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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정신병자들이 혁명을 꿈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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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켄 키지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케이블 방송 tvN의 군디컬드라마 <푸른거탑>을 보면 말년 병장 최종훈의 '대뇌 전두엽 충격' 핑계가 자주 나온다. 전두엽은 말 그대로 뇌의 앞부분을 가리키는데, 고등 정신 기능 중에서 동기를 유발하여 주의력을 집중하고, 목적 지향적인 사회적 행동을 하게 하며 감정적 긴장을 조절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이마엽이라고도 하는데, 흔히 "아이고 골이야" 하며 짚는 그 이마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전두엽은 정신계통과 관련이 깊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표지 ⓒ 민음사



얼마 전까지만 해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민음사)의 정신병자들처럼 정신병 치료를 위해 전두엽 절제술을 받기도 하였다. 이 수술을 받은 환자는 감정적 긴장증세가 일부 호전되는 반면에 의무도 잊고 남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또 도덕적인 면에 무관심해지는가 하면, 경망하고 유치한 행동을 잘하게 된다. 또한 중대한 일을 대수롭지 않게 처리하기도 하며, 주의가 산만하여 그저 되는 대로 자극에 따라 행동한다고 한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정신병원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을 통해 고분고분하고 순종적인 인간들을 만들어내려는 지배자들의 음모를 들추어내고 있다. 소설은 가짜로 귀머거리와 벙어리 행세를 하는 브롬든을 1인칭으로 내세워, 정신병원에서의 일련의 일들을 서술한다. 

등장인물을 보면, 굉장히 선명히 1:1로 갈라져있다. 그들 사이에는 어떠한 정치적 장치도 없이, 항상 정면 대결을 선보인다. 정신병원의 핵심이자 거대 권력의 상징인 랫치드 수간호사, 거대 권력에 맞서는 한 개인을 상징하는 랜들 패트릭 맥머피. 그리고 많은 정신병자들과 기타 병원 스태프들. 

여기서 정신병원은 절대 권력, 거대 조직, 기존 세대의 권위 등을 가리킨다. 랫치드 수간호사는 거대 권력을 상징할 테고, 맥머피는 이에 대항하는 한 개인을 상징할 테다. 수간호사의 부하들이나 마찬가지인 기타 병원 스태프들이나, 맥머피와 같은 정신병자들은 이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대중들일 뿐이다.

개인은 없어지고 집단만 남게 된 미국

등장인물의 뚜렷한 대립구조만큼이나, 이야기 또한 말끔하다. 이야기는 맥머피가 정신병원에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사실 맥머피는 가짜 환자다. 바깥세상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지쳐버려서 미친 척하고 정신병원에 들어온 것이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수간호사와의 마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녀가 절대 권력을 이용해 교묘히 정신병자들을 괴롭히는 모습을 보고 격분을 감추지 못하지만, 저항할 수는 없다. 다른 정신병자들도 알고 있지만, 저항할 수 없는 것이다. 수간호사에게 저항했다간, 수간호사가 저항 행동을 '정신적 이상 행동'으로 판단하고 전기충격 내지 뇌 전두엽 절제 수술을 시켜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출간된 해가 1962년이다. 1950년대 미국은 뉴딜 정책과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 하층민을 비롯한 모든 국민들에게 그 경제적 혜택이 돌아갔고, 점차 소득도 엇비슷해졌다. 그들은 점차 모든 면에서 비슷해지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비슷한 생활 방식에 따라야 한다는 순응의 미덕이 강조되었다. 이에 따라 집단주의적인 색체가 강해지고, 거대한 조직이 출현했다. 개인은 없어지고 집단만이 남게 되었다. 소설에서 말하는 정신병원의 상징은 이렇게 생겨나게 된 것이다. 

한 길로만 가다보면 반드시 샛길이 있고 이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 법. 이런 집단주의적인 획일화 사회에 반기를 드는 움직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저항' 또는 '도피'를 꿈꾸었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고자 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탄생하였다. 맥머피는 '저항'하는 자의 일면을 보여준다. 그는 직접적으로 반항하지는 못하는 대신 환자들을 데리고 병원을 빠져나가 배를 타고 바다낚시를 다녀오기도 하고, 몰래 여자들을 불러들여 파티를 열기도 한다. 또 투표를 통해 규칙이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기도 한다. 그는 정신 병원의 세계를 바꿔보려는 이단아 또는 영웅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들에게 '순종'이라는 단어는 곧 '정상'과 같다

영화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의 한 장면. 맥머피는 정신병자들을 데리고 몰래 병원을 빠져나와 바다낚시를 즐기러 간다. ⓒ UA


이 장면을 보다보면, 영화 <쇼생크 탈출>이 생각나기도 한다. 극 중에서 주인공 앤드 듀프레인이 독방 신세를 감수하면서까지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틀어 감청하는 장면 말이다. 해석의 여지는 있겠지만, 사방 어디로도 뚫려 있지 않은 곳에서 일말의 자유를 느끼게 해주는 명장면이었다. 

맥머피는 거대 조직에 맞선 투쟁에서 승리하였을까? 아니, 그라고 별 수 있었겠는가. 그는 수간호사와의 외로운 사투 끝에 패배하고 만다. 수간호사는 이 '환자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사실은 이 골수 저항 분자를 순종시키기 위해) 뇌 전두엽 절제술을 실시한다. 맥 머피는 식물인간이 되었고, 자연스레 그들에게 순종적인 인간이 되었다.

그들에게는 '순종'이라는 단어는 곧 '정상'과 같았다. 모든 것들이 잘 돌아가고 모든 사람들이 잘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 왜 혼자만 튀려고 하는 것인가? 그건 '다름'이 아니고 '틀림'이다. 틀린 건 고쳐야 하지 않겠는가? 뇌 전두엽을 제거해 그들의 마음을 평온히 해주는 건 오직 그들을 위한 처사인 것이다.

하지만 맥머피는 결코 패배하지 않았다. 그는 브롬든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고, 그로 하여금 정신병원을 탈출하게 해주었다. 그 자신은 패배하였지만 그의 정신은 승리의 희망을 퍼뜨렸고, 이는 결국 승리로 귀결될 수 있을 것이었다. 1950년대 비트 세대의 저항(맥 머피의 저항)과 1960년대 히피 세대의 도피(브롬든의 도피)를 이어주는 이 소설이,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강력한 보수주의가 부활하는 미국 사회에 주는 울림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민주주의의 심각한 퇴보...막강해진 조직의 힘

책의 앞머리에 인디언 민간 전승 동요를 실어 놓았다. 

한 마리는 동쪽으로, 
한 마리는 서쪽으로, 
한 마리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갔다. 

어떤 이는 저항하였고, 어떤 이는 도피했지만, 어떤 이는 직접 핵심으로 들어가 맞섰다는 뜻일 테다. 우리나라는 지난 5년 간 민주주의의 심각한 퇴보가 진행되었고, 그 어느 때보다 거대 조직의 힘이 막강해졌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저항의 움직임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이를 주도해야할 청년 세대는 눈앞에 떨어진 불을 끄지 못하고 발버둥치고 있고, 청년 세대를 이끌어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 할 기성 세대 또한 자신 몸 하나 가누기도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렇게 가다간 민주주의의 5년 퇴보가 10년이 되는 게 기정사실화 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한 마리는 동쪽으로 한 마리는 서쪽으로 갔으면, 한 마리 정도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가야 하는데 말이다. 그 한 마리마저 북쪽이나 남쪽으로 가버리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오마이뉴스" 2013.3.22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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