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책 다시 읽기] <왓치맨>
<왓치맨> 표지 ⓒ시공사
때는 냉전 시대. 장소는 미국. 세계를 소련과 양분하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던 시절입니다. 과거 나치 그리고 공산주의와 싸우며 나라를 지켜내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던 히어로 중 한 명인 '코미디언'이 죽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살해를 당했죠. 한때 히어로였던 그를 죽일 만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심히 의문입니다. 또 다른 히어로 '로어셰크'는 그의 죽음 뒤에 분명히 더 큰 무엇이 있다고 의심하고 여기저기 캐고 다닙니다. 동시에 다른 히어로들을 찾아가 위험신호를 보내요. 하지만 그들은 별다른 반응이 없죠.
<왓치맨>은 로어셰크의 추리와 활동이 한 방면을 차지합니다. 히어로의 추락, 그 상징과도 같은 인물인 로어셰크는 국가(경찰)의 추격을 받으며 숨어서 생활하고 있는데요. 그들이 아닌, 완전히 다른 위험 세력을 감지한 것 같습니다.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히어로들에게도 검은 손길이 뻗쳐 가고 있다는 것을요.
죽음을 당한 코미디언과 로어셰크를 비롯해 과거의 영광을 함께한 히어로들은 누가 있을까요? 로어셰크가 하나하나 찾아가는 길을 따라가 봅니다. 4명인데요. 초월적 존재인 '닥터 맨해튼', 닥터 맨해튼의 애인 '2대 실크 스펙터', 발명가이자 재력가 출신의 '2대 나이트 아울', 가장 현명한 천재 '오지맨디아스'까지. 이들 중 코미디언만이 유일하게 국가의 하수인 히어로 역할을 계속 해왔고, 로어셰크는 비공식적으로 히어로 역할을 해왔습니다.
다른 4명은 코스튬 히어로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킨 법령'이 시행되자마자 은퇴하였죠. 그후 닥터 맨해튼과 실크 스펙터는 함께 국가의 비밀 기관에서 지내게 되었고, 나이트 아울은 평범한 재력가로서의 삶으로 돌아왔으며, 오지맨디아스는 정체를 밝히고는 글로벌 기업의 수장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평화 시대에 너희들 같은 살인자(히어로)는 필요 없다
히어로가 은퇴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니 뭔가 이상하지요? 다른 히어로물과는 전혀 다른 <왓치맨>만이 가지는 설정인데요. 다른 히어로들이 언제까지고 계속 히어로를 한다거나, 아예 사라진다거나, 죽는다거나 하는 설정임에 반해 <왓치맨>의 히어로들은 대를 이어 히어로를 하거나 히어로를 동경해서 히어로를 하거나 해서 국가에 의해 쫓겨 나죠. 토사구팽 당했다고 할까요. 그 중심엔 평화 시대에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이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건 이런 겁니다. '평화 시대에 너희들 같은 살인자는 필요 없다.' 그럼 생각해 봅시다. 전쟁이 일어나면 살인자들이 필요하다는 것일 텐데, 이거야 말로 지독히 모순적인 반인주의 아닌지요? 평화 시대에도 살인자가 필요 없다면, 전쟁이 일어나도 필요 없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든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나가도록 해야겠지요.
하지만 폭력이 대화와 타협보다 앞선다는 것 쯤은 쉽게 알 수 있죠. 묻지마 살인 앞에서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선의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계속해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날 기미가 보이고, 결국 제3차 대전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가장 현명한 천재 오지맨디아스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에 이르죠. 전 인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그것입니다. 이건 전쟁에서 대화와 타협이냐 폭력이냐 하는 문제를 초월하는 철학적인 문제를 야기시킴과 동시에, 전자의 문제를 완전히 무력화시키죠.
오지맨디아스는 뉴욕 절반을 날려버리며 3백만 명의 목숨을 한 방에 앗아가는 조치를 취해요. 그로 인해 전쟁을 멈추고 전 인류가 알 수 없는 새로운 적에 맞서려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 예측한 것이죠. 과연 가장 현명한 천재의 예측에 따라 전 인류는 그런 움직임을 보입니다. 전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었을 전쟁은 한순간에 멈추죠. 3백만 명의 희생 덕분에.
3백만 명의 희생이냐, 예측 가능한 전 인류의 죽음이냐
자, 여기서 엄청난 딜레마가 등장합니다. 3백만 명의 희생이냐, 충분히 예측 가능한 전 인류의 죽음이냐. 분명한 건 어느 누구도 이 딜레마에 동참하기 싫다는 점입니다. 또 만약 이 딜레마에 동참하게 되면 대부분은 3백만 명의 희생에 손을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 점입니다. 저 같아도 그랬을 것 같아요. 저는 그리 현명하지 못하거든요. 눈에 보이는 3백만 명의 희생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차라리 충분히 예측 가능하지만 적어도 제 손으로 하지도 않을뿐더러 나 때문도 아닌 전 인류의 죽음이 나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오지맨디아스는 진정한 영웅이라고 해야 할까요, 역사상 최악의 살인마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오지맨디아스를 누가 지켜볼 수 있을까요? 누구보다 막강한 힘을 가졌기에 일반 사람들을 지켜줄 수 있는 히어로인데요. 그런 히어로들이 오지맨디아스처럼 폭주할 지 어떻게 압니까. 그럴 때는 그들을 누가 통제할 수 있나요. 더 막강한 누군가가 나타나서? 그러면 그 더 막강한 누군가는 누가 책임지죠? 위의 엄청난 딜레마를 능가한다고도 할 수 있는 딜레마가 여기에 있네요.
히어로들의 소시민적 모습
위와 같은 철학적이리만치 생각할 거리와 함께 <왓치맨>의 재미는 히어로들의 모습입니다. 히어로들의 소시민적인 모습 말이에요. 그들의 현실적인 고민과 함께. 명실공히 히어로지만 코스튬만 벗어면 평범한 이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요. 국가에서 봐준다고 하지만 먹고살아야 하고 또 미래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일을 할 테고,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일반적인 사랑도 할 거예요.
기뻐서 웃고 슬퍼서 울기도 해요. 정말에 빠지기도 하고 희망에 차기도 하죠. 우리네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과 시시각각 바뀌는 삶의 굴곡을 그들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작가는 그런 모습을 신랄하게 잘 표현해 냅니다. 진짜 히어로가 이 작품을 봤으면 굉장히 뜨끔했을 거예요.
일반적인 히어로물을 생각하고 본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습니다. 지구를 침공하는 외계인과 일대 결전을 벌이는 것도 아니고, 지구를 지배하려는 욕망에 가득 찬 이와 계속되는 설전을 벌이지도 않아요. 히어로물다운 엄청난 액션이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반면 계속되는 식상한 히어로물에 슬슬 질려가고 있는 분들께는 환영할 만한 콘텐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일단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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