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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답을 찾을 수 없는 딜레마, 누구의 선택과 결정이 옳은가? <아이 인 더 스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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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아이 인 더 스카이>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는 작금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테러와 그에 따른 무고한 피해를 눈 앞에서 보고 있는 우리들에게 답을 찾기 힘든 딜레마적 상황을 던진다.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 포스터. ⓒ엔터테인먼트 원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한 여자 아이가 평화롭게 훌라후프를 돌린다. 그러며 시내에 나가서 빵을 팔기도 한다. 지극히 평범하고 평화로운 아이의 모습이 왠지 을씨년스럽다. 무슨 일인가 벌어질 것만 같다. 


소말리아의 극단주의 테러 조직 알 샤바브의 수장급들 생포를 위해 미국, 영국, 케냐가 합동 작전을 펼친다. 그들이 모인 곳은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의 한적한 곳. 생포 작전에 돌입하려던 찰나, 최첨단 초소형 드론의 활약으로 그들이 자살 폭탄 테러를 하려는 사실을 알아낸다. 우여곡절 끝에 생포 작전은 사살 작전으로 바뀐다. 사살 작전을 위해선 드론 미사일 투하가 필요하다. 


답을 찾을 수 없는 딜레마 상황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는 딜레마가 있기 마련이다. 반드시 수많은 인명 피해가 수반될 자살 폭탄 테러를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부수적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가. 아니면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로 부수적 피해를 감수할 수는 없는 것인가.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는 작금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테러와 그에 따른 무고한 피해를 눈 앞에서 보고 있는 우리들에게 답을 찾기 힘든 딜레마적 상황을 던진다. 


사살 작전을 위한 미사일 투하 진전 한 여자 아이가 중상 이상의 피해가 확실시되는 곳으로 와서 빵을 판다. 총리, 장관, 장군, 작전지휘관, 미사일 조종사 등 작전에 관련된 그 누구도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의 한 장면. ⓒ엔터테인먼트 원



급기야 사살 작전을 위한 미사일 투하 진전 한 여자 아이가 중상 이상의 피해가 확실시되는 곳으로 와서 빵을 판다. 총리, 장관, 장군, 작전지휘관, 미사일 조종사 등 작전에 관련된 그 누구도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 법적으로,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완벽한 결정이 있을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도덕과 법, 누구의 선택과 결정이 옳은가?


영화는 미사일 투하에 대한 논쟁과 선택과 결정이 주를 이룬다. 작전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지휘관과 장군은 자살 폭탄 테러로 입게될 엄청난 인명 피해를 사전에 없애기 위해 반드시 미사일을 투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반해 내무장관, 법무장관, 국무장관, 국방장관들은 정치적 후폭풍을 두려워 하면서 결정을 서로 미룬다. 이해는 되지만 정녕 비열하고 저열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작전의 직접적 지휘관은 그 어떤 정치적, 도덕적 판단 없이 오로지 법적인 판단을 앞세우며 '임무 완수'에만 매달린다. 물론 추후 입게 될 수 있는 엄청난 인명 피해를 사전에 제거한다는 명분이 확고하다. 그렇지만 부수적 피해를 조작하면서까지 임무를 완수해야 할 이유는 뭘까. 결국 임무 완수에 따른 자신의 위신과 영달이 아닌가. 


작전 지휘관은 어떤 정치적, 도덕적 판단 없이 법적인 판단을 앞세우며 '임무 완수'에만 매달린다. 부수적 피해를 조작하면서까지 임무를 완수해야 할 이유는 뭘까. 자신의 위신과 영달이 아닌가.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의 한 장면. ⓒ엔터테인먼트 원



이 딜레마에서 가장 큰 문제는 어느 누구의 선택과 결정은 옳고 어느 누구의 선택과 결정은 그르지 않다는 점이다. 전부 다 옳다고 할 수도 있고 전부 다 그르다고 할 수도 있다. 보는 이에 따라서, 처한 상황에 따라서, 신념과 환경에 따라서. 그래서 장관들의 비열하고 저열한 행태와 지휘관의 막무가내 임무 완수의 이유를 무조건 그르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구라도 그때 그 자리에 있다면 그렇게 했을 수 있다. 


사태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


영화는 직접적 피해자(폭탄 테러 조직)의 입장은 아예 다루지 않은 채 직접적 가해자와 간접적 가해자, 간접적 피해자를 다룬다. 사실 간접적 피해자도 입장 서술이 전혀 되지 않고 일방적으로 당하기 때문에 다뤄지지 않는다고 보면 맞겠다. 그렇게 볼 때 오로지 가해자의 입장만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간접적 가해자의 입장이 애매하다. 다름 아닌 조종사인데, 미사일 투하 버튼을 누르는 이로서 윗선의 결정에 따라 실행만 할 수 있다. 그 결정에 따라 무고한 생명의 목숨을 빼앗게 되더라도 실행을 해야 하고 그 심리적 피해는 고스란히 실행자에게 돌아온다. 가해자이자 피해자이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들의 피해는 보상해주지도 보살펴주지도 않는다. 


영화가 가해자의 입장만 서술한 건 영화적으로 괜찮은 선택이었다. 피말리고 답답하고 한숨 나오는 결정의 시간을 긴박감있게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폭탄 테러의 당위성을 보여주며 스케일을 확장시켰다면 자칫 이도저도 아니게 될 수 있었다. 그들이 테러를 하려는 이유를 아예 배제함으로서 가해자의 딜레마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이 사태의 한 면을 거의 완벽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사태를 바라볼 땐 더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 맹목적이고 절대적인 사고를 지양해야 한다. 극단적 사고와 행동을 보이는 그들을 극단적으로 제압하려고 할 때는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의 한 장면. ⓒ엔터테인먼트 원



그렇지만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다. 영화는 영화고, 사태 자체를 바라볼 땐 더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 맹목적이고 절대적인 사고를 지양해야 한다. 극단적 사고와 행동을 보이는 그들을 극단적으로 제압하려고 할 때는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물론 그것이 필요한 것과 그것이 가능하다는 건 또 다른 얘기다. 누구라도 필요하다는 건 알겠지만 가능할지는 모르지 않을까. 그래도 해야하는 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건지 태초의 연유부터 따져보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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