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나간 책 다시읽기

일본과의 전쟁은 현재진행형. 2045년에 재침?

반응형


[지나간 책 다시읽기] <남왜공정>... 일본 신 왜구의 한반도 재침 음모한반도가 속한 동아시아의 지형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공존만큼이나 대립이 상존하였고, 한국·중국·일본·미국까지 물리적·경제적·문화적 모순의 실타래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중 일본과는 특히 기나긴 악연의 끈이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남왜공정> 표지 ⓒ 다빈치북스

사실 한국과 중국 못지 않게 한국과 일본의 관계 또한 오래되었다. 160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일본에 의한 한반도의 침략으로 점철되었다고 한다. 책 <남왜공정>(다빈치북스)은 그에 대한 역사적·현재적 사실과 의미들이 속속들이 파헤쳐져 있다. 각오가 되셨는가? 학습된 증오나 막연한 동경 내지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태도와 자세에서 탈피해 가감없이 현실을 직시할 각오가?

한국와 일본, 그리고 왜구

'왜구'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보셨을 것이다. 국사 책에서 주로 '려말선초' 부분에 등장한다. 한반도와 중국 연안에 자주 침몰해 약탈을 서슴지 않았던 '일본'의 해적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할 수 있다'라고 단서를 다는 것은, 한국과 일본 주요 학자 간의 왜구에 대한 해석이 다른 연유에서이다. 한국 및 중국에서는 왜구를 당연히 '일본'의 해적 집단이라 칭한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왜구가 '일본'이 아닌 '동아시아'에서 파생된 해적 집단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저자의 말을 따르자면, 일본이 이와 같이 억지 주장을 하는 이유로 왜구라는 말이 본래 '일본인의 침략', '일본인 침략자'라는 의미로 쓰이는 인상을 없애기 위해서다(301쪽). 지금은 잘 나가고 있는 일본이지만 과거에 행했던 백번 양보해도 결코 좋지 못한 행위들을 감추고 미화시키기 위해 실로 오래된 악의 주체인 왜구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구는 무엇인가? 려말선초에 갑자기 출몰해 동아시아를 휩쓴 것인가? 저자는 아니라고 단호히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왜구'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뚜렷이 나타난 것은 414년에 건립된 만주 집안에 있는 <광개토태왕비문>이라고 한다. 

"(영락) 14년에 왜가 법을 어기고 대방지역으로 침입하여··· 왕이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토벌하였는데··· 왜구가 궤패하여 참살된 자가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94쪽)

여기서 말하는 왜구의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1600년 전부터 왜구는 존재했고, 이미 한반도 침략이 시작했던 것을 알 수 있는 자료다. 이를 시작으로 자그만치 900여 회나 침략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한반도 주기 침략... 2045년에 재침한다?

주지했듯이 일본의 왜구가 한반도를 1600년 동안 900여 회가 넘게 침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에 한발 더 나아가 '한반도 주기 침략'을 주장한다. 나름 치밀한 계산 하에 나온 저자의 주기율표(?)를 간단히 감상해 본다. 

일본은 1867년 메이지유신에 의해 절대주의 왕정을 수립되고 '징병령'이 발동된다. 이로인해 본격적으로 제국주의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 것이다. 이어 9년 뒤 1876년에 한일간 강화도조약이 체결된다. 그리고 불과 34년 후 1910년, 일본의 침공으로 조선은 붕괴해 버리고 만 것이다. 이것이 약 100~150년 전의 한일간 역사적 사실이다. 

비교적 현대로 와 한일간 역사적 사실을 파헤쳐 본다. 2002년 일본은 '유사법제'를 제정한다. 유사법제로 인해 일본은 해외로 군대를 파병할 수가 있게 되었다. 일본 군대가 다른 나라를 침략할 권한이 법적으로 타결되었다는 의미인 것이다. 1867년 메이지유신 선포 이후 발동된 '징병령'이 생각나지 않는가?

