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팝, 경제를 노래하다>
<팝, 경제를 노래하다> 표지 ⓒ아트북스
예술은 가치는 무엇인가? 먼저 미적 가치가 있다. (위대한) 음악을 들으면, 그림을 보면, 건축물을 감상하면 거기서 느낄 수 있는 미(美)로 황홀함을 느낄 수 있다. 마냥 기분이 좋아지고, 차분해지고,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우리가 예술 작품을 보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다음으로 해석 가치가 있다. 예술 작품을 보고 시대적 배경과 맥락을 들여다보고 숨겨진 메시지를 푸는 것이다. 예술의 해석 가치를 더욱 높이 사는 사람들은 예술의 미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깎아내리곤 한다. 어찌 보면 미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도 해석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여기서 많이 쓰이는 해석은 시대적 배경과 맥락이다. 그 중에서도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느끼는 경제, 정치 등이 핵심이 아닐까 한다.
돈에 대한 찬가를 '비틀스'가 노래했다?
현존 최고의 대중음악 평론가라 할 수 있는 임진모 평론가의 신작 <팝, 경제를 노래하다>(아트북스)는 예술의 해석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적합한 책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팝(노래)로 경제(정치와 사회도 포함)를 해석하려는 시도이다. 또는 반대로 경제를 통해 노래를 해석하는 시각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책은 일단 팝이 주(主)가 되고 경제가 부(副)가 되는 양상이다. 겉으로 보나 안에서 보나 노래가 원문과 함께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노래의 가사만 읽어봐도 당시의 시대가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다. 그만큼 직설적인 노래 가사가 많다. 예를 하나 들어 본다.
사랑이 나를 설레게 하지만 / 그렇다고 내 청구서를 내주는 것은 아니야 / 내게 돈을 주라구 /
돈이 내가 원하는 거라구 / 돈이 내가 유일하게 원하는 거야 / 그게 내가 원하는 거야 /
물론 돈이 모든 걸 다 주지는 않아, 그건 사실이야 / 하지만 돈이 없으면 아예 쓸 수도 없어
'(내가 원하는 것은) 돈'이라는 제목의 이 직설적인 노래는 누구의 노래일까? 영국 리버풀 출신의 찢어지게 가난한 노동계급의 후손들이자, 역사상 최고의 슈퍼스타(모든 방면을 막론하고)인 '비틀스'의 노래이다. 그들은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 초반 전후 영국의 오랫동안 계속되는 차가운 경제 현실 속에서 오로지 성공을 위해 내달렸다. 당시 정반대로 호황의 절정에 있었던 미국의 슈퍼스타 '엘비스 프레슬리'를 동경하면서 말이다.
임진모 평론가의 대중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 특유의 과도함에서 한 발자국만 물러서 있는 화려한 수식어들, 그리고 손에 잡힐 듯 읽히는 경제까지. 특별하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구성이고 진행이다. 평소 그의 평론에서 보았던 남다른 시각과 지식이 빛을 발하고 있는 듯하다.
음악과 경제의 균형 잡힌 이야기
책은 그러나 읽다 보면 경제가 주(主)가 된다. '팝을'이 아니라 '팝으로'이기 때문이다. '팝으로' 또는 '팝을 통해서' 경제를 읽는 기획이기 때문에, 사실 경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온다. 또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더 감탄을 불러 일으키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식의 기획은 많은 단행본에서 접할 수 있다. 특히 철학을 주로 영화, 그림 등을 접목 시키는 시도가 많이 이루어진다. 그런 책들을 보면 단연 철학 이론들이 눈에 띈다. 즉, 영화나 그림 등은 어려운 철학 이론을 가리기 위한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얼마 전에도 그런 책을 읽다가 얼마 못 읽고 접고 말았다. 시작과 끝은 영화 얘기로 하면서 하고자 하는 얘기는 전부 철학으로 채워 놓지 뭔가.
반면 이 책 <팝, 경제를 노래하다>(아트북스)는 균형을 잘 잡고 있다는 느낌이다. 다행히(?) 저자가 경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경제 관련된 어려운 용어를 늘어놓지 않고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쉽게 풀어 쓰려는 듯한 뉘앙스가 풍긴다. 한편 음악 관련해서는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쉽게 전달하려는 의도가 있고 또 쉽게 풀어 쓸 능력도 있다.
오죽했으면 예술로 까지 경제를 말할까?
하지만 읽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아쉬움, 그리고 안타까움이 있다. 아쉬움은 반복되는 경제의 순환 때문이다. 1930년대 대공황부터 시작해 2008년 세계금융위기까지 17개의 파트로 나뉘는 이 책은, 거의 완벽한 순환을 보인다. 무슨 말인고 하면, 경제의 폭락과 폭등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것도 미국과 영국이 번갈아 가면서 말이다.
대공황의 폭락, 아메리칸 드림의 폭등, 같은 시기 영국의 폭락, 1970년대(베트남 전쟁, 오일 쇼크 등)의 폭락, 레이건과 대처 시대의 폭등,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의 폭락, 그리고 다시 클린턴과 토니 블레어 시대의 폭등, 이후도 계속되는 폭락과 폭등, 다시 폭락... 이 끝없이 이어지는 폭락과 폭등의 순환은 자연스레 시대를 해석하는 음악들의 지루함으로 이어진다. 즉, 음악은 다르지만 옛날에 했던 말을 다시금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안타까움은 예술로 까지 경제를 말해야 할까 하는 근본적인 물음에서 비롯된다. 현재 우리의 상황이 그야말로 '다시는 겪지 못할 것 같은 호황'을 뒤로 한 채 '다시는 겪기 싫은 불황'을 몸소 겪고 있지 않은가. 그 어느 때보다 '경제'에 목을 메고 '경제'가 중요해진 시기라는 것이다. 이런 시기에는 어떤 무엇을 가져다 놓든 전부 경제와 연관 시키게 되는 것일까. 책을 덮고 나면 뜻하지 않은 곳에서 진하게 묻어 나오는 안타까움이 있다. 저자의 마지막 말이 그래서 더욱 쓸쓸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다시 일어서기 위한 버팀목은 분명 희망과 꿈일 것이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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