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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도서

헤밍웨이가 썼던 몰스킨은 우리가 아는 그 몰스킨이 아니다? <문구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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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문구의 모험>



<문구의 모험> 표지 ⓒ어크로스


컴퓨터로 쓰고 프린터로 뽑힌 교정지 위에 작가의 육필이 담깁니다. 전 그걸 다시 컴퓨터를 이용해 원고에 옮기죠. 그러곤 그 원고 교정지를 뽑아 저 또한 육필로 교정을 봅니다. 그럴 때면 어김 없이 어색한 기분이 들어요. 펜을 손에서 놔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는 느낌 때문인데요. 대학생이 되고 부터는 펜 대신 컴퓨터 키보드가 익숙해졌죠. 그래도 펜이 할 일은 여전히 있는가 봅니다. 


스마트폰이 나와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어요. 그 인기는 지금도 여전하고요. 스마트폰으로 못하는 게 거의 없어요. 그 중에서도 초창기에 엄청 알리려는 기능이 생각납니다. 손으로 화면을 터치하는 거, 펜으로 화면에 글씨를 쓸 수 있는 것 등의 터치 관련 기능 말이에요. 그래서 전 더 이상 펜이 필요 없게 될 줄 알았어요. 굳이 종이에 쓸 필요 있나요? 스마트폰에 쓰면 되잖아요. 그런데 지금 보세요. 누가 스마트폰에 펜으로 글씨를 쓰나요? 정말 보기 힘들죠. 저 또한 한두 번 해보고 그만 뒀어요. 펜은 여전히 살아 있네요. 


펜의 위상이 예전만 못한 건 확실하죠. 모든 걸 집어삼키는 블랙홀인 스마트폰의 존재 때문이겠죠. E-book이 등장하면서 종이책의 시대가 끝날 거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과연 그런가요? 지금 상황이 그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는 가요?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문구의 모험>(어크로스) 저자인 제임스 워드 또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는 펜, 종이의 생명이 그리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해요. 심지어 펜은 앞으로도 죽지 않을 것이고, 펜을 포함한 문구류가 영원할 거라 말합니다. 


어릴 때, 아마 초등학생 때겠죠? 당시 저희 집은 구멍가게를 하고 있었어요. 초등학생의 필수품 중 하나인 과자는 원 없이 먹었죠. 지금 생각해보니 축복 아닌 축복이었네요. 다른 하나의 필수품은 무엇이었을까요? 장난감이 아니었을까요. 장난감은 문방구에서 팔았어요. 그런데 막상 문방구에 가면 장난감은 안 보이고 온갖 문구류가 보였어요. 문방구니까 문구류가 많이 보였겠죠? 


가장 많이 보이는 건, 역시 펜과 노트. 그리고 교실에서 많이 쓰일 만한 문구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각나요. 사쿠라 펜, 형광펜, 화이트(수정테이프), 포스트잇. 이것들이 뭐냐 하면요. 제가 정말 갖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었던 문구들이에요. 기억으론, 당시 초등학생 기준으로는 너무 비싸서 가질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몇몇 친구들은 가지고 있었죠. 참 많이 빌려서 썼어요. 


문구류의 역사와 뒷이야기


<문구의 모험>에는 그런 문구류들의 역사가 정말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어요. 문구가 스스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태어나는 만큼, 문구의 역사를 기술함에 있어 만들고 발전시킨 사람이 크게 부각되게 되어 있죠. 또한 개인이 아닌 회사에 의해 팔리는 만큼 회사 또한 크게 부각되고 있어요. 그런 점이 조금 불편했지만, 문구에 얽힌 수많은 뒷이야기들은 흥미로웠습니다. 


