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가족 쇼크> 저자 김광호 PD
2014년 말에 아홉 차례에 걸쳐 방영되며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는 <EBS 다큐프라임-가족쇼크>. 지금의 사회에서 가져야 할 가족의 의미를 긍정적 방향으로 재해석하고 가족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한 가족의 모습을 고찰했다. 우리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이며, 가족이 주는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지 물었다. 이 다큐멘터리로 '제27회 한국피디대상-교양정보부분 작품상', '2015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사회문화부분 우수상' '제42회 방송대상-사회공익부문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이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다큐를 접하지 못한 분들을 위한 수단일 터. 책 <가족 쇼크>의 대표 저자이자, <EBS 다큐프라임-가족쇼크>의 책임 프로듀서인 김광호 PD를 인터뷰했다. 1995년에 입사해 20년 째 EBS에 몸을 담고 있는 베테랑 PD. 장학 퀴즈, 어린이 프로그램을 거쳐 2005년 <60분 부모>를 시작으로 부모와 아이, 가족에 천착했다. 자타공인 부모교육 전문가다. 그와의 인터뷰는 마치 강연을 듣는 듯했다. 확고한 신념이 곳곳에 묻어 났다.
많은 콘텐츠 중에서 '가족'에 천착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요?
큰아이가 2001년에 태어났어요. 아이는 당연히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죠. 우리 윗세대가 그랬으니까요. 그냥 돈 열심히 버는 게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나를 찾지 않는 거예요. 나는 아이와 친해지고 싶었는데... 그때 <60분 부모>를 하게 되었어요. 2005년이었죠. 아이도 발달을 하고 아이에게도 속마음이 있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줘야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난다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행복에 대한 실제적인 부분을 알게 된 거예요. 좋은 아빠가 되는 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자연히 가족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죠. <60분 부모>를 하는 와중에 부모들이 흔히 겪는 오류를 발견했어요. 요즘 부모는 how를 먼저 배워요. 말투를 어떻게 해야지, 아이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지. 저 역시도 <60분 부모> 당시 how에 포커스를 두었지요. 덕분에 아이와는 친해졌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부작용이 생기더라고요. 관계는 금방 좋아졌는데 훈육이 되지 않아요. 이런 나도 이러는데 일반 부모들은 어떨까. 안 되겠다. 이런 것들을 더 널리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때 마침 ‘다큐 프라임’이 생겼어요. 2007년 즈음이에요. 풍속화로 시작했는데, 아이의 심리에 대한 다큐를 하게 되었어요. 문제는 아이가 아니더라고요. 부모가 훨씬 중요한 키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후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그렇게 아이와 부모, 가족으로 넘어갔죠.
다른 가족 콘텐츠에 반해 <가족 쇼크>가 갖는 차별점은?
처음에는 가족 내부에서 부모를 말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가족을 바라보는 지표가, 우리 사회의 지표가, 우리나라의 수준을 집어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족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하는 단어잖아요. 가족이라는 단어로 대한민국을 말하고 싶었던 거예요. 우리 사회는 가족을 어떻게 존중하고 있지, 어떻게 바라보고 있지, 외국인 노동자 가족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 생각했어요. 가족이라는 단어로 한정되어 있지만, 거기에는 우리가 사람을 대하고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까지 포함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가족 내부에 대한 이야기 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서 외부의 시선까지 담아내려 했어요. 그것이 바로 <가족 쇼크>의 가장 커다란 차별점이자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기존의 다른 가족 콘텐츠는 내부로만 천착해 있잖아요.
가족 전문가라고 할 수 있겠는데, PD님의 가족은 어떻게 진단하고 계신지요?
저희도 똑같이 싸우고 고민하고 넘어지고 해요. 그런데 중요한 건 저희는 고민이 생기거나 넘어졌을 때 조금은 자유롭고 여유 있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에요. 100점이 아니라 80점인데, 80점으로도 만족하는 그런 여유죠. 아이들은 한 번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서 다음 문제를 주지 않는 존재가 아니에요. 계속해서 아이들의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게 부모들의 입장이지요. 그런 문제들이 생겼을 때 예전 같으면 아노미에 빠졌죠. 그런데 지금은, 물론 저도 화가 날 때도 있고 허둥지둥 할 때도 있지만 예전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거죠. 그리고 그 문제를 풀 때 100점을 맞아야지 하는 게 아니라, 80점이라도 아이가 행복해지는 데 그 정도면 훌륭하지 하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어머니께서 예전에 ‘가족은 천륜이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는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보면 가족에 있어서 '관계'를 우선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예,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관계’예요. 10여 년 동안 가족 관련 프로그램을 하면서 느낀 게 뭐냐 하면요. 가족이 ‘천륜이다’ ‘혈연이다’라고 믿게 되면 가족 관계에 ‘본능’과 ‘되물림’이 들어와요. 그러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나를 돌아보는 노력과 의식을 하지 않게 돼죠. 그 관계를 본능이 지배하게 됩니다. ‘내가 아이를 낳았으니, 내가 아이를 보호해야 돼’라고 천륜, 혈연으로 생각하는 게 바로 본능이거든요. 그런데 이 아이에게도 삶이 있어요. 아이의 삶이 한 발 발전하기 위해선 부모가 한 발 물러나는 게 역할이야, 우리가 관계를 전제로 했을 땐 이런 것들을 학습하고 배우는데, 천륜, 혈연이 지배하면 생각할 수 없어요. 관계라는 키워드를 인식하게 되면 노력하고 학습하게 돼요. 반면 천륜과 혈연으로 인식하면 노력과 학습이 아니라 의무와 책임만 있을 뿐이에요. 그러면 불행해지기 쉬워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어요.
