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버드맨>
영화 <버드맨> 포스터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
1980년대 가장 핫한 흥행 대작인 <배트맨>(1989년)으로 주가를 올린 배우 '마이클 키튼'. 그는 1992년 <배트맨 2>에도 출연해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에도 다방면에서 활약하며 배우 생활을 이어갔지만, 사람들 머리에 각인된 어마어마한 영화는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명배우라고 하기에는 뭔가 좀 모자라고 그렇다고 조연급 배우는 아닌, 어정쩡한 배우로 20년 세월을 살아왔다.
영화 <버드맨>은 그런 그의 영화배우 인생사를 거의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옮겨 놓은 것 같다. <배트맨> 하면 전 세계적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듯한데, 영화에서도 <버드맨>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엄청난 인기를 구사했던 영화이다. 그리고 그 <버드맨>은 1992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는데, 마이클 키튼이 실제로 1992년 <배트맨 2>로 하늘을 날 정도의 인기를 구사하고 그 인기로만 20년 넘게 버텨온 시간과 같다.
한물 간 슈퍼 히어로 전문 배우의 눈물겨운 재기
1992년을 마지막으로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 분)은 슈퍼 히어로물에 더 이상 출연하지 못했고, 그 이후 그는 곧 '버드맨'이었으며, 그는 혼란스러운 배우 생활을 이어 왔던 것이다. 그는 지금 영화판이 아닌 연극판으로 적을 옮겨 브로드웨이에서 다시 한 번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 최고의 단편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이다. 연극은 아내의 배신에 좌절한 남자의 자살을 다룬다. 주연 뿐만 아니라 연출도 겸하여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영화 <버드맨>의 한 장면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
그는 어떻게든 재기에 성공해야 한다. 하지만 연출을 하며 총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여기저기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무명 여배우 레슬리(나오미 왓츠 분)는 언제까지 무명 배우로 허우적거려야 하는지 항상 불안에 떤다. 톰슨은 그녀를 다독여야 한다. 리허설 도중 사고로 배우 하나가 하차하자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인기가 자자한 마이크(에드워드 노튼 분)를 영입하게 되는데, 그는 자신의 연기에 대한 강한 자존감을 지니고 있어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 연출자인 톰슨에게 연기 수업까지 시키곤 한다. 톰슨은 그를 통제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겐 딸 샘(엠마 스톤 분)이 있는데 그녀는 그의 재기 도전에 냉소적이다. 또 이혼한 전 부인이 괴롭히고, 제작자는 매일 찾아와서 딴지를 건다. 그 뿐이랴? 그녀의 한 문장에 연극의 성공과 실패가 갈리는 평론가가 대놓고 악평을 예고하기도 한다. 한물 간 슈퍼 히어로 전문 배우의 재기가 정말 쉽지 않다.
실제 모습과 거의 똑같은 배우들, 연기가 살아있는 이유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곳곳에서 눈에 띈다. 주인공인 리건 톰슨 역의 마이클 키튼이 실제와 영화에서 거의 똑같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했는데, 극 중에서 무명 여배우 레슬리 역의 나오미 왓츠와 마이크 역의 에드워드 노튼 또한 이와 비슷하다.
영화 <버드맨>의 한 장면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
실제로 나오미 왓츠는 30년 전인 1986년에 데뷔했지만 이후 15년 동안 무명 배우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 빛을 보기 시작해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사랑 받는 할리우드 대표 여배우가 되었다. <버드맨>에서 보여주는 그녀의 연기가 살아있는 이유다.
에드워드 노튼은 조금 다른 경우인데, 그는 실제로 할리우드 영화판에서 함께 일하기 굉장히 힘들다고 정평이 나 있다고 한다. 일명 '스타병'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로, 그의 연기에 대한 지나친 헌신과 열정 때문이라고 한다. 예일대 역사학과 출신의 이 범상치 않은 배우는 재능과 열정과 헌신과 준비에 한해서 동시대 최고라고 할 수 있다. <버드맨>에서의 마이크는 곧 에드워드 노튼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롱테이크의 맛을 알면 영화 보는 재미가 높아진다
영화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롱테이크'이다. 롱테이크 카메라 기법은 말 그대로 한 장면을 길게 촬영하는 기법으로, 명감독들이 사용하곤 한다. 그만큼 쉽지 않은 작업이다. 롱테이크 하면 생각나는 감독이 알폰소 쿠아론인데,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이나 <그래비티>의 롱테이크를 보면 그 진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버드맨>은 <그래비티>의 촬영 감독이었던 '엠마누엘 루베즈키'가 촬영을 맡아 전작을 능가하는 롱테이크를 선보였다. 그리하여 그는 2014년에 이어 2015년에도 아카데미에서 촬영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시공간이 바뀌는 기막힌 롱테이크를 감상하는 것으로도 <버드맨>은 그 가치가 충분할 정도이다. 롱테이크의 맛을 알면 영화 보는 재미가 한껏 높아질 것이다.
이렇듯 영화 <버드맨>은 연기와 촬영에서 100점 만점에 의의가 없을 줄 안다. 그렇다면 시나리오는 어떨까? 단순히 추락했던 한 남자의 비상을 다룬 것 같은데 말이다. 아니다. 이 영화는 그렇게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추락한 한 남자의 비상, 브로드웨이의 진짜 모습, 나아가 인간의 기이하고 진실된 모습까지.
영화 <버드맨>의 한 장면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
어느 것이 진짜 인간의 모습인지 중요하지 않다
최고와 최악, 비상과 추락, 사랑과 증오의 극과 극은 언제나 인간과 함께 한다. 영화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통해 이와 같은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 것이 진짜 인간의 모습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모든 걸 지니고 있어야 비로소 인간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방면에서 생각해볼 때 영화 안에서 리건 톰슨이 연극으로 옮긴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은 기가 막힌 선택이었다. 수많은 수식어가 붙어 있는 이 소설가는 미국인 나아가 현대인을 가장 예리하고 정확하고 깊숙이 들여다봤다. <버드맨> 안에서 레이먼드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이야기하는 것>을 연극으로 옮겼지만, 사실 감독은 영화 <버드맨> 자체를 통해 우회적으로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을 영화화 한 게 아닐까?
이 영화 또한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과 방식은 다르지만 현대인을 예리하고 정확하고 깊숙이 들여다본 느낌이 든다. 우리는 톰슨처럼 추락을 했다가 비상을 꿈꾸고, 레슬리처럼 불안에 떨며, 마이크처럼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는 자존감도 지니고 있다. 그런가 하면 샘처럼 냉소적이기도 하고, 제작자처럼 돈 문제에 천착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다. '설명할 수 없음'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이게 하는 그 무엇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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