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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맺고, 미국과 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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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조선책략>


<조선책략> 황준헌 지음 ⓒ 네이버

1880년 5월 제2차 수신사로 김홍집은 일본에 파견된다. 약 1개월간 머무는 동안 청국 공관을 자주 왕래하면서 주일 청국공사 하여장(何如璋), 참사관 황준헌(黃遵憲) 등과 외교정책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고, 귀국하는 길에 황준헌이 지은 <조선책략(朝鮮策略)>을 얻어와 고종에게 바친다. 


이 책은 조선이 러시아를 방어하기 위해 '친중(親中), 결일(結日), 연미(聯美)'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얼핏 보면 조선의 현재와 미래를 걱정하며 지은 책인 듯하다. 하지만 기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중국이) 속국으로 여기는 조선에 미국과 일본 등을 끌어들여 앞날을 도모하자는 계산이었다. 


러시아를 막는 책략


황준헌의 <조선책략>은 러시아를 막는 책략을 의미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조선이 아닌 중국이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조선을 끌어들이고, 조선을 다리로 일본과 미국을 엮어 대항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속사정은 이러했은즉 겉모양은 조선의 조선에 의한 국제전략이었으니, 조선이 러시아를 막아야할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중국과 친해야 할 까닭으로, 

'중국은 땅이 크고 물자가 풍부하며, 그 형국이 아시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천하는 러시아를 제어할 나라로는 중국만한 나라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중국이 사랑하는 나라로는 조선만한 나라가 없다...오늘날 조선은 중국 섬기기를 마땅히 예전보다 힘써서...러시아 사람은 그 형세가 외롭지 않음을 알고, 조금은 머뭇거리고 기피함이 있을 것이다.'


일본과 맺어야 할 까닭으로, 

'중국 이외에 가장 가까운 나라는 일본뿐이다...일본이 땅을 잃으면 조선 팔도가 스스로 보전할 수 없게 되고, 조선에 한번 변고가 생기면 구주·사국이 또한 일본의 차지하는 바가 되지 못할 것이다.'


미국과 이어져야 할 까닭으로, 

'남의 토지를 탐내지 않고, 남의 인민을 탐내지 않고, 굳이 남의 정사에 간여하지 않았다...약소한 자를 부조하고 공의를 유지하여, 유럽 사람으로 하여금 그 악을 함부로 행사하지 못하게 하였다...조선으로서는 마땅히 항상 만리대양에 사절을 보내서 그들과 더불어 수호해야 할 것이다...미국을 끌어 들여 우방으로 하면 도움을 얻고 화를 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며 조선이 무사할 때에 외국사람과 교섭하여 조약을 맺으면 저들이 절로 많은 절제를 가하지는 못할 것이며, 모두 조선을 위태롭게 여기는데 정작 조선은 절박한 재앙을 알지 못하니 급히 일어나서 도모하기를 바란다고 하고 있다. 


작은 <조선책략>이 맵다


<조선책략>은 30쪽 정도에 불과한 소책자이다. 그런데 그것이 필사되어 전국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 영남 유생들이 벌떼처럼 들고 있어난다. 그 결과 김홍집을 탄핵하는 만인소(1만 명의 상소)가 지어 올려지고, 거국적인 위정척사운동의 선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른바 신사(辛巳) 척사상소운동이다. 이후 경기·충청·호남 등지에서도 상소가 빗발치게 되고, 그 중 몇몇이 유배와 참형에 처해지기도 한다. 이와는 반대로 개화상소도 만만치 않게 올라와 양측 사이에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언론전이 전개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당시 집권층에서 큰 영향을 주어 개방정책 및 서구문물 수용정책 추진의 계기가 된다. 내용은 분명 당시의 조선인의 생각보다 한걸음 앞선 이론이자 생각이었고 개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당시의 국제 정세를 알려주는 지표가 되었다. 또한 청나라의 주선으로 미국과의 수교(수호통상조약)를 맺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내재적 역량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개방과 청나라의 간섭, 일본의 침략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바 그 한계성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내용이 청나라의 관점에서 쓰였다는 점으로 볼 때, 당시의 국제 정세를 완벽히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이 한계이다. 


130년 전으로 회귀한 동아시아


지금 동아시아는 쉴새없는 난타전이 계속되고 있다. 한·일 독도 분쟁과 위안부 문제, 중·일 센카쿠 분쟁, 중국과 필리핀 난사군도 분쟁, 한국 탄도미사일 연장 조치, 이 모든 일들에 대한 미국의 간섭. 130년 전, 동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벌였던 러시아, 미국, 중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의 각축이 지금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실정이다. 


<조선책략>이 쓰인 당시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지은 책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일본이 그 자리에 있을지 모르겠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 5위권의 군사력의 우리나라 한국이지만 여전히 내재적 역량이 선진국에 비할 바 못하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소견이다. 이런 때 또 다른 <조선책략>이 나와 우리나라를 뒤흔들어 놓을지 모르는 일이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책략을 세우고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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