1인 가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의미가 바뀌거나, '가족'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요? '가족'에는 엄연히 집단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요.
정확한 답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관계에 대한 욕구가 있는 존재예요. 비록 1인 가구 형태가 되었더라도 그들은 어떤 집단에 소속하고자 하고 관계를 맺으려는 욕망이 틀림없이 있다고 봐요. 그러면 1인 시대와 관계에 대한 욕구가 어떻게 접점을 찾느냐, 그런 의미에서 가족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의미가 확대되면 충분히 그걸 담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1인 가족이라고 했을 때 단순히 한 사람 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갖고 있는 관계에 대한 욕구까지도 담는 단어일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요즘 3포 세대니 5포 세대니 청춘들의 아픔이 극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취직을 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다고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가족의 의미가 퇴색할까요?
저의 경우,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 아이가 정말 커다란 역할을 했어요. 백지에 가까운 아이 눈에 내가 어떻게 비쳐질지 생각하면 말이죠. 그런 면에서 아이가 없다면 그런 계기를 갖지 못하니 아쉬움이 있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없으면 가족으로서 온전하지 않거나 행복하지 않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1인 가족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과 비슷한 맥락이에요. 다만 저한테 아이를 낳는 것과 낳지 않는 것 중 추천을 하라고 하면 한 명이라고 낳아서 기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그건 선택이죠.
결국 공동체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요. 공동체에 대해 말씀 부탁 드립니다.
1인 가족 형태는 생길 수밖에 없고 증가할 수밖에 없어요. 이미 가족 형태 중에 1인 가족이 가장 많은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죠. 그럼 1인 가족들을 어떻게 해야겠어요? 어떻게 관계를 구축해주고 어떻게 연대해야 할지, 이런 부분들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제시하고 실험해야 해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나’에게만 빠져 있는 것 같아요. 옆을 돌아보지 않아요. 1인 가족들의 행복은 더 요원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럼에도 대비를 하지 않죠. 1인 가족들이 된 건 그분들의 잘못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구조적 문제를 탓하며 그냥 손 놓고 있어야 하나요? 우린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공동체’ 키워드를 통해 제시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 모든 걸 묶을 수 있는 게 바로 ‘관계’라고 생각해요.
육아 인터넷 카페 보면, 어마어마하게 활성화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도 일종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공동체로서 충분히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공동체냐 아니냐가 아니라 폐해가 훨씬 크다는 점이에요.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을 경험이 아닌 지식으로 키우는데, 육아 인터넷 카페가 바로 지식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봐요. 다른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를 키우는 정보를, 그대로 나의 아이에게 접목 시키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정보들이 나와 아이 관계를 100% 규정할 수 없거든요. 아무리 좋은 정보라도 나와 아이 관계에 맞지 않으면 그건 아닌 거예요. 육아 인터넷 카페가 그런 종류의 폐해를, 경험으로 나와 아이 관계를 이어나가는 데 일정 정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봐요. 그리고 무엇보다 육아 인터넷 카페는 ‘불안’을 자극해요. 최대 문제점이라고 생각하는 데요. 서로 정보를 교류하며 그 중에 나에게 맞을 것 같은 정보를 취하게 되면 기대치가 생겨요. 내가 이 정보로 100% 아이를 보살펴줄 수 있다는 기대치요. 그런데 실제로 그 아이에게는 다른 조건이 있을 거예요. 그 조건을 무시한 채 한 부분만 취해서 나의 아이에게 적용해보면 맞지 않는 거예요. 맞지 않으면 좌절해요. 좌절하면 불안해지죠. ‘나는 좋은 부모가 아닌가봐’라면서. 카페는 하되 내 아이에 맞는 방식을, 정보들을, 선별하라는 거예요. 거기에 휘둘리지 말고요. 아이들은 정보나 지식으로 키우는 게 아니라 경험으로 키우는 거예요.
준비 중인 다음 작품이 있는지요? '가족' 나아가 ‘관계’와 ‘행복’에 대한 콘텐츠인가요?
이번엔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어요. 정확히는 ‘감정’인데요. ‘왜 불안하지?’의 해답을 찾아보려 해요. 가족으로 대한민국을 들여다봤다면, 이번엔 감정으로 대한민국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거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관련 자료가 많지 않더라고요. 올 연말 즈음에 방송으로 나갈 것 같아요. 머리가 복잡합니다. 큰 틀 안에서는 관계와 행복이라는 키워드를 벗어나지 않을 것 같아요. 제가 그것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크기 때문에 계속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다만 관점을 다르게 하는 것 뿐이에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 부탁 드립니다.
가족 내부로 보면 좋은 가족이란 뭐지, 내가 지금 같이 생활하는 가족들의 관계는 어떻지, 앞으로 어떤 부분들을 가족 내부 관계 속에서 고민해야 하지, 이런 관점들을 생각하면서 책을 보면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얻어 가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또 하나 있다면, 가족 외부의 시선, 가족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수준을 아울러 생각하면 좋겠어요. 나를 포함해 우리 가족은 다른 가족을 어떻게 보고 있지, 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지, 이런 관점까지 같이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나를 포함해 우리 구성원들이 이렇게 바라보고 있구나, 이런 걸 정리하고 나면 이제 앞으로 어떤 걸 고민해야 할지 보일 것 같아요. 가족 내부와 외부를 같이 고민하면서 이 책을 보면 좋겠어요. 그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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