몇몇 문구류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볼까요? 전 세계적으로 제일 유명한 공책인 '몰스킨' 잘 아시죠? 몰스킨 공책은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어니스트 헤밍웨이, 브루스 채트윈 등 유명 인사가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그래서 엄청난 인기와 함께 전설적 존재가 되었죠. 하지만 그들이 사용한 공책은 현재 몰스킨이라는 브랜드를 가진 회사에서 낸 공책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몰스킨 공책과 비슷한 종류의 공책이었을 뿐이죠. 예를 들면 이런 식이죠. '머그컵'으로 불리지만 정확한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 어떤 종류의 컵이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자, 어느 회사가 '머그컵'이라는 브랜드로 머그컵을 팔기로 한 거예요. 그러고는 예전의 머그컵의 좋은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와 브랜드에 입힌 거예요. 몰스킨의 진짜 모습입니다. 


연필에 관련된 일화도 있어요. 에버하드 파버 사가 1934년에 출시한 '블랙윙 602'이라는 제품이 있는데요. 이 연필을 예찬하는 대가들이 많았다고 해요. 스타인벡이 제일 좋아한 품종이 블랙윙 602라고 하고요. 이 밖에도 많은 유명 인사들이 이 품종을 좋아했는데, 아쉽게도 1998년에 생산이 중단되었다고 해요. 비싼 가격이 유명 인사들에게는 부담이 되지 않았지만 상업적으로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죠. 


"스타인벡 외에도 블랙윙의 팬은 많았다. 프랭크 시나트라와 함께 작업한 것으로 유명한 기획자 넬슨 리들은 그 연필을 제일 좋아했다. 퀸시 존스는 작업할 때마다 주머니에 이 연필을 한 자루 꽂아두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그의 마지막 소설인 <할리퀸을 보라>에 그 연필을 등장시킨다. 만화작가 척 존스는 자기 그림을 "블랙윙으로 만들어 낸 흩날리는 드로잉들"이라고 묘사했다." (본문 중에서)


홍보용 펜에 관한 웃지 못할 일화 하나 소개할게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스폰서이기도 한, 세계적인 은행 '바클레이스 은행'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2004년에 이 은행은 새로운 계획을 실험합니다. 은행에 가면 분실 방지용 끈이 달려 있는 펜이 있죠? 그게 은행이 고객들과 맺던 낡은 관계를 상징한다고 생각해, 끈을 풀어버렸어요. 그러곤 공짜로 얼마든지 가져가라고 했죠. 일종의 신뢰 관계를 보이려는 의도였죠. 하지만 그 의도는 보기 좋게 빗나갑니다. 한 지점에서 5일 만에 4000 자루가 사라졌죠. 급기야 2006년 영국의 1500개 지점에서 모두 실시했는데, 총 1000만 자루가 사라졌고 그 가격은 총 30만 파운드(약 6억 원)가 되었다고 해요. 


만년필과 양초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그들이 살아 남은 방법이 아닐까요. 과거에 만년필이 우리에게는 작업 도구였지만 이제는 장식품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변해가고 있죠. 그 인기가 결코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양초 또한 전구가 발명 되어 사라질 운명이었어요. 하지만 양초는 예술의 영역으로 이동해 낭만적인 물건으로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어요. 


져버리기 힘든 '문화', 그리고 '문구'


문구의 역사보다 이런 뒷 이야기들이 훨씬 재밌는 것 같아요. 앞서도 말했듯이 문구라는 게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알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그 이후에는 생명력을 갖게 되어 오히려 누군가를 끌어 당기게 되지 않나 싶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문구 덕분에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는 한편 문구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죠. 


우리가 살아 가면서 없어도 되는 것들은 참 많아요. 사람은 기본적인 것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어요.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체화 되어, 없어도 살아갈 순 있지만 반드시 찾게 되는 것들이 있죠. '문화'라는 큰 범주가 그게 아닐까 생각해요. 문화 생활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문화가 한 번 우리 삶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져버리기 힘들죠. 


여전히 없어도 그만 있으면 편리한 그런 존재, 학생일 때 교실에서만 사용했던 어릴 때의 추억 정도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문구는 우리 삶에서 그런 존재가 아닐까 해요. 우리네 삶과 문화와의 관계처럼. 아니, 문구도 문화의 한 부류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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