유사법제 제정 9년 후 2011년 8월,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세 명의 왜구'가 한반도에 출현한다. '독도영유권 강화조치 견제 차 위해 울릉도에 가겠다'고 나선 일본 자민당 의원 세 명이 이들이다. 이들은 각각 2차대전 당시 구리바야시 다다미치 육군 대장의 외손자이자 '한국에 있는 일본 문화재도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있는 신도 요시타카, 일본 자위대 학교주임 교관 출신으로 '만주와 한반도는 일본의 통치로 풍족해졌다'는 내용의 논문을 지지한 바 있는 사토 마사히사,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지지하고 '남경대학살은 허구'라는 극우적인 발언을 일삼은 이나다 도모미이다.

저자는 이 사건(2011년)을 1876년의 강화도조약에 대칭시키고 있다. 독도를 당시 강화도에 빗댄 것이다. 

강화도조약(1876년) - (34년의 시차) - 한일강제병합(1910년)
세 명의 왜구 출현(2011년) - (34년의 시차) - 한반도 침공?(2045년)

저자는 여기에 결정적 증거를 제시한다. 1945년 패망 후 조선부의 수장이었던 아베 노부유키가 한반도를 떠나며 남긴 말을 보자.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정신을 차려 찬란하고 위대했던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 정도의 세월이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조선민은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여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조선은 실로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69쪽)

섬뜩하게 다가온다. 공교롭게도 해방 후 100년 되는 해가 '2045년'인 것이다. 아베 노부유키는 100년 정도 세월 후에 다시 돌아온다고 말하고 있다. 

친일파 그리고 현대의 신왜구들

이 책에서 저자는 '왜구 = 일본 군국주의 세력'이라는 주장을 기본으로 전제하고 말을 풀어가고 있다. 그리하여 성립되는 것들이 많이 있다. 일제시대의 친일파처럼 왜구의 침략에 의해 '부왜, 가왜'가 생겨 반국가적인 행동들을 서슴치 않았다고 한다. 또한 일본의 극우 역사학자들의 '왜구는 일본의 전유물이 아니고, 왜구는 결코 나쁜 짓만 일삼은 해적 집단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반박하며, '일본은 왜구를 마치 현대판 '캐리비안의 해적'이나 '대항해 시대'에 활동했던 국제적 해양 활동 세력으로 미화해 문화 콘텐츠화 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들이 이른바 현대의 신왜구라는 것이다. 여기에 현대판 '부왜, 가왜'도 소개(?)하고 있다. 

1962년 9월 3일 일본 외무성에서 열린 한·일 예비절충 4차 회의에서 독도문제로 대립하게 되었을 때, 김종필이 "독도를 폭파해 버리자"고 주장했다고 보도된 바 있다. 이는 회담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김종필이 했던 "독도에서 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갈매기똥도 없으니 폭파해버리자고 말한 일이 있다"는 말로 확인되는 듯했다. 후에 1987년 13대 대선 토론회에서 한일협정 시 독도문제에 대한 질문에 "젊은 혈기에 폭파하는 한이 있어도 독도를 지키려 했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최초 발설자임을 시사했다. 

2008년 7월 15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2008년 7월 9일 일본 홋카이도 고야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때 후쿠다 총리가 (일본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다케시마를 (일본땅이라고) 표기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통고하자, 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는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우리가 처한 역사적 숙제

책은 결론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남긴다. 극우주의는 일본 전체가 아닌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국가적으로 감정적 대응을 할 것이 아니라, 일본 내 및 동아시아 평화 세력과 연대를 하여 이들 극우세력을 제어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곧 잊어버리고 마는 한국의 대응 방식으로는 치밀하고 끈질긴 일본 극우주의의 '남왜공정' 에 대응하기 힘들다. 우리의 인식과 자세를 가다듬고 생존과 번영을 위한 각성이 요구된다. 

이밖에도 책에서는 일본 경성(서울) 천도 계획과 한반도민 800만 명 강제 이주 계획, 독도문제를 야기 시킨 샌프란시스코 조약, 2010년에 서울 한복판에서 열린 천황 폐하 탄신 축하 파티'까지 소개하며 방대한 자료(408건의 참고자료)로 압도하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어느 누가 지금 우리가 처한 이 역사적 숙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오마이뉴스" 2012.11.26일자 기사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