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사법부>
<사법부> 표지 ⓒ돌베개
2015년 말 경 대법원 소속 사법정책연구원이 일반국민 1,100명과 재판 당사자 300명을 상대로 한 '국민의 사법절차에 대한 이해도 및 재판에 관한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법원을 어느 정도 신뢰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5점 척도 답변에 평균 3.04점을 줬다. 즉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60.8점인 것이다. 낙제점을 겨우 면한 정도 또는 낙제 수준의 점수다. '헌법의 수호자'이자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수호자'인 사법부가 왜, 어떻게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된 것일까.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고 하는 오늘날에도 사법권에 대한 독립을 외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즉, 사법권의 독립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사법권이 독립되지 않는다는 건 국민이 기댈 최후의 보루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도 그런 경우가 종종 생긴다는 건, 민주주의가 발을 붙이기 힘들었던 과거의 시기엔 사법권의 독립은 거의 불가능했다는 걸 의미한다. 한국 현대사는 사법권 독립 투쟁으로도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의 삼권은 국가 권력의 핵심이다. 이들 삼권을 분립하여 상호 견제와 균형을 유지시킴으로서 국가 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막는 건 민주주의 국가를 이끌어가는 기본 원리다. 이중 사법권은 나라를 구성하는 개인들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수호자이면서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행사되는 국가권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법권은 항상 정치권력의 침해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사법권을 쉽게 장악하고 휘두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사법권의 독립은 반드시 행해져야만 한다.
사법권 독립 투쟁으로 읽는 한국 현대사
한국 현대사에 거침없는 죽비를 내리쳐 왔던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의 <사법부>(돌베개)는 사법권 독립 투쟁으로 읽는 한국 현대사라 할 수 있겠다. 책의 태반을 중앙정보부와 안기부의 사법부에 대한 부당한 압력과 개입으로 채우고 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리는다는 악명 높은 권력의 최정점인 중앙정보부와 안기부가 뭔들 못했겠느냐마는, 그 중심에 사법권 장악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법부야말로 거꾸로 창을 겨누면 누구보다도 쉽게 헌법을 파괴할 수 있으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수 있을 텐데, 그걸 장악한 자 또한 그와 같은 짓을 마음껏 할 수 있을 터였다.
그 서슬퍼런 와중에도 많은 이들이 사법권 독립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권리와 의무를 행사한 것이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이 그리도 어려웠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법복을 벗고 법조계를 떠났다. 한홍구 교수는 그들의 일 또한 속속들이 보여준다. 물론 반대되는 이들이 더욱 많았다. 권력에 승복해 행정부의 시녀와 같은 역할을 자임하는 데 앞장 선 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 시대에 그들의 입장 또한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던 만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책은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쓴 만큼 어렵고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저자의 말대로 '화끈한' 자료를 찾기가 힘들고 그나마 있는 자료들도 기대만큼 확실한 정보를 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보의 단순한 나열로 비추기 일쑤이다. 그래도 울분과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수많은 에피소드들 개개의 긴박함과 함께, 사이다 같이 속 시원하게 평을 해주는 한홍구 교수의 말 한마디가 책을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이다.
1971년에 있었던 사법파동은 박정희 정권 하에서 사법부 스스로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치권력에 맞섰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였다. 그해 6월과 7월, 대법원은 국가배상법 위헌판결을 내리고 서울형사지법에서는 시국 사건에 대해 연이은 무죄판결을 내린다. 이는 사법부의 독립성을 만천하에 고취한 것이었다. 이는 박정희 정권의 심기를 거스르는 판결이었고, 정부가 어떤 수를 쓰든 이에 대해 손을 쓴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결국 현직 법관 두 명에 대해 검찰이 영장을 청구한다.
1971년 7월 말 경, 서울지검 공안부는 서울형사지법의 판사와 참여서기 등 세 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한다. 판사들은 격앙했고 집단사표를 제출한다. 37명이었다. 나중에는 사표를 제출한 법관의 수가 100명을 넘었다. 사법파동의 양상이 점차 법원과 검찰의 대립으로 치닫자 수습에 나섰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결국 법관들은 가장 단호한 무기라고 생각했던 사표 제출을 철회하고 투쟁을 그쳤다. 사법파동의 허무한 결말은 오히려 사법부로 하여금 저항의지를 잃게 만들었다. 이후 중앙정보부원들은 판사실을 대놓고 들락거리게 되었고, 사법부의 독립성은 사실상 무너졌다. 그렇지 않아도 1972년 10월부터 유신시대가 시작될 것이었다.
사법권 흔들기를 제지할 수 있는 건 사법부 그리고 국민 뿐
오늘날의 사법부는 어떤 모습인가. 민주화 이전의, 중앙정보부와 안기부로부터 수많은 압제를 받으면서 그래도 지키려고 애쓴 사법부의 독립과 사법부에 대한 신뢰의 길을 져버리지 않았는가. 외려 옛날 중앙정보부와 안기부의 그 권력과 위치를 사법부가 꿰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실제로도 그렇지 않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국민들이 체감하는 지금의 사법부가 그렇다.
저자도 지적하고 있듯이, 예전의 사법부가 국민이 아닌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건 외부의 압력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내부의 요인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지난 10여 년 간의 보수 정권 하에서 그들의 생각에 동조하는 판결을 많이 내린 모습이 눈에 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누군가의 압력으로 독립성을 침해당하고 갈 길을 제대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체가 독립성이 침해당한 모습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이리라. 이 모습이야말로 사법부가 제일 가지 말아야 할 길이다.
그러는 한편 이 나라를 움직이는 보수 세력의 사법부 때리기 또한 여전하다. 사법부가 보수 세력의 생각과 다른 독립적인 판단으로 판결을 내릴 경우, 그들 세력이 뿌리내려 있는 입법부, 행정부, 언론까지 총동원해 사법부를 흔들곤 하는 것이다. 그럴 때면 사법부로선 흔들리지 않고 버텨낼 재간이 없다.
이를 제지할 수 있는 건 사법부 그리고 국민 뿐이다. 사법부는 언제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킨다는 의무와 명분 하에 어떠한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며, 그들 자체적으로도 특권적 지위나 계급적 입장에서 멀어져야 한다. 국민은 사법부에 대한 관심과 믿음을 져버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살펴야 하겠다. '법'과 '정의'는 이와 잇몸처럼 한 몸 같은 관계이다. 정의가 구현되려면 법이 잘 지켜져야 하고, 법이 잘 지켜지기 위해선 사법부가 독립적인 판단으로 올바른 판결을 내려야 하며, 그래야 세상은 살 만하다. 국민은 살 만한 세상에서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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