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아쿠타가와의 중국 기행>
<아쿠타가와의 중국 기행> 표지 ⓒ섬앤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우리나라의 '이상'과 같은 느낌이자 위상을 갖고 있다. 각각 30대, 20대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도 그렇고, 일본의 '아쿠타가와상'과 한국의 '이상문학상'이 그 이름에 걸맞게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것도 그렇다 하겠다. 실제로 이상은 아쿠타가와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천재들의 합창이다.
우리에게 아쿠타가와는 어떻게 다가올까.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는 알지 모른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로도 유명한 <라쇼몽>. 그 원작을 그가 썼다. 1915년 작인 <라쇼몽>과 1922년 작인 <덤불 속>을 교묘히 각색했다. 인간의 내면, 나아가 심연을 이토록 완벽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니. 또한 이 작품은 굉장히 다각적이고 다층적인 이야기를 뽐내는데, 그 의식과 수법은 다름 아닌 그의 생애 처음의 '중국 기행'에서 영향을 받았다. 대단하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
그는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1/5이 지나가는 시점에 자살로 생을 마쳤으니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를 살았다. 짧은 평생, 외국에 나가보는 게 꿈이었던 그에게 기회가 온다. 1921년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사'의 객외 사원이 되었고 곧 중국으로 떠나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약 4개월 간 체류하였고 돌아와 <상해유기> <강남유기> <장강유기> 따위를 집필했다.
만족스러운 거 하나 없는 중국의 첫인상
중국에 가기 전, 아니 평생에 걸쳐 그는 서구 지향 일변도의 문단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고 외려 한문맥적인 전통에 근거해 창작 활동을 전개했다. 그렇게 중국에 대한 관념을 쌓아 올린 아쿠타가와는, 그 근원인 중국에 가게 된 것을 무척 기뻐했다고 한다. 물론 일을 하러 가기 때문에 완전하게 즐기고 만끽하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서 본 중국의 실상은 그가 쌓아올린 관념으로서의 중국과는 완전히 달랐다. 낯 두꺼운 노파와 낮에 탔던 인력거, '유감스럽게도' 그들이 아쿠타가와가 받은 중국의 첫인상이었다. 그들은 초라하고 비참해 보였고 약싹 빠르고 비굴해 보였다. 또한 그가 중국에서 보낸 첫날 밤의 숙소에서 느낀 건 '만족스러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생각이었다.
"지금 현대 중국에 무엇이 있는가? 정치, 경제, 학문, 예술 모두 타락해 있지 않나? 특히 예술에 대해서 말하자면 가경과 도광 시기 이후 무엇 하나라도 자랑할 만한 작품이 있나? 게다가 국민은 노소를 불문하고 제 멋대로 태평이다. 물론 젊은 국민 중에는 조금이나마 활력이 있는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소리라 해도 전 국민의 마음에 울릴 정도로 커다란 정열은 없음이 사실이다. 나는 중국을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가 없다." (본문 212p 중에서)
첫인상이 안 좋은 건 괜찮다. 앞으로 나아지면 되니까. 그렇다면 과연 아쿠타가와의 중국에 대한 인상은 나아졌을까? 정답은 '아니다'이다. 중국 자체에 대한, 요컨대 자연 풍경이나 사람들의 행태에 대한 인상은 하등 나아지지 않았다. 어느 곳을 가도 그가 그리던 중국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가 애초에 품어 왔던 중국에 대한 열망이 엄청나기에, 실망을 하면서도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다만, 그가 만난 위대한 인물들은 '역시'라는 생각이 들 만했다.
아쿠타가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다층적인 중국 기행
중국을 가기 전과 후의 상호 모순적인 생각을 공유하게 되는 아쿠타가와. 그 혼란의 와중에도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생각을 거두지 않는다. 특히 중국은 당시 일본과 전쟁 중에 있었기 때문에, 타자가 일본을 보고 느끼는 바를 적나라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그걸 여실히 보여주는 천평산 백운사 정자 벽의 배일 낙서.
" 그중에는 "여러분! 거기 있는 당신 말입니다! 이런 중대한 시기에 저 굴욕적인 21개조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라는 것과 "개와 일본 놈은 벽에 낙서하지 말 것"이라는 것도 있었다.(그러나 시마쓰 씨는 태연하게 층운파의 하이쿠 제목을 짓고 있었다.)" (본문 154p 중에서)
이런 낙서를 마주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 자신이 동경하는 곳에 와서 자국을 욕하는 낙서를 보는 심경이. 그러면서 함께 간 또 다른 자국민은 태연하게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란. 자기 분열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또 그는 몸이 좋지 않았는데, 빡빡한 일정의 여행에서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또한 여행을 다녀와 글을 쓰는 와중에도 좋지 않은 몸이 더욱 안 좋아져 많은 고생을 한다. 이처럼 그의 생애 최초 중국 여행은 다층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후 그의 작품 활동과 그의 세상을 보는 눈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이 책은 아쿠타가와에게 있어서 전환점을 마련해준 계기가 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더불어 우리에게도 아쿠타가와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해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21세기 초, 전 세계는 혼란했다. 아시아는 그 혼란의 중심에 있었다. 거즌 100년이 지난 지금은? 혼란한 것에는 변함이 없다. 여러 의미로 아시아가 그 중심에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때 그 시절 일본 최고의 작가가 바라본 혼란의 한 가운데는 어땠을까. 처연했을 거다. 헛헛했을 거다. 혼란스러웠을 거다.
'신작 열전 > 신작 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법권 독립 투쟁으로 읽는 한국 현대사 <사법부> (1) | 2016.04.25 |
---|---|
혁명과도 같은 변화, 그 한가운데 있는 '중국' 기업들 <중국을 움직이는 거인들과의 대화> (1) | 2016.04.19 |
언제 쯤이면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 답이 나올 수 있을까 <음의 방정식> (0) | 2016.04.06 |
이 책의 매뉴얼 중 하나만 정확히 따르자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 (2) | 2016.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