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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군생활을 잘한 이들의 비극 체험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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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표지 ⓒ휴머니스트


지난 해 4월이었죠? 육군 28사단에서 '윤 일병 사건'이 발생했었습니다. 윤 일병에 대한 선임병의 상습적이고 엽기적인 가혹행위로 인해 윤 일병이 사망에 이르게 된 사건으로, 4개월 만에 전모가 밝혀지면서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었죠. 6월에는 육군 22사단에서 임 병장이 GOP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수류탄을 터뜨려 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도 있었습니다. 관심병사였던 임 병장에 대한 왕따와 기수열외가 그 원인이었다고 해요. 유난히 심한 작년이었지만, 이런 사건사고들은 매년 일어나곤 합니다. 


우리 국군은 외형적으로는 엄청난 발전을 거듭해 왔지요. 현재 국방 예산은 한 해 40조에 이르고, 군사력으로 전 세계 10위 안에 들죠.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세계 10위는 커녕 저 밑의 군사 후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하네요. 그 제일 큰 이유가 위에서 언급한 사건사고들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 사건사고들은 군대에 만연해 있는,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되어 온 악습과 폐습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죠. 


제가 군 입대한지가 올해로 딱 10년이네요. 2005년에 입대했지요. 제가 아직 신교대에 있었을 때예요. 논산 훈련소에서 인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정확히는 제가 입대한 날에 발생했다네요. 어느 중대장이 야간점호 중에 화장실 좌변기에 대변이 남아 있을 걸 보고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훈련병에게 대변을 먹이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죠. 하필 제가 있던 36사단 신교대에 점검 차 대대적인 검열이 왔었지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현 대통령을 필두로 무수히 많은 별들께서 오셨지요. 


또 있습니다. 아마 제가 막 일병이 되었을 때였던 것 같아요. 경기도 연천군 GP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것이죠. 일명 '김 일병 사건'인데요. 작년 4월에 있었던 '윤 일병 사건'과 같은 28사단에서 일어난 초대형 사건이었습니다. 내무반에서 일어난 거라 더욱 충격적이었는데요. 이 또한 선임병의 가혹행위에 대한 보복이 제일 큰 이유였습니다. 


10년이 지나도 전혀 변한  게 없죠? 어디 10년 뿐이겠어요? 자그마치 50년 전인 1962년에도 최영오 일병 사건이 있었습니다. 애인의 편지를 가로채고 조롱하고는 구타까지 한 선임병을 살해한 사건이죠. 이 역시 일종의 가혹행위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총살형이 쳐해졌는데요. 마지막으로 "민주적인 군대가 되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고 해요. 참 복잡다단하고 혼란스런 마음을 느끼게 해주는 사건들입니다. 


만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휴머니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이런 게 아닐까요. 제목 그대로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한국 군대 말이에요. 이 만화는 상당히 코믹합니다. 그런데 무지하게 잔인하죠. 군대의 실생활을 정말 조금도 각색하지 않고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믿지 못할 수 있고, 부대마다 다르기 때문에 누구는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사실입니다. 그 잔인한 나날을 코믹하게 보여주기에 더욱 마음이 아프네요. 


폭력과 가혹 행위, 내리 갈굼, 방관과 조장, 자기 합리화 등 군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줍니다. 다만 나쁜 점만으로요. 저 또한 차등이 있을 뿐 이 만화에 나오는 모든 일들을 해보고 당해봤네요. 폭력만 제외하고요. 제가 평소 군대 문화에 대해서 생각할 때, 정말 중요하면서도 무서운 건 따로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요. 이 만화가 그걸 보여줘서 놀랍고 또 한편으론 기뻤습니다. 한계가 분명하지만, 군대는 내부에서부터 바꿔야 한다는 거예요. 


아무리 나라가 나서서 군대를 바꿔보려 해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잖아요. 하지만 군 내부에서 바꾸려고 노력해서 바뀌면 훨씬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거예요. 선임병들이 후임병들을 괴롭히는 가장 큰 이유가 뭘까요? 일종의 보복 차원이 제일 커요. 자신이 그동안 당했던 게 억울해서죠. 그걸 누구한테라도 풀어야 하는데, 그 대상이 후임병이 아니고 누구겠어요? 선임-후임, 선임-후임... 이 되물림은 끝이 없어요. 


누군가는 이 사슬을 끊어야겠지요.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내가. 그런데 그걸 실행한다고 해도 또 다른 문제가 들이닥칩니다. 군대 기강이 흩트러진다고 할까요? 하극상이 일어날 요지도 있고요. 그러면 군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이제 갓 들어온 신병이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는데, 시키는 걸 제대로 하지 않아요. 그러면서 자기가 무슨 병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지요. 하지만 아무도 그를 터치할 수 없어요. 혹여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전멸을 면치 못하겠죠. 


그렇지만 위와 같은 걱정은 단순한 수치로 덜어줄 수 있습니다. 다름 아닌 각종 사건사고에 의한 군 내 사망자 수인데요. 유신정권기에 1000명을 훌쩍 넘은 군 내 사망자 수는 이후 전두환 집권기, 민주화 이행기, 민주정권 시기로 넘어가면서 1/2씩 감소했습니다. 군대 기강이 헤이해질수록 군 내 사망자 수가 줄어들었죠.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군대 문화 역행 뿐입니다. 수십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군 내 악습과 폐습에 철퇴를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주인공이 제대하고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그는 군대 부적응자 동기 정병수 때문에 군생활을 나름대로 잘 했음에도 영창을 다녀온 경험이 있죠. 


"정병수 같은 애들을 뭐, 감싸주고 돌봐주고, 끝까지 좋게 좋게 말로만 하라고? 군대는 보육원이 아니야. 단체생활에서 남한테 피해만 주고 못 따라온 게 비정상이야!"


저 또한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나름 군생활을 '잘' 했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이 이런 생각을 하겠죠. 만화에 나오는 정병수를 보면 정말 열불이 솟구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동기와 같이 군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게 정말 고맙다고 느껴질 정도로요. 하지만 그게 폭력과 가혹행위, 왕따와 기수열외의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도대체 어느 곳에서 그런 이유 때문에 이런 행위를 합니까? 군대에서만 그런다고 보는 게 맞겠죠. 


윤종빈 감독, 하정우 주연의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보면 그야말로 내리 갈굼의 표본이 나옵니다. 정말 끝없이 이어지는 폭력과 가혹행위의 연속이죠.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용서받지 못한 자의 최상위에는 군대 그 자체가 있습니다. 물론 겉으로 보여지는 건 선임병들이죠.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이 영화의 메시지 또한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가 보여주는 게 더 와 닿아요. 군 당국의 필사적인 노력은 당연히 계속되어야 하고, 그와 동시에 군인들은 주인공에게 내재되어 있는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해요. 어느 한 쪽만의 노력으로는 바뀌기 요원합니다. 더 이상 젊은이들의 개죽음을 목도하기 싫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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