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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영웅도 모범인도 군신도 아닌 인간 이순신 <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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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 읽기] <난중일기>



이순신의 <난중일기> ⓒ서해문집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우리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존재입니다. 한국의 반 만년 역사에서 이만큼 유명한 위인이 없죠. 그는 한국 역사에서 제일의 위기이자 치욕인 임진왜란’(1592~1597)이라는 국란(國亂)을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구국(救國)의 영웅이죠. 더불어 그는 나라에 대한 충성과 부모님에 대한 지극한 효성에 지극하였고, 지아비로서의 의미를 다하며 유교 사상의 기본 강령을 완벽히 수행한 시대의 모범인(模範人)이었습니다. 또한 완벽에 가까운 전략·전술로 2323승 무패의 승리 신화를 이룩한 군신(軍神)의 칭호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이순신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인간을 초월한 신의 위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우리는 이순신을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가 지은 귀중한 책,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전쟁일기와 전쟁보고서인 <난중일기>를 들여다보면 그런 이순신의 모습을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전쟁 중의 일기인 만큼 전투에 관한 자세한 기록을 엿볼 수 있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난중일기>에는 구국(救國)의 영웅도, 시대의 모범인(模範人), 군신(軍神)도 그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평범하다 못해 나약한 인간(人間) 이순신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충격이라면 충격일 수 있겠는데, 엄연한 사실이거니와 진짜 이순신을 만난 것 같아 기쁘기까지 했습니다. 하등 나랑 다를 바 없는 사람이, 그 압박감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갖가지 어려움을 넘어 오직 나라를 구할 일념 하나로 나아가는 모습은 눈물 짓게 했습니다.

 

인간 이순신을 만나다


<난중일기>에서 인간 이순신을 만나는 건 참으로 쉬운 일입니다. 그는 어떤 일에라도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일 것 같지만, ‘어이가 없고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어했습니다. ‘분하고 분한마음을 여지없이 표현하기도 했고, 심지어 남의 흉을 보기도 했습니다. 특히 원균에 대한 이순신의 감정은 특별했는데, 시종일관 그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너무도 음흉하여 말로 무어라 표현할 수가 없다고 하고, ‘그 흉악스러움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도 합니다. ‘원균이 망발을 부려수군 여러 장수와 경상도의 장수가 서로 화목하지 못하다고도 했죠. 이 밖에도 유독 자주 원균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 이순신, 원균이 수많은 수군과 함께 죽임을 당했을 때도 그에 대한 애도의 말 한마디 없었습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죠.

 

취하도록 술을 마신적은 셀 수 없이 많고, 온갖 걱정에 날을 새우기가 일쑤였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주 아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열하고 점검하고 훈련하고 처벌하고 보고하는 데에 철저했습니다. 이런 철저한 면에서 이순신을 완벽한 인간형의 대표적 인물로 보는 데 주저함이 없을 줄 압니다.

 

한편 이순신은 나라의 명운(命運)이 걸린 전쟁 기간 중에도 어머니와 아들을 비롯한 가족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습니다. 어머니가 불편하시다는 걸 알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어머니의 상태를 보고 받고는 평안하시다고 하면 다행스럽다는 말을, 불편하시다고 하면 걱정으로 밤을 지새웠죠. 결국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마는데, 밤새워 울지 않는 날을 손에 꼽아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건 아들 면이 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나라에 매인 몸으로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나라를 구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터인데, 그렇게도 사사(私事)로운 일로 몸과 마음을 망치다시피 하다니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모습이야말로 인간 이순신의 본 모습이 아닐까요.

 

만약 사사로운 일로 몸과 마음을 망쳐 나라의 일을 소홀히 했다면 이순신은 추앙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오로지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이었죠. 아쉽게도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난중일기>에는 전투에 관한 장면이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당연히 찾아보기 힘들죠. 급박했을지는 몰라도 한 번도 패퇴한 적이 없으니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을지도 모르고, 목숨이 오가는 긴박한 순간을 제대로 표현할 길이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이 일기는 단순한 기록일 뿐 자랑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순신의 삶과 성격

 

<난중일기>에는 이순신의 삶과 성격을 보여주는 단초들이 보입니다. 이순신은 31세에 무과에 합격했는데요. 22세 때부터 무인이 될 것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전까지는 10여 년 동안 문인으로서의 꿈을 키웠다죠. 그래서인지 <난중일기> 곳곳에서 그의 문인다운 기질을 엿볼 수 있습니다. 15937월 초9일의 마지막 구절을 그런 기질을 엿볼 수 있기에 충분합니다.

 

오늘 밤 달빛이 맑고 밝아서 티끌 하나 일지 않네. 물과 하늘이 한 빛이 되어 서늘한 바람이 선 듯 불어 온다. 뱃머리에 홀로 앉아 있으니 온갖 근심이 가슴을 치는구나.”

 

1595914일 선 수사와 작별하며 짧은 시 한 수를 써 주기도 했습니다.

 

북쪽에 갔을 때도 고락을 같이 하고 [北去同動苦]

남쪽에 와서도 생사를 함께하는구나 [南來共死生]

오늘 밤 달빛 아래 한 잔 술을 나누고 나면 [一杯今夜月]

내일은 이별을 아쉬워하겠구나 [明日別離情]

 

<난중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이순신의 성격은 고지식입니다. 외곬으로 곧고 융통성이 없다는 건데, 그는 일기를 통해 입 바른 소리를 여과 없이 내지르곤 합니다. ‘안으로는 정책을 결정할 만한 재목이 없고, 밖으로 나라를 바로잡을 기둥이 없다는 쓰디쓴 비판을 서슴없이 하고, ‘나랏일이 이 모양이니 나라가 평정될 리가 없다며 직격탄을 날리기도 합니다. ‘조정의 계책이 어찌 이럴 수 있는가. 체찰사로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이렇게 무작정 할 수 있는가. 나라의 일이 이렇고 보니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울부짖기도 합니다. 그의 이런 올곧은 성격은 사내정치에서는 독으로 돌아와 2번의 백의종군을 하게 되는 피해를 입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실력은 독보적이었기에 전쟁이 계속되는 한 복직 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난중일기> 하나로 이순신의 모든 걸 알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일 것입니다. 그와 관련된, 그리고 임진왜란에 관련된 수많은 저작물들이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난중일기>가 이순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저작물인 건 사실입니다. 개인의 기록이기에 주관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만인이 아는 공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외부의 시선보다 내부의 시선이 객관적일 수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께서도 영웅이니, 모범인이니, 군신이니 하는 것보다 평범한 인간이고 싶었을 거라고 생각해봅니다. 그를 떠받드는 건 좋지만 그의 삶과 생각과 성격을 제대로 알고 나서라면 더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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