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책 다시읽기] <고고학자 슐리만 150년 전 청일을 가다>다른 나라를 여행하며 다른 민족과 문화를 체험하고 싶은 건,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공통적인 느낌일 것이다. 그건 같은 나라 안에서도 각각의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다르지 않을 듯하다. '다름'에서 오는 호기심이 작동해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고 싶어하고 공통점을 찾으면 신기해하며 좋아하듯이 말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다른 나라, 다른 인종의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느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참 궁금하다. 지금은 인터넷의 발달로 직접 그곳에 가보지 않아도 그곳의 모습을 볼 수 있겠지만, 옛날에는 어디 그랬겠는가.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글로 남기고 그림을 그려야 하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옛날 작성된 기행문은 비록 저자의 피상적인 기록에 불과할지라도 그 자체로 사료적 가치가 엄청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하물며 그곳에 생태나 문화, 그곳에 사는 민족 역사나 당시 정세를 세심히 관찰했다면?
<150년 전 청일을 가다> 표지 ⓒ 갈라파고스
그런 책들을 나열한다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으니, 한 권의 책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본다. 트로이 유적을 발굴한 걸로 유명한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이 1865년에 청나라와 일본에 40여 일간 머물면서 기록한 기행문으로 우리나라에 번역된 제목은 <150년 전 청일을 가다>(갈라파고스)이다. 사족을 달자면, 이 책이 번역된 해가 2005년이니 정확히는 140년 전이다.
그런데 이 책의 원제목은 <현재의 중국과 일본>이란다. 만약 원제목 그대로 출간되었으면 제목과 내용이 맞지 않았을 것이지만, 150년 전이라고 못을 박아둔 제목이 조금 아쉽다. 제목이 나왔으니 더 말하자면, 슐리만이 출간했을 당시의 제목도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150년 전'도 그렇지만, '현재'라는 단어도 책 제목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시점이 들어간 책의 제목은 그 수명이 길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슐리만이 청일(청나라와 일본)을 여행하게 된 1865년은 세계적으로 요동치는 해였다. 미국은 링컨의 북부군이 승리함으로써 남북전쟁이 끝나면서 남부 지역의 노예가 해방되었고, 일본은 1858년 세계열강들과의 통상조약을 체결하면서 문호가 개방되고 1867년 메이지유신으로 막부체제가 막을 내리기 직전의 시기였다. 중국은 1842년 아편전쟁의 종결로 난징조약이 체결되면서 세계열강들에 의한 대대적인 침략의 물꼬가 트였고, 1856년 애로호사건 이후의 제2차 아편전쟁의 종결로 1860년 베이징 조약이 체결된 상태에 있었다.
슐리만에 의하면, 당시 중국은 지금과 같은 기회의 땅이었다.
"조국에서 행운을 잡을 수 있는 희박한 가능성을 좇기보다는 천제의 나라에서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 괜찮은 자리를 얻고 싶어 했고, 중국어를 배우면 능력이 특출나지 않은 사람이라도 괜찮은 수입이 보장되고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보장되었다"(21쪽)
2년 전, 중국에서 6개월 간 체류해본 경험이 있다. 길림성의 수도인 장춘시였는데, 중국의 10대 대학 안에 드는 길림대학교 근처였음에도 시설은 상당히 비루했었다. 150년 전에 슐리만이 느낀 것도 다를 바 없었나 보다. 어딜 가나 값싼 양식으로 불평한 이유가 없었지만, 그 밖에 일상은 누추하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특히 베이징은 그 정도가 심한데, 옛 영화로운 모습을 아직까지 지키고 있는 그 곳은 분명 어마어마하고 호화롭다. 하지만 역시나 일상은 초라하고 지저분하기까지 하다.
지금과 다른 점이 있다면, 150년 전에는 청나라 왕조가 그 힘을 다해가는 시기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 명성에 걸 맞는 수많은 건축물들이 쇠락하고 있어도 그대로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슐리만은 이를 두고 "지금은 몰락하고 타락한 인종이 거주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위대하고 창조적인 민족이 살았다"며 이런 말도 덧붙인다.
