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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살찌우는 통찰 하나, 간과할 수 없는 불확실한 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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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 ⓒ후마니타스

인터넷이 보급되고 SNS의 파급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면서 시위 운동에도 큰 변화가 일었다. 강력한 시위를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시위의 목적과 방법이 합당하고 이치에 맞아야 함이 우선이다. 


자, 그럼 여기서 시위 운동에 참여할지 안 할지 고민하는 한 사람의 시선에서 바라보자. 그가 열렬한 시위 참가자는 아니라는 전제 하이다. 그는 무엇을 고민하는 걸까. 시위에 참가할 마음은 있지만 혼자 참가하기는 싫은 것이다. 또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일종의 안락함을 느끼며 시위를 하고 싶은 지도 모른다. 즉, 그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참가한다고 했을 때 비로소 참가의 결정을 내릴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후마니타스)는 이렇게 개개인이 서로의 행동을 조정하는 것을 '조정 문제'라 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유 지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위의 예시에서 보자면, 고민하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참여 여부에 조정을 당하는 것이 조정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고민하는 한 사람은 다른 많은 사람들이 참가한다고 했을 때 비로소 참가 결정을 내리는 것을 공유 지식에 의한 문제 해결이라 할 수 있겠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도 타인이 참여할 때 참여 결정을 내리는 것처럼, 타인도 사람들이 참여할 것이라는 확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실들을 서로 알고 있어야 하며, 서로 알고 있다는 사실 또한 서로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런 식의 작용이 연쇄적으로 일어날 때 공유 지식이 생겨나고 비로소 힘을 얻게 된다. 


위에서 예를 든 시위 운동은 공식 행사, 집회, 이벤트 등과 함께 공유 지식을 산출하는 사회적 실천이라 할 수 있는 '공공 의례'의 좋은 사례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광장에 모여 이루어진 다는 것이다. 


한편 이와 관련된 사례를 사회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특히 판매와 관련한 수많은 사례들이 존재한다. 어떤 영화를 일단 어떻게든 인기를 끌게 만들기만 하면 이후부터는 일사천리이다. '유명한 걸로 유명하다'라는 유명한 말로 유명한 패리스 힐튼처럼, 단지 많은 사람이 안다는 이유로 봤다는 이유로 개개인은 그 영화를 더욱더 보고 싶어 할 것이 자명하다. 100%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곳엔 더 이상 감독과 연기자의 실력이나 스토리, 영화적 기법 등의 역할은 없다. 


이는 광고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최고의 축제 중 하나인 슈퍼볼 기간은 광고의 천국이다. 2014년 현재 슈퍼볼의 30초 광고비는 43억에 달한다. 1초에 1억 5천여 만원인 것이다. 이토록 무지막지한 광고비에도 불구하고 매년 피튀기는 광고 전쟁을 치르는 이유는 바로 슈퍼볼 시청자 수에 있다. 2014년 현재 슈퍼볼의 시청자수는 1억 1000만 명을 넘어섰다. 그야말로 미국인에게 슈퍼볼은 안 보면 안 되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형성되는 공유 지식 나아가 메타 지식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내가 슈퍼볼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도 알며, 그런 사실을 내가 아는 것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원형 감옥'이 그것인데, 중앙의 감시탑을 중심으로 감방들이 원 모양으로 배치된 형태를 말한다. 중앙의 감시탑은 안에서 밖을 볼 수 있지만 밖에서 안을 볼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바깥의 죄수들은 공유 지식을 만들어 낼 수 없고 절대 반란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수들은 감시자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바가 있다. 바깥의 죄수들은 다른 죄수도 같은 종류의 감시 아래 있다는 사실을 서로 인식하게 된다. 즉, 다들 같은 처지에 있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모두 알게 되니 공유 지식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책이 주장하는 바를 다시 생각해보자. 기본 전제는 1967년 Sen이라는 학자가 주장한 '어느 누구도 홀로 행동하길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이다. 과연 옳은 전제인가? 재밌고 흥미로운 사례들이고, 확실하고 군더더기 없는 해석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제가 옳지 않는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제일 먼저 꺼낸 '시위 운동'을 예로 들어 본다. SNS의 파급력이 증대됨에 따라 시위에 참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참가 여부를 아주 손쉽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의 주장에 따르면, 그렇기 때문에 개개인은 참가 결정을 빠르고 쉽게 내릴 수 있다. 공유 지식의 생성이 굉장히 빠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정작 중요한 시위의 목적이 흐릿해진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시위가 단순히 사람들이 어떻게 모이게 되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이 사회학으로 분류됨에도 불구하고 막상 읽으면 경제학이나 통계학 혹은 심리학에 가까워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단, 이 시대의 수많은 현상들을 분석하는 데 공유 지식이라는 탁월한 이론을 알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책의 절반 이상이 구체적 사례인데, 그 모든 사례를 공유 지식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현상을 꿰뚫는 이론 하나는 사회를 살찌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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