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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족구왕> 유쾌한 분위기와 뻔한 스토리의 시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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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족구왕>



영화 <족구왕> 포스터 ⓒ 광화문시네마



중학교 2학년 때 족구라는 걸 처음 해봤다. 자발적으로 좋아해서 했던 축구를 제외하곤, 발야구와 피구에 이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축구를 테니스 코트로 옮겨 왔다고 할까? 의외로 재밌었고, 정말 의외로 잘했다. 대회 비슷한 경기였는데, 우승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봤자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었고, 이후 군대에서 하게 될 때까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다. 


군대에서 다시 접한 족구.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아니면 그냥 원래 못했던 건지, 소위 '개발'로 통하게 되었다. 내가 찬 공은 어디로 튈 지 나도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도 계급이 오르면서 점점 잘 하게 되었다. 그럼 뭐하나? 이제 슬슬 자신감이 붙고 재미있어 지려니 제대를 하게 되었다. 사회에 나오니 아무도 족구를 하지도 찾지도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족구하자고 하면, 백이면 백 비웃을 것이 뻔했다. 복학을 했으면 정신 차리고 열심히 공부해 취직할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왜 하필 족구지? 축구, 농구, 야구, 탁구, 당구 등 할 게 이리도 많고, 그나마 할 사람도 많은데? 족구는 찬밥 신세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누구나! 족구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족구라는 소재로 풀어낸 복잡다단한 청춘


영화 <족구왕>은 족구라는 소재로 이 복잡다단한 상황과 심리를 풀어냈다. 제대한 복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낭만을 청춘을 애써 외면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남들 이목이 두려워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지 못하는' 못난 이들을 유쾌하게 꼬집는다. 


갓 제대한 만섭은 족구장이 테니스장으로 탈바꿈한 것을 보고 아쉬워하며 친구 창호와 함께 '총장과의 대화'를 통해 총장에게 족구장 건립을 제의한다. 여기서 뜻하지 않게 미래라는 친구가 합류한다. 만섭은 수업 시간에 첫눈에 반한 안나에게 솔직한 감동을 선사해 족구 패밀리로 데려온다. 학교 체육대회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이들은 열심히 대회 준비를 하며 동시에 족구장 건립을 위한 서명 운동까지 벌인다. 



영화 <족구왕>의 한 장면 ⓒ 광화문시네마



한편, 전직 축구 국가대표 출신 강민은 부상으로 꿈을 잃고 방황 중이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여자친구 안나에게 보여줄 자신감도 없다. 그런 그의 앞에 만섭이 나타나 안나에게 작업을 거는 것이 아닌가? 강민은 안나에게 모질게 대하고, 이에 만섭은 강민에게 족구 한 판을 제의한다. 별 거 없을 거라고 생각한 강민. 하지만 그는 만섭에게 처참하게 깨진다. 이 영상이 학교 전체에 퍼지며, 학교에 족구 열풍이 분다. 남자들에게 진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던 걸까. 


직접적인 대사로 주제를 전하다


영화는 족구라는 알레고리를 제외한 어떤 어려운 알레고리 없이 쉽게 말을 전한다. 만섭이 복학 후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처음 만나게 된 선배는 "족구 같은 소리 하지 말고, 공부해서 공무원이나 돼."라고 말하고, 만섭과 창호가 족구 연습을 할라 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한 여학생도 "여기서 족구 같은 거 하지 마세요. 남에게 피해를 주잖아요."라고 말한다. 


또 학교 교직원 한 명은 "학교에 족구 열풍이 불면 안 됩니다.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를 헤치고, 결국엔 취업률이 떨어질 것입니다."라고 열을 낸다. 안나도 족구를 두고, "더러워요. 복학생들이 족구하고 나서 땀내 풀풀 풍기며 강의실에 들어 오잖아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족구는 그야말로 취업을 하기 위해서, 연애를 하기 위해서, 결혼을 하기 위해서, 인생에서 정답을 찾아가기 위해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영화 <족구왕>의 한 장면 ⓒ 광화문시네마



그렇다면 만섭에게는 이런 무시무시한 뜻이 감춰져 있는 족구를 굳이 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 선배의 물음 "너에게 족구는 뭐냐?"에, 만섭은 "그냥, 재밌잖아요."라고 대답할 뿐이다. 재미라. 주구장창 의미를 부여한 그 어떤 명언보다 명확하고 정답에 가까운 대답이다. 살인자에게 같은 물음을 던지고 이에 살인자가 재미를 운운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냐마는, 여기서 중요한 건 족구이다. 영화에서 족구는 많은 사람들 안에 공통적으로 살아 숨 쉬고 있는 꿈, 열정, 낭만이다. 


유쾌한 분위기와 뻔한 스토리의 시너지


이후의 영화 스토리는 뻔하게 흘러간다. 만섭은 대회 결승을 황홀하게 마무리하고, 만섭을 제외한 이들 모두가 사랑을 찾아간다. 반면 만섭은 바닷길 드라이브로 자신만의 낭만을 즐긴다. 그동안 보아왔던 독립영화, 즉 감독의 의중이 크게 영화를 좌지우지 했던 영화 중에서 가장 뻔한 스토리인 듯하다. 그런데 그 뻔한 스토리가 독이 된 것이 아니라, 득이 되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여타 (필자가 보아온 묵직하고 어둡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독립영화와 다른 유쾌상쾌통쾌함인데, 그 유쾌함이 뻔한 스토리와 만나 시너지를 일으켰다고 본다. 이 유쾌함에 얽히고 설킨 또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를 얹혔으면 굉장히 이상했을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영화 <족구왕>의 한 장면 ⓒ 광화문시네마



기분이 우울해 질 때면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싶다. 현재의 청춘을 다루면서 이리도 우울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우리 청춘의 일면 우울한 모습을 보여주는 연출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는 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것이지 않을까?


언제부터 청춘이 우울했는가? 청춘은 우울하지 않다. 

누가 청춘이 아프다고 했는가? 청춘은 아프지 않다. 

설령 우울하고 아픈 청춘이라 해도, 그조차 부럽기만 한 청춘이다. 

그 어떤 모습도 너무나 아름다운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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