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알바생 자르기>
<알바생 자르기> 표지 ⓒ아시아
요즘 시국이 뒤숭숭합니다. 20여년 전의 노동법 날치기 사건에 비유하고 있는 2015년의 '노동개혁' 논란.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수작이라는 '국정 역사 교과서' 논란. 거기에 반 년 앞으로 다가온 20대 총선을 겨냥한 수많은 정치적 이슈들까지. 태풍처럼 모든 걸 집어 삼키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앞으로 무엇이 또 튀어나올지 기대(?)되기까지 하네요.
그런 와중에 불과 한 달 전에 화려하게 불타올랐던 노동개혁 논란은 상당히 수그러들었습니다. 2000만 노동자의 생사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말이죠. 이번 노동개혁 중에 최대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 중 하나가 '쉬운 해고'예요. 기존의 일반 해도에 업무성과가 낮은 근로자도 해고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을 추가하자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죠. 노동자에게는 정말 무시무시한 '개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존을 위해 생업에 뛰어 들었기로서니, 그곳에서 다시금 피가 튀기는 생존 게임을 하게 되었네요.
생존과 생계를 위해 일을 하는 알바생
아르바이트라고 하면, 고용주나 피고용주나 편안하게 생각하기 쉽지요.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하는 식으로 전전하는 게 하등 이상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해고에 대해서 큰 이질감이 없죠. 아니, 서로 간에 해고를 하고 해고를 당하고 하는 모습을 보기 쉽지 않아요. 대부분 알바생이 자발적으로 그만두거나, 해고를 하게 되는 경우에도 서로 쿨하게 받아들이곤 하거든요.
하지만 시대가 많이 바뀐 지금, 많은 알바생이 생존을 위해 생계를 위해 일을 해요. 예전에는 용돈이나 벌어볼 요량으로 했다지만, 지금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지 못한 젊은이들이 대거 알바 자리에 진출했기 때문이죠. <알바생 자르기>(아시아)는 생존을 위해 알바를 하는 이와 알바를 그저 알바처럼 생각하고 쉬운 해고를 행하려는 이의 줄다리기를 그렸어요. 과연 그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대로, 거악 고용주에 맞선 약자이자 피해자 알바생의 투쟁이 펼쳐질까요?
천만예요. 이 소설을 보면 누가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먼저 제목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면, 고용주의 입장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을 거예요. '나는 회사에서 잘렸다'가 아니라 '나는 알바를 자른다'이지요. 작가는 정녕 특이하게 적어도 겉으로는 알바생을 자르려는 고용주 또는 고용주급의 어려움을 그립니다. 더 이상 쉽게 해고할 수 있는 알바가 아닌 거예요. 알바생의 행동 거지를 한 번 봐요.
알바생 혜미는 하는 일이 별로 없어 보여요. 손님이나 높으신 분이 와도 차를 내지도 않고요. 항상 차갑고 뚱한 표정으로, 그렇지만 탤런트 이다해 뺨치는 외모로 이목을 끌어요. 고용주 입장에서는 정말 꼴보기 싫겠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겠어요. 알바니까 별 생각 없이 자르라는 말이 나오겠지요. 그런데 중간관리자 은영이 생각하기에는 가혹한 것 같아요. 그녀는 혜미를 위해 나서죠.
혜미를 보호하기 위해서 은영은 혜미에게 잔소리를 시작해요. 하지만 혜미는 바뀌지 않죠. 오히려 그동안 몰랐던 혜미의 '깜찍한' 행동에 치를 떨어요. 결국 그녀도 알바생 혜미를 자르자는 사장의 의견에 동조하게 되죠. 문제는 그 다음부터예요. 알바생 하나 자르는 게 너무 힘들어요. 혜미보다 은영 자신이, 잘리는 게 거의 기정사실화 되어 있는 혜미보다 자르는 입장의 은영 자신이 더 힘든 거예요.
저도 소싯적에 알바를 해보았어요. 이것 저것 다 합치면 10번 정도는 해봤을 거예요. 그 중에서 굴찍한 게 3~4번 정도.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는 일반 직원 그 이상으로 헌신했던 것 같아요.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혜미는 왜 그럴까요? 그녀도 '생존'과 '생계'를 위해 알바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말이에요.
사실 이 지점에서 저도 어떤 생각과 행동과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소설 속 혜미는 분명 알바생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아요. 해고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움이나 자괴감 따위가 들지 않지요. 그런데 사실 그녀는 자신의 일을 하고 있거든요.
결국 희생당하는 건 알바생이다
엄연히 말해서 상사에게 싹싹하게 잘 보이고, 점심 시간에 동료들과 같이 밥을 먹고, 일할 시간에 할 일이 없어도 찾아서 일을 하는 것 등이 그녀가 할 일은 아니지요. 그런 것들이 일이라는 큰 틀에 자연스럽게 파고들어가 있기에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죠. 또 그녀가 해고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싹싹함, 즉 위로금을 받아내고 4대 보험비를 챙기는 행위가 누군가의 눈에는 아니꼽게 보이겠지만 사실 정정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거잖아요. 이렇게 말하고 있는 저조차도 어떤 확신이 들지 않네요.
저자는 여기에서 한 번을 더 꼬고 또다시 꼬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갈팡질팡 도무지 중심을 잡지 못하게 만들어요. 정말 교묘하다고 할까요. 무슨 말인고 하면, 그녀가 크게 티나지 않는 지각을 자주 하고 점심 시간이 약간 지날 때까지 병원을 다니는 거예요. 그런데 그 이유가, 그녀의 집이 회사에서 너무 멀어서이고 그때문에 언젠가 다리를 다쳤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왜 그렇게 멀리까지 회사를 다니냐, 가까운 데로 회사를 옮기면 되지 않느냐 라고 말할 수 있겠죠.
이처럼 이들은 도무지 누가 정답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어요. 그건 우리 모두 마찬가지겠죠. 그래도 책의 마지막이 이런 말이라서 다행이에요. 저자가 그래도 마지막엔 무게 중심을 알바생 쪽으로 기울인 것 같은 인상을 주네요. 한편, 서글프기 그지 없네요. 결국 뭔 짓을 해도 알바생이 을이잖아요. 고용주를, 관리자를 아무리 귀찮게 하고 난감하게 해도 해고 당하는 건 알바생이고 생계와 생존을 위협받는 건 알바생이잖아요. 그 사실을 절대로 잊으면 안 되지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여자아이는 가방에 손을 넣어 봉투를 확인했다. 봉투를 땅에 떨어뜨리고 돈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겁이 났다.(이렇게 주지 말고 계좌로 부쳐줬으면 좋을 텐데.) 건물을 나서자마자 은행을 찾아갈 참이었다. 학자금 대출을 제때 갚지 못해 독촉을 받고 있었다. 여전히 발목이 아팠다. 인대 수술을 받느라 퇴직금을 다 썼지만 별로 나아진 게 없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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