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흑백 테레비를 추억하다>
<흑백 테레비를 추억하다> 표지 ⓒ알렙
초등학생 때(알고보니 1991년)였던 것 같다. 기존의 7(KBS2), 9(KBS1), 11(MBC)번 외에 새로운 방송 채널인 6번이 생겼다. 이름은 SBS라고 했다. 생기고 나서 꽤나 오랫동안 시골에 내려가서는 볼 수 없었던 채널이니, 서울권에서만 나오는 채널이거나 아직 전국적으로 보급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SBS에 대한 이미지는 20년이 넘게 흐른 지금까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른 채널의 고루함 대신 톡톡 튀는 맛이 있는 채널, 신생 채널인 만큼 미숙함이 묻어 나는 채널, 무엇이든 과도하게 보여주려는 그래서 열심히 하는 채널, 시청자들의 입맛에 맛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채널 등. 이런 여러 이미지들이 겹쳐져 필자는 SBS를 그다지 신뢰하지는 않는 입장이었다.
조사해보니, SBS는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묻을 닫은 TBC(동양방송), DBS(동아방송) 이후 11년 만에 부활한 민영방송이라고 한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는데, 국가가 방송까지 완벽히 장악하고 있었던 신군부 시대에서 사실상 빠져나왔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전의 박정희 시대 때는 어떻게 민영방송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인가? 필자는 본 적이 없지만 그 이름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1980년 이전 한국 방송계를 사실상 이끌다시피 했던
'TBC'라는 채널 말이다. <흑백 테레비를 추억하다>라는 책에 의하면, TBC의 사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힘이 작용했다고 한다.
누구를 위한 흑백 텔레비전의 추억인가?
저자는 TBC라는 채널에 초점을 맞춰 흑백 텔레비전을 추억하고 있다. 분명히 그러한데, 흑백 텔레비전을 말하기 위해서는 TBC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그전의 KORCAD와 DBC까지 서술하고 있다. 다 읽고 난 느낌은 TBC 부분(2부)을 완성하고 앞의 부분(1부)을 써서 얹은 것 같다. 저자도 주지했듯, 1부와 2부의 서술 방식과 분위기가 완연히 다르다.
여하튼 '흑백 텔레비전'이라는 큰 소재와 주제의 측면에서 본다면, 1부도 의미가 있겠지만 필자를 비롯한 거의 모든 젊은이들에게는 너무나 먼 얘기다. 사실 흑백 텔레비전 자체가 먼 얘기이고. 또한 아버지 어머니 세대에게도 먼 얘기일 수 있겠다.
당시 1960~70년 당시에는 텔레비전 자체가 동네에서 1대 정도 있었던 귀중한 물품이기 때문이다. 즉, 이 책의 소재와 주제는 요즘 사람 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람들에게도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않는다.
누구나 알만한 프로그램과 연기자들
그럼에도 이 책은 일단 읽어보면 상당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건 저자의 썰렁한 유머 때문도 아니고, 논픽션 작가 특유의 글솜씨 때문도 아니다. 수많은 프로그램과 연기자들의 이름 때문이다. 요즘 젊은이들도 한 번쯤 들어봤을, 그리고 컬러 텔레비전으로 접해 봤을 만한 프로그램들이 나온다.
워낙 유명해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기도 하고, 통폐합 이후에 1980년대 중반까지 계속 이어나간 프로그램들도 있거니와,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재방송을 해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알만한 프로그램으로 <600만불의 사나이>, <독수리 5형제>, <아씨> 등이 있다.
한편, 연기자들의 경우에는 훨씬 더 친숙하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름만 들어도 남녀노소 누구나 알만한 이순재, 한진희, 노주현, 조영남, 강부자, 장미희, 이미숙 등. 이들은 당시에도 지금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만한 연기자들이다.
'프로그램 나열'의 구성과 서술이라는 단점
주지했듯이 이 책의 단점은 확연히 드러난다. 제목이자 소재이자 주제인 '흑백 텔레비전' 자체에 아무도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그 이상의 재미를 주는 추억 팔이로 그 결함을 어느 정도 가릴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읽다보면 또 하나의 단점이 드러난다. 에필로그를 통해 저자도 말한 바 있는데, 프로그램 나열의 구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1956년에 시작되어 1980년대에 막을 한국의 흑백 텔레비전 시대.책을 읽기 전에는 텔레비전을 통해서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고 고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인줄 알았다. 물론 '추억'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붙은 이상, 그리고 프롤로그를 통해서 '추억 팔이'를 예고한 이상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1부를 제외한 2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프로그램 나열' 식의 구성과 서술은 상당한 실망을 불러 일으켰다. 차라리 저자가 상당 부분을 참고한 <한국방송사>니 <TBC(동양방송) 17년사>니 하는 책을 보면 될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 책을, 단순히 1980년 이전의 흑백 텔레비전을 추억하고 싶으신 분이나 지금의 나이 지긋한 연기자들의 과거 모습을 보고 싶으신 분들께 권해드린다. 어떤 방송이나 시대상에 대한 고찰을 기대하진 않으셨으면 한다. 단, 추억하는 그 재미 하나는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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