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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재미있지만 한국인에겐 씁쓸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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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제국의 최전선>'팍스 아메리카나'라는 말이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를 일컫는다. 그런가 하면 '아메리카 제국'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이 세계적으로 강력한 정치·경제·군사·문화 등의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극과 극에 있는 이 두 용어 중, 어느 것이 정답인지 알 수 없다. 둘 다 일수도 있다. 모르긴 몰라도 둘 중에 하나는 맞을 것이다.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미국이기에,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물음이다. 필자는 '제국'에 중점을 둬본다.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은 전쟁이 하나 있다. 미국에 있어선 굉장히 중요한 전쟁일 것이다. 동시에 감추고 싶은 전쟁일지도. '아메리카 제국'의 탄생을 간단히 적어본다. 19세기 미국은 남북전쟁을 치르고 내부 정비와 대륙 개척에 열심이었다. 와중에 제임스 먼로에 주창된 먼로주의는 구대륙(유럽)의 신대륙(아메리카 대륙)에 간섭을 거부한다. 하지만 스페인이 여전히 쿠바, 필리핀 등지에서 철수하지 않았다. 쿠바에서는 반란이 일어났고, 스페인은 이를 막는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간섭하고, 1898년 전쟁이 일어난다. 이 전쟁에서 미국은 스페인을 격퇴하였고, 스페인은 울며 겨자 먹기로 헐값에 쿠바, 필리핀, 감 등을 미국에 할양한다. 이후 미국은 자신들이 세계 질서를 조정해야한다는 역할론을 들고 나와, 세계를 누빈다. 이에 반대하는 세력이나 나라, 특히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으로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미국은 21세기형 제국?

'낙인'에는 '의도치 않은'의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아마도 미국은 제국이라는 낙인을 덮기 위해 '팍스'라는 단어를 로마제국에서 공수해왔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랴 로마도 제국이었던 것을. 그런데 조국을 '제국'이라고 쿨하게 단정 지으면서, 외려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미국인이 지은 책이 있다.

<제국의 최전선> 표지 ⓒ 갈라파고스

제목 한 번 걸작이다. <제국의 최전선>(갈라파고스). 로버트 카플란이라고, 미국 '어틀랜틱 먼슬리'의 해외특파원이자 베스트셀러 저자이다. 주로 여행과 국제 문제에 관한 책을 써왔다고 한다. 이 책은 그의 주 종목 두 가지를 믹싱해서 나왔다. 무슨 말인고 하면, 제국의 최전선 즉, 미국이 전 세계에 걸쳐 만들어 놓은 다섯 개 지역사령부(북부사령부, 남부사령부, 유럽사령부, 중부사령부, 태평양사령부)의 최전선을 찾아다니며 그 실상을 돌아보았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미군)이 제국(미국)을 관리하는 방식을 알아보고 그 적용을 위한 일종의 관리 지침서 역할을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본격적인 여행에 앞서 제국주의에 대한 생각을 밝힌다. 그가 말하길, "제국은 영광보다는 필요에 의해, 다시 말해 외부의 압력에 의한 자극으로 계속 추진해 가는 일과 같다"고 하였다. 그러며 히틀러나 히데키가 없었다면, 미국은 제국주의의 길을 걷지 않았을 거라 항명한다. '어쩔 수 없이' 행했던, 그리고 하고 있는 일일 뿐이라는 것이다. 본문에 들어가기도 전에 책에 대한 정나미가 떨어짐은 어쩔 수가 없었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때 꽤나 흥미로운 시각이기에 나름 기대를 하고 읽게 되었다. 

읽는 재미와 거부감

책은 여행 에세이 형식을 띠고 있기에, 그 여정에 집중해서 따라가기만 한다면 무리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비록 군사·정치·외교에 관한 내용일지라도 말이다. 저자는 한 여름에 필리핀의 정글을 찾아간다든지, 봄에 그것도 황사의 근원지 몽골을 찾아간다든지, 한창 테러와의 전쟁이 펼쳐지고 있는 중동 지역(예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을 찾아간다든지, 마치 일부러 오지만 찾아가 여행기로서의 가치도 충분히 부여하려는 것 같다. 

