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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30년전 전설의 베스트셀러...다시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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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은하영웅전설>① 여명편2011년에 <은하영웅전설 완전판>(디앤씨미디어)가 발간되어 골수팬의 향수를 자극했다. 평자는 비록 이 소설을 광적으로 접하기에는 나이가 그리 많지 않아 팬이라고 하기에는 어패가 있지만, 관심이 가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던 중 작년 말, 대선이 끝나고 새삼 이 소설이 생각났다. 이왕 읽을 거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판으로 보기를 원했고, 겨우겨우 2000년도 판 <은하영웅전설>(서울문화사)을 구하게 되었다. 

<은하영웅전설>① 여명편 표지 ⓒ 서울문화사

1편만 봐도 알 수 있는 이 책의 메시지. 누가 봐도 우주 공간 위에서 펼쳐지는 SF 공상 과학 소설에 불과하겠지만, 그 인기의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1991년에 우리나라에 처음 출간되어, 소설을 접한 대학생들 사이에서 '전제주의 대 민주주의'의 피 부르는 토론을 제공했더랬다. 우리나라가 민주화에 성공한 해가 1987년. 이 소설이 일본에서 출간된 해가 1982년. 10여년의 차이를 두고 출간된 건 아마 민주화의 시기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소설의 배경은 현재 우리나라, 나아가 세계 정세와도 꽤나 흡사하다. 인류 사회가 근본적인 치료를 필요로 하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인식 하에, 인류는 '독재'라는 이름의 극약처방으로 즉효가 나타나길 원했다. 그 결과 독재자가 출현해 거대한 제국, '은하제국'이 탄생한다. 열악한 유전자는 모조리 배제해 버리는 등의 아주 효율적인 정책으로 제국은 점점 더 발전하지만, 그로인해 배제된 사람들은 비참해진다. 결국 그들 중 참지못한 사람들이 탈출해 만든 것이 '자유행성동맹'이다. 

자유행성동맹은 은하제국의 전제주의 독재와 맞서, 민주주의를 택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오히려 스스로의 덫에 걸려 무능해지기에 이른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축 세력인 '페잔'의 입장에서 보면 "절대군주제의 은하제국이든 민주공화제의 자유행성동맹이든 결국에는 살육과 파괴의 수단 말고는 나라를 지킬 방법이 없는, 낡은 폐습에 사로잡힌 저능아들"에 불과한 것이다. 

페잔은 은하제국이나 자유행성동맹과는 달리, 무력이 아닌 경제력으로 이 둘 사이에서 미묘한 밸런스를 맞추고 있다. 그 경제력의 파워는 이 두 나라 안의 경제에 상당한 입김으로 작용하고 있다. 마치 지금 세계 경제력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사람들이 실질적으로는 '유대인'이듯이 말이다. (이 소설이 쓰여질 당시에는 세계 경제에서 '일본인'이 이와 같은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전제주의이지만 아주 효율적이라면? 민주주의이지만 아주 무능하다면? 이 주제를 다시 끄집어 낸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녀가 중요한 이유는 그녀의 아버지가 바로 '효율적'(이라고 주장하는) 전제주의 독재를 실현한 박정희이기 때문이고.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무능한' 민주주의가 있어야 하지 않은가. 저번 대선에서 48%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그들 민주주의 세력이 무능하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259쪽을 잠시 들여다본다. 은하제국의 어떤 영토를 자유행성동맹에서 빼앗고, 이에 동맹군의 선전 장교가 남아 있는 농민이나 광부들에게 말을 거는 장면이다. 

"우리는 그대들에게 자유와 평등을 약속한다. 이제 전제주의의 압제로 괴로워하는 일은 없다. 그대들에게는 모든 정치적 권리가 주어지고 자유로운 시민으로서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될 것이다."
(중략)농민 대표가 말했다. 
"정치적 권리인가 뭔가보다는 먼저 살 권리를 줬으면 좋겠구만. 식량이 없단 말야. 갓난아이를 먹일 우유도 없어. 군대가 모두 가져가 버렸다구. 자유나 평등은 나중에 주고 먼저 빵과 우유나 좀 주게."

'자유와 평등'보다 '빵'을 원하는 현재, 아니 전인류 전세대의 바람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전제주의하이든 민주주주의하이든 무엇이 문제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민주주의였으면, 무능하지 않은 민주주의였으면 하고 바라고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 유능하고 제국의 시민들에게까지 인기가 많은 은하제국의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이에 대항하는 자유행성동맹의 영웅 '양 웬리'. 여기서 말하는 게 무엇인가? 라인하르트의 능력과 인기는 곧 은하제국의 능력과 인기와 비례한다. 반면 양 웬리의 능력과 인기가 반드시 자유행성동맹의 능력과 인기를 대변해주지는 않는다. 무능한 자유행성동맹(민주주의)에서 유능한 영웅도 한낱 시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민중들은 이제 편안해지고 싶다. 그 바람을 누가 이뤄줄 수 있을까? 양 웬리의 아버지가 했던 말처럼 자신들의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어디선가 초인이나 성인이 나타나 자신들의 모든 고생을 혼자 떠맡아 주기를 바랄까? 이를 누군가가 이용해, 독재자가 출현할까? 아니면 민중들이 개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지켜가며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문제를 해결하길 바랄까? 

30년 전 전설의 베스트셀러를 다시 보기 시작하며, 1권에서 느끼게 된 모순의 전말이다. 그 모순의 파노라마는 어떻게 끝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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