓒ20세기폭스코리아
누구는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하고, 누구는 '숲을 보지 말고 나무를 보라'고 한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격언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작업에 임했나 보다. 그것이야말로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대미를 장식하는 가장 적정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그러면 뭐 하나라도 건질 게 있는지 찾아보자. 시리즈 전체로 봤을 때 나쁘지 않을, 오히려 괜찮은 수준이라는 건 인정한다. 조직을 위해서 개인을 희생했다고 한다면, 마냥 비난할 수만도 없고 그것 또한 여러 방법 중 하나일 테니까. 그런데, 이 영화 한 편만 보는 사람들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기존의 '엑스맨' 시리즈가 고수했던, 선악 구분이 없는 이들의 안타까운 대립과 탁월한 능력을 가진 개인, 소수자가 다수에 의해 어떻게 이용되고 또 처분되는지를 보여줬어야 했다. 그거야말로 '엑스맨' 시리즈 전체를 더 살리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무슨 이유를 갖다 대도 아포칼립스가 왜 등장했는지를 알 수 없다. 그리고 수시로 등장하는, 도저히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들의 행동들. 왜 그(그녀)는 그런 행동을 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영화를 보는 내내 하면서, 한편으로 시리즈 전체를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모순적인 양상을 보인 것이다. 만약 <엑스맨: 아포칼립스>가 시리즈의 마지막이 아니라면 그라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것들이었다.
도저히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들의 행동들. 왜 그(그녀)는 그런 행동을 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영화를 보는 내내 했다. 영화 <엑스맨: 아포칼립스>의 한 장면. ⓒ20세기폭스코리아
솔직히 '엑스맨' 시리즈를 볼 때 그 이면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유치하기 짝이 없게 느껴지기 일쑤이다. 어릴 때 상상하던, 또는 여기저기에서 봐왔던 류의 능력들이 서로를 겨냥하며 싸우는 게 유치하지 않다면 거짓말이 아닌가. 그렇지만 '엑스맨' 시리즈에는 철학, 사상, 인문, 정치까지 아우르는 주제가 있었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없으면 '엑스맨'은 아무것도 아닌 영화가 되고 만다. <엑스맨: 최후의 전쟁>이 그랬고,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다시 돌려놨는데, 다시 그런 영화가 되고 만 느낌이다.
이런 식으로 시리즈를 끝내는 건 안 된다. 이 시리즈를 위해서가 아닌 이 영화를 위해서 한 편 더 나와야 하지 않나, 싶다. 그래야 이 영화가 살고, 결론적으로 이 시리즈가 사는 것이다. 너무 팬심이 발동한 걸까? 다른 영화였다면 쓰레기라며 짜증만 냈을 것인데, '엑스맨'이기에 아쉽고 안타까운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엑스맨'의 팬이라면 어느 면에서는 무조건 봐야 하는 영화이고, '엑스맨'을 잘 모르거나 단순히 블록버스터를 즐기고 싶은 분이라면 무조건 보지 말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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