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책 다시읽기]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20세기 최고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했다고 해서 외려 노벨문학상의 가치를 의심한다는 후문이 전해지는 바, 더 이상의 수식어는 필요 없어 보인다. 그의 작품은 100년이 지난 지금, 활짝 핀 봄꽃처럼 절정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의 삶이 최고였다고 말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물론 최고의 기준은 시대마다 사람마다 장소마다 다르겠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며 최소한 절망적이지 않다는 기준을 세워본다면 말이다. 즉, 남들의 시선이나 생각이 아닌 스스로의 생각을 기준으로 세웠을 때 프란츠 카프카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절망의 한 가운데
<변신> 표지 ⓒ 열린책들
그는 생전 50편의 작품을 썼고, 그 보다 훨씬 많은 일기와 편지 등을 남겼다. 일기와 편지에는 그의 부정적이다 못해 절망적인 생각들이 담겨있다. 그는 왜소했고 약했고 예민했고 고독했다고 한다. 그와는 정반대되는 성격의 아버지 때문에 절망했고, 팔리지 않아 돈이 되지 않는 전업 작가의 길을 가지 못해 절망했다. 결혼을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해 절망했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인간관계 때문에 절망했다. 그의 삶 자체가 절망이었다.
단편 소설 <변신>은 절망의 한 가운데에서 쓰인 작품이다. 그의 나이 33살 때인 1915년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시종일관 어둡고 기괴하고 우울하기 짝이 없다. 이는 당시 그의 삶이 반영된 것이리라. 카프카는 1883년에 태어나 1924년, 42세의 젊은 나이로 죽게 되는데, 그 직접적 이유는 결핵이었다. 그는 법학박사를 취득하고 1907년부터 보험회사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먹고 살기 위한 직업과 하고 싶은 일로서의 작가 사이에서 고민했다. 매일 밤늦게까지 글을 썼지만 생전 거의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사망하기 7년 전인 1917년에 결핵을 진단받고, 퇴직을 하여 글쓰기에 전념했다. 이처럼 <변신>은 그의 삶에 있어서, 온갖 고민을 대변하고 있다.
'벌레'란?
소설은 섬뜩한 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침대에서 흉측한 모습의 한 마리 갑충으로 변한 것을 알아차렸다.(본문 속에서)
영업사원이자 기울어진 집안의 기둥과도 같은 큰 아들 그레고르 잠자는 그렇게 한 순간에 '벌레'가 되어 실업자이자 낙오자, 집안의 우환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생각해보라. 늙어 은퇴한 부모님을 모시고, 어린 여동생을 뒷바라지해야 하는 집안의 유일한 희망이자 일터에서는 충실하고 성실하고 능력 있는 일꾼인 내가, 어느 날 지독히도 끔찍한 '벌레'가 되어 있다니! 끔찍하다 못해 자살하지 않고 살아 있는 것만도 용할 것이다. 이 소설을 집필할 당시 카프카의 심리 상태가 훤히 보이는 듯하다.
누구나 살면서 절망이 휘감겨오는 듯한 기분을 맛볼 때가 있다. 얻고자 했던 것을 얻지 못했을 때, 하고자 했던 것을 하지 못했을 때, 지독한 실패를 맛보았을 때 등. 이럴 때 제일 원망하게 되는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 아닐까. 카프카도 절망의 한 가운데에서 그 모든 암(暗)을 자신에게 돌렸고, 자신을 '벌레'로 빗대어 표현하고 있는 것일 테다.
쫓기듯 들어온 나만의 공간은?
그레고르 잠자는 당황하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언제나처럼 출근 준비를 서두른다. 그렇지만 벌레의 몸으로 어찌 출근을 하랴. 출근을 해야 하지만 벌레의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줄 수도 없는 상황.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회사 지배인이 찾아오기에 이른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가족들과 지배인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끔찍한 모습을 보고 격하게 반응하는 가족들과 지배인... 결국 그는 몸과 마음에 상처만 입은 채 쫓기듯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아버지는 사정없이 그레고르를 몰아대면서 미친 사람처럼 '쉿쉿'하는 소리를 질러 댔다. (중략) 그리고 손에 쥔 지팡이로 아버지가 당장이라도 등이나 머리통을 박살 낼 것 같아 등골이 오싹했다.(본문 속에서)
나만의 공간인 내 방은 참으로 소중하다. 이럴 땐 단절이나 소외가 아닌 아늑함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 공간이 누군가에 의해서 쫓겨 들어오게 된 공간이라면? 그 어느 곳보다 고독하고 절망적인 공간이 될 것이다. 평소 출장이 잦은 관계상,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습관 때문에 자신의 방을 철저히 막아놨던 그레고르 잠자. 그 아늑하고 안전한 공간이 독방같이 느껴진다. 나'만'의 공간이 아닌 나'밖'에 없는 공간. 끔찍한 공간이 된 것이다.
