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스파이 브릿지>
영화 <스파이 브릿지> 포스터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2012년 작 <링컨>로 위대한 신념, 모두가 반대한 선택, 숨겨진 실화를 완벽에 가깝게 그려냈다. 2013년 아카데미에 12개 부분에 노미네이트되어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게 남우주연상 최초 3회 수상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3년 만에 다시금 위대한 신념, 모두가 반대한 선택, 숨겨진 실화의 이야기를 들고 온 스티븐 스필버그. 이번에는 그의 페르소나 톰 행크스와 함께 했다. 영화 <스파이 브릿지>다. 20세기 중반 냉전 시대의 스파이가 주인공이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스케일이 큰 영화에 탁월한 솜씨를 보이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연출과 각본에 참여한 코엔 형제의 이야기, 믿고 보는 배우 톰 행크스의 연기를 기대해본다.
누구나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아무런 설명 없이 한 남자를 쫓으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그가 길을 나서자 감시자들이 붙는다. 곧 그의 집을 수색하고 그를 끌고 간다. 아무래도 그가 스파이인 것 같다. 때는 미국과 소련 간의 핵무기 공포가 최극단으로 치단 1957년, 로젠버그 부부가 원자 폭탄 설계의 스파이 용의자로 구금되어 3년 만에 사형 당한 지 4년 후였다. 그 와중에 루돌프 아벨(마크 라이런스 분)은 소련 스파이로 지목된다.
영화 <스파이 브릿지>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한편 잘 나가는 보험 전문 변호사 제임스 도노반(톰 행크스 분)에게 웃기지도 않은 의뢰가 들어온다. 그것도 강제적으로. 다름 아닌 루돌프 아벨의 변호를 맡으라는 것이었다. 즉각 처분을 받아도 마땅하다고 생각되는 그를 변호함으로써 미국이 어떤 나라 인지를 보여주라는 의도였다. 이에 도노반은 수락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그의 신념은 '누구나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였다. 설령 스파이라 할지라도.
뜬금없지만 영화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병치한다. 최고의 전투기 비행사들을 CIA가 포섭해 적국을 상공에서 고도의 카메라로 찍게 하려는 미국의 수작이다. 왜 이 이야기가 필요하고 얼마나 중요한지는 나중에 나오지만, 너무 끼워 맞춘 게 아닌지 의아하게 만든다. 마치 도노반의 신념을 지켜주기 위해 필수불가결하게 진행되어야만 한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실화임을 인지한다면 꼭 그렇지도 않다.
세상과 맞서는 도노반의 신념
도노반의 신념은 많은 이들을 분노케 한다. 당장에라도 핵 전쟁이 터질 것 같은 시기에 적국 스파이로 의심되는 이를 변호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게 아닌가.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게 당연하다. 심지어 누구보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행동하고 생각해야 할 법정의 판사조차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도노반의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한 예언(?)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또한 그의 신념은 그의 가족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그 피해를 크게 그리고 있진 않지만, 알 수 없는 이가 집에 총을 난사한다 거나 그걸 조사하러 온 경찰이 오히려 도노반과 가족들에게 성을 낸다 거나 도노반의 변호에 반대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집 앞에 진을 치고 항의를 한다 거나 하는 것들이다. 링컨이 신념을 위해 아들을 사지로 내몬 것보다는 덜 하겠지만, 신념은 때로 내가 내 자신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의 가족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제일 크게 다가오는 딜레마일 것이다. <링컨>과는 달리 <스파이 브릿지>에서는 그걸 크게 부각 시키진 않았다. 조금 아쉽게 다가온다.
영화 <스파이 브릿지>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도노반은 첫 번째 신념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두 번째 신념 전쟁을 치르러 베를린으로 떠난다. 그가 예언 했듯이 미국인 군인이 소련 측에 붙잡혔고 루벨과 맞교환을 하기 위해서 였다. 소련 측에서 먼저 원했기 때문에 일은 순조로울 것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 또 한 명의 미국인 학생이 소련 측에 붙잡힌다. 정확히는 소련의 위성국가 동독에. 도노반은 군인과 루벨과의 맞교환만 실행하면 되는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도노반은 군인과 학생을 루벨과 교환하려는 신념이 생긴다. '모든 사람은 변호 받을 권리가 있다'는 신념에 이어지는 것일 테다. '모든 사람'에는 당연히 미국인 군인과 학생, 소련 스파이 루벨도 포함된다. 그리하여 도노반은 CIA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인 군인과 학생을 동시에 돌려보내기 위해 고군분투를 마다하지 않는데... 한낱 민간인 신분으로 국가가 반대하는 일을, 그것도 그 험악한 시기에 행할 수 있을까?
스티븐 스필버그, 그만의 휴머니즘이 한계에 이르다
실화를 이야기할 때 언제나 휴머니즘에 천착하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메시지가 이번 영화에도 통용될까? 자칫 잘못하면 영화가 이상하게 흘러갈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매번 같은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의 스타일에 질릴 수도 있다. 물론 그는 그의 스타일을 고수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문제는 영화의 배경이 그 어떤 전작보다 더 암울하다는 점이다.
그럴수록 긴장과 함께 감동이 배가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감독이자 작가이자 배우이다. 반전을 최대한 배제하고 '왜'와 '어떻게'에 초점을 맞춘다.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거기에는 개인의 용기와 신념이 절대적이다. 그 용기와 신념은, 어떻게 실천에 옮길 지가 매우 중요하다. 이 또한 개인의 능력이 절대적이다.
영화 <스파이 브릿지>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개인의 용기와 신념과 능력이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상황, 결코 좋지 만은 않아 보인다. 영웅이 없으면 사회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인가? 위대한 개인들만이 세계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인가? 영화는 말하고 있다. '맞아도 맞아도 계속 일어나 서 있을 수 있는 사람만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 어떻게 세상에 그런 사람들만이 있을 수 있겠는가.
당연히 그런 사람들만이 있을 수 없다고 치자. 그렇다면 몇몇 사람들에게 그런 능력을 기대한다는 것인데, 그 몇몇 개인들은 왜 그래야만 하는 건지? 평범한 사람들은 할 수 없으니, 평범한 사람들의 거대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몇몇 개인들이 그 일을 도맡아 하고,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영웅 대접을 받고 살라는 것인지? 그 사람들이 단지 뛰어난 용기와 신념과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
영화는 거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그건 스티븐 스필버그 또한 마찬가지다. 그의 영화가 기막힌 울림과 감동과 재미와 여운을 주는 건 맞지만, 그것에 계속적으로 천착해 누구나 인정하는 거장의 반열에 올라간 건 맞지만, 아직 그 이후를 보여주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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