오지 탐험이라는 것이 대부분 그렇듯이, 가는 길부터가 이미 흥미를 끈다. 도착해서의 생활도 가관이며, 그곳에서 근무하는 미군들의 솔직한 심정을 듣는 것도 흥미롭다. 또한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뉴욕과 워싱턴의 정치인들이 거창한 역사적 관점으로 제국주의를 논하고 있는 동안 수십 개 나라에 주둔 중인 해병대, 육군, 공군, 해군 병사들은 까마득히 먼 곳에서 벌어지는 그런 논의는 안중에도 없이 그들 나름으로 매 순간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는 관점도 특별히 다가온다. 우리나라에서도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 "최전방에 가면 윗분들 명령보다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이 중요해"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저자의 관점은 상당히 지엽적인 동시에 진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미국의 제국주의를 보는 저자의 시각이 너무 편협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미국인의 입장에서) 굉장히 우파적인 생각인 듯하다. 그 자체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 비난받을 이유도 없다. 각자 자기의 생각이 있는 것이니까. 그렇지만 적어도 필자에게 이 생각은 불편하게 다가온다. 또한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다가올 것이다. 

그건 단순히 미국을 싫어하거나 반대하는 반미(反美)의 감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실 미국을 이용해서 국가를 부강하게 한다는 용미(用美)나, 140여 년 전 필사된 <조선책략>에서 주장했던 미국과의 연합을 뜻하는 연미(聯美)가 우리나라가 취해야 할 현실적인 대안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현실적인' 대안을 우리나라는 '현실적으로' 취할 수 없어 보인다. 

수많은 학자들이 외쳐보지만, '현실적으로' 친미(親美)에 가까워 보인다. 바로 이런 복잡다단한 미국에 대한 감정이, 저자의 생각에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일 게다. 물론, 이런 생각들은 저자의 안중에도 없다. 재미있는 여행기에, 미군에 대한 방대한 자료, 그들의 솔직한 생각들로 버무려져 있는 이 흥미롭고 유용한 책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미국의 제국관리, 언제까지?

전 세계에 걸친 미군의 5개 사령부(북부사령부, 남부사령부, 유럽사령부, 중부사령부, 태평양사령부) ⓒ 갈라파고스


오늘(2013년 4월 4일),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이동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미국이 괌에 고고도요격체계를 투입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또한 일전에도 미국은 또 대북압박을 위해 한미연합훈련의 일환으로 전략폭격기 B-52, 스텔스 폭격기 B-2, 공군 최강 전투기 F-22 등을 한반도에 투입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1일에는 미국 해군이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해상 레이더기지인 'X밴더 레이더'와 첨단 구축함을 잇따라 한반도에 가까운 해역으로 이동시킨 것으로 알려졌다.(아시아경제 4월 4일자 기사 참조: [北은 무수단미사일..美는 고고도요격체계])

출간된 지 6년이 지난(미국에서는 8년이 지난) 이 책이 지금까지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위에 언급한 미국의 '제국관리'의 일면 때문일 것이다. 머리가 크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던 그들의 진짜 모습을 말이다. 이 책은 그 생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10년 전, 중국학부 교수님이 물으셨다. 

"자네는 왜 중국학부에 들어오게 되었나? 그래, 무얼 배우고 싶은 건가?"
"저는 중국의 '황제'가 좋습니다. 중국의 역사에 대해서 배우고 싶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중국의 역사와 '황제'를 연구해서 그 뿌리를 알고 차후 중국의 신제국주의에 짓밟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따위의 이유는 분명 아니었다. 단지 '황제'라는, 지상 최고의 존재 자체가 주는 대리만족이랄까? 마냥 저냥 좋았었다. 또, 전쟁이 좋았고 영토 확장이 좋았다. 시저, 나폴레옹, 칭기즈 칸, 중국 황제 등 제국주의의 선조를 좋아했던 것이다. 연장선상으로 물론 '미국'도 큰 거리낌 없이 좋아했다.

이 책을 보면서 든 생각 중 하나는, 바로 어린 나이에 위와 같은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것이 '제국관리'의 일면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그들의 '제국관리'가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계속되는 한 우리나라는 그들의 '제국의 최전선'에 불과한 나라로 남을 것이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게끔 하는 책이었다.


"오마이뉴스" 2013.4.4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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