"신들의 성전과 찬란한 선조들의 수많은 건축물들이 쇠락하도록 그냥 방치하는 엄청난 태만함은, 중국 통치자와 그의 백성들의 정신적 몰락과 도덕의 타락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일 터다."(47쪽)
지금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일반 사람들이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까? 하물며 그들이 생활했던 터전들은? 그 모습을 보고 '정신적 몰락'과 '도덕의 타락'이라는 말하는 슐리만의 말이 150년은 관통에 가슴에 꽂히는 것만 같다.
상하이를 통해 일본에 간 슐리만. 왜 우리나라는 그냥 지나쳐 갔는지 살짝 궁금해지려는 찰나에 일본 기행이 시작된다. 지금과 같이 그때도 일본 전역은 지진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었나 보다. "지진이 일어나면 들보가 움직여서 늘어날 수 있도록 수평 들보와 버팀목 들보 사이에 일정한 폭의 이음새를 해놓았다"(93쪽)고 하니 말이다.
바뀌지 않는 건 지형뿐이 아니다. 사람들의 특성도 그대로인 듯하다. 간소하고 청결한 생활하며 성(性)에 대한 관대함, '국화와 칼'로 대변되는 평화와 폭력의 이중성까지. 슐리만은 이를 두고 "그들을 질책하거나 비난할 수 없다. 한 나라의 도덕관념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103쪽)라며 객관적인 시각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슐리만이 일본에 대해 명확히 하는 것이 있다. 문명은 최고 수준일지 몰라도, 도덕관념은 저급이라는 생각이다. 지금도 일본하면 고도의 문명을 가졌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관념체계가 그들이 문명을 따라가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슐리만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문명이라는) 단어가 물질적인 측면만을 의미한다면, 일본인들은 높은 문명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중략) 하지만 문명이라는 말을, 최상의 감정과 마음속의 갈망 그리고 이성의 가장 고귀한 자질을 고무하기 위하여, 또 미신을 타파하고 관용을 베풀기 위하여 종교의 정신을 나누고 간직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서양 국가들이 동양(일본)보다 훨씬 앞질러 있다."(176쪽)
책을 접해보면 알겠지만, 슐리만의 이 청일 기행문은 상당히 독특하다. 서양과 동양을 비교해보며 세계정세까지도 분석하고 있지만, 그보다 그곳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아주 생생하고 꼼꼼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인 기록으로, 당시의 청나라와 일본을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부담 없이 잘 읽히기도 했고 말이다.
슐리만의 청나라 기행보다 100여년 빠른 시기였지만, 조선 시대 박지원의 <열하일기>와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박지원의 기행이 소국이 대국을 보는 시각이 어느 정도 투영되어 있다면, 슐리만의 기행에는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150년 전임에도 보이는 여유로운 그 모습에서, 지금의 서양인이 갖고 있는 우월감이 보이는 듯하다.
40여일의 단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촌철살인의 날카로운 생각과 문장들, 세세하고 꼼꼼한 묘사로 즐거움을 선사한 슐리만에게 소소한 박수를 보낸다. 마지막으로 슐리만의 세세하고 꼼꼼한 만리장성 묘사를 소개한다.
"만리장성은 구운 게 아니고 가마에서 말린 벽돌로 축조되었다. 황토와 볏짚을 섞어서 만든 벽돌은 길이 67센티미터, 폭 25센티미터, 두께 17센티미터다. 성첩의 상판이 사라진 군데군데에 땜질을 하기 위하여 다량의 화강석을 사용한 흔적이 보였다. 2~2.5미터 높이의 성첩을 제외하고도, 성벽의 높이는 곳에 따라서 6.5~9.5미터까지 이른다. 따라서 성벽의 총 높이는 8.5~12미터 사이이며, 두께는 아랫부분이 6.5~8미터, 윗부분이 4.5~6.5미터에 이른다."(60쪽)
"오마이뉴스" 2013.1.24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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