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시간을 달리는 소녀>
<시간을 달리는 소녀> 포스터 ⓒTHE픽쳐스
일본 애니메이션과 타임리프(시간여행)의 만남은 어떨까. 시간여행 소재는 흔하다. 얼핏 생각나는 것도 한국 영화 <동감> <시월애>, 헐리우드 영화 <나비효과> <어바웃 타임> <이프 온리> <시간 여행자의 아내> <엣지 오브 투모로우> 등에 달한다. 반면 애니메이션, 일본 애니메이션과의 만남은 기억에 없어 기대에 부푼다. 실사로는 표현하기 힘든 화려하고 웅장하며 다분히 판타지적인 느낌을 표현해줄 것 같다.
그 주인공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판타지적이지도 않았다. 굉장히 소소하고 일상적이었다. 그래서 기대를 져버렸던가?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접한 타임리프 소재 콘텐츠 중 감히 최고라고 단언할 수 있겠다. 일상에 뿌리를 두고 사랑과 우정, 성장의 곁가지를 보기 좋고 튼튼하게 훌륭하게 조화 시켰다.
소소하게 일상을 그려내 타임리프의 장점을 살릴 수 있었다
여고생 마코토는 남고생 치아키, 코스케와 단짝이다. 셋은 같은 학교 같은 반으로 매일 방과 후에 야구를 하곤 한다. 코스케는 듬직하고 잘생겼고 공부도 잘하는 친구다. 의대에 갈 생각이다. 치아키는 코스케의 반대라고 보면 된다. 마코토는? 치아키랑 비슷하다. 뭐 하나 잘하는 게 없고 천방지축이며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다. 오히려 코스케가 비정상이고 치아키와 마코토가 정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던 어느 날, 우연도 그런 우연이 없게 마코토는 타임리프의 능력을 얻는다. 얼마 후 자전거 브레이크가 고장 나 기차에 치는 사고를 당한다. 그 순간 마코토는 과거로 타임리프 한다. 사고 사실을 알고 있는 그녀는 어찌 대처해서 살아난다. 능력을 알아채고 방법도 알아낸 마코토는 그야말로 남발하기 시작한다.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일을 당하면 과거로 돌아가 좋게 되돌리곤 하는 것이다. 그녀는 맛있는 것도 먹고 공부도 잘하고 요리도 잘하고 천방지축이지 않은 마코토가 되어 있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한 장면 ⓒTHE픽쳐스
극 중 타임리프의 대상은 순수하게 일상이다. 남발한다고 하지만 전부 대세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세상이 바뀌진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그녀만 조금 좋아졌을 뿐이다. 이 일상의 반복은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와 이 영화가 그리는 이미지와 완벽히 맞아 떨어진다. 메시지는 뒤에서 다시 말하기로 하고 먼저 이미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이 영화의 이미지는 굉장히 소소하다. 반면 어울리지 않게 굉장히 디테일하다. 캐릭터의 동작이 과장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표정의 급격한 변화 대신 동작에 힘을 실은 것 같다.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되 미세하게 바뀌는 부분이 있어야 타임리프의 장점을 살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코토는 자신의 타임리프 경험을 이모에게 털어놓는다. 진지하게 받아들인 이모(원작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주인공)는 자기도 여고생 때 그런 적이 있다며 마코토에게 "네가 그런 이익을 보게 되면 누군가는 손해를 보게 되지 않을까"하고 충고 한 마디를 한다. 그 한 마디에 마코토는 뭔가 깨달았을까?
한편 마코토는 치아키에게 뜻하지 않은 고백을 받는다. 이 불편한 감정을 어찌할 바 모르고 계속해서 타임리프를 시전 한다. 그것도 모자라 치아키를 계속 피해 다니는 것이다. 갈림길에 서 있는 마코토. 어떤 선택이 맞는 것일까? 계속해서 마코토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 이모의 한 마디가 실제가 되어 마코토에게 되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결국 치아키는 다른 친구와 좋은 관계를 맺는다. 마코토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어른이 되어도 '사랑'으로만 성장하면 좋겠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청춘 성장 애니메이션이다. 시작할 때 하고 싶은 게 뭔지 몰라 우물쭈물하던 마코토는 영화가 끝날 때 맑은 눈으로 창공을 바라본다. 하고 싶은 게 생긴 것이다. 치아키도 마찬가지다. 시작할 때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에 당황해 평소엔 잘 받기만 하던 야구공을 잡지 못했던 치아키가, 영화가 끝날 때쯤 훌쩍 유학을 떠나버린다. 그 사이 이들에게는 타임리프에 관련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한 장면 ⓒTHE픽쳐스
마코토는 타임리프를 시전 하고자 할 때마다 어딘가 뛰어가 점프를 한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 마찬가지다. 마코토는 지금까지 뛰어가 점프를 한 적이 없다. 그런 시도를 해본 적도 없을 것이다. 장차 무엇을 해야 할지 반드시 알고 전진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다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미래가, 그녀의 성장이 '사랑'으로만 치환되는 게 조금 아쉽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그녀의 사랑과 성장에 얼굴을 찌푸리지 않게 되는 건 '공감' 덕분일 것이다. 누구나 한 번 쯤은 거쳐가는 사랑의 열병. 사랑의 열병은 사람을 때론 절망에 빠지게 만들고 때론 절대 할 수 없는 것들도 하게 만든다. 마코토는 사랑으로 절대 알 수 없을 것 같았던 미래를 꿈꾸는 법을 알게 된 것이다.
여운이 참 은은하게 남는다. 짙게 남지도 않고 먹먹하게 남지도 않으며 삭막하게 남지도 않는다. 마코토는 분명 어른이 되는 큰 한 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너무 빨리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른이 되고서 라도 계속 '사랑'으로만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시대 모든 사람들이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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