이 세상엔 말 그대로 수많은 사람이 존재한다. 그런데 가끔은 이 세상에 나 혼자 밖에 없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이걸 '공황장애'라고 한다던가? 여하튼 그럴 때는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어진다. 자괴감에 열등감에 우울함에 지쳐 나만의 공간을 찾는다. 쫓기듯 들어와 느끼는 잠깐의 안도감, 그리고 찾아오는 고독감. 현대 사회에 만연한 병폐 중 하나이다. 100년 전에도 이미 시작되고 있었나 보다.
이 시대의 돈 벌어오는 벌레
어느 날, 그레고르 잠자는 여동생의 바이올린 켜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방문을 나선다. 평소에 다른 누구보다 잘 보살핀 여동생이었고, 마찬가지로 벌레가 된 자신을 잘 챙겨주던 여동생이었다. 하지만 한계에 직면했던 것인가. 여동생은 그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멀찍이 도망쳐 버린다. 어머니는 실신을 하고, 아버지는 그를 방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사명감에 불탄다. 급기야 총을 쏘듯이 사과를 던져댔고, 그 중 한 알이 그의 등에 박힌다. 결국 또 다시 가족에게 거부당하고 마는 그레고르 잠자. 방으로 돌아온 그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그가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은 여동생보다 아마 자신이 더욱 단호할 것이다. (중략)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그의 고개가 아래로 푹 고꾸라졌고, 그의 콧구멍에서는 마지막 숨이 힘없이 새어 나왔다.(본문 속에서)
그가 집안의 유일한 희망이던 시절이 있었다. 가족들은 그의 돈 벌어오는 능력이 아닌 그 자체를 언제나 떠받드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벌레'로 변한 순간부터 즉, 돈을 벌어오지 못하고 난 후부터 가족들에게 그는 아무런 존재가치가 없었다. 아들이자 오빠라는 타이틀은 돈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레고르 잠자 대신 열심히 돈을 벌었고, 그는 점점 잊혀졌다.
이 시대의 가장을 흔히들 '돈 벌어오는 기계'라 칭한다. 그렇다. 사람이 아니고 기계이다. 카프카는 돈 벌어오지 못하는 가장을 사람에서 벌레로 격하시켰지만, 지금은 이미 사람이 아닌 벌레가 되어 버린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되어 버린 그레고르 잠자는 100년이 지난 현재에 와서 화려하게 부활한 셈이다. 카프카에겐 서글프게도 암울한 미래에 대한 예언가적인 기질이 있었나 보다.
'샤방'해서 더욱 끔찍한 마무리
그레고르 잠자는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벌레를 감쪽같이 처리했다는 하녀의 말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이사를 간다. 그동안 창백했던 여동생은 싱그럽게 그 나이에 맞는 모습을 갖춘다. 부모님은 그녀의 모습을 보며 시집보낼 생각을 한다. 시종일관 우울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동시에, 오히려 더욱더 끔찍하다는 생각이 든다.
잠자 씨 부부는 딸의 얼굴이 점점 생기가 도는 것을 거의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중략) 소풍의 목적지에 이르러 딸이 맨 먼저 일어나 젊은 몸을 쭉 펴며 기지개를 켜자 그들에게는 그 모습이 그들의 새로운 꿈들과 멋진 계획들을 확인해 주는 것처럼 생각되었다.(본문 속에서)
이 짧지만 강렬한 소설을 역시나 짧은 서평으로 소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읽은 적이 없이 풍문으로나 들었던 분은 직접 읽으시고, 옛날에 읽어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으신 분은 다시 읽으시고, 방금 읽으셨던 분은 이 서평을 보시고 다시 한 번 읽으시라는 말이다. 프란츠 카프카에 대한, 절망과 고독과 우울에 대한, 벌레에 대한, 상처받은 영혼에 대한, 가족에 대한, 세상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해보는 시간이 되시길. 끔찍한 절망 앞에서 외려 힐링이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오마이뉴스" 2013.4.12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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