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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1942년을 돌아보다> 류전윈 작가의 후련한 반전을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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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 읽기] <1942년을 돌아보다>


중국 소설가 류전윈 ⓒ한겨레

작년 여름, <1942 대기근>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중국 정부가 기록조차 남기지 않았던,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상 최악의 대기근이었다는 허난성 대기근을 복원해낸 책이었다. 이 책은 중국에서는 2012년에 출간되었는데, 당시 류전윈의 소설 <1942년을 돌아보다>를 원작으로 한 펑샤오강의 영화 <1942>가 개봉되어 '홍콩금상장영화제', '중국, 대만 최고의 영화' 등에서 상을 타는 등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관련된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세 명의 기자가 급하게 관련 자료를 찾아 책으로 낸 것이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류전윈의 중편소설 <1942년을 돌아보다>가 나온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1942년의 허난성 대기근은 중편소설로는 담을 수 없는 방대한 이야기들이 있을 진대,  작가는 이를 어떻게 담아냈을까? 


류전윈은 중국 사실주의 작가의 대표주자로, 거대 담론이나 이데올로기 또는 역사를 움직인 굵직한 사건을 주제로 소설을 발표하는 작가가 아니다. 그의 소설적 특징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소시민의 일상을 그리는 것이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하다. 


<1942년을 돌아보다>는 르포 형식으로 쓰여졌다. 작가 류전윈은 실제로 허난성에서 태어났는데, 소설 속 화자도 그런듯하니 아무래도 작가 자신이 화자로 등장하고 있는 것 같다. 화자가 여러 사람들을 취재하고 신문 등의 당시 자료를 인용하며 진행해나가고 있다. 


소설에서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문구는 대략 다음과 같다. '기아 난민들은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했으며, 들판에 굶어 죽은 시체가 널려 있다.' '허난성에서 굶어 죽은 자가 3백만이 넘었다.', '3백만 명이 죽은 것은 사실이나, 역사적 상황으로 볼 때 결코 큰일은 아니다.', '사람들은 굶어 죽어가도 관리들과 통치자는 아름다운 생활을 계속한다.'


소설은 누가 봐도 위정자와 권력의 비열한 속성을 파헤치기에 일념이다. 역사 속 실제 인물인 장제스를 계속 거론하며, 장제스는 허난성에서 3백만 명이 굶어 죽어가는 일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 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에게는 이보다 훨씬 중요하고 심각한 역사적이고 세계적인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신경을 써 3백만을 구하려다가 3억을 잃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 였다나. 


그런데 소설 속에서 화자가 1942년 대기근에 대해서 취재하고자 하는 대상들이 하나같이 떨더름 하거나 당시를 기억하지 못한다거나 별 것 아닌 일이었다는 식으로 치부하고 자세한 얘기를 해주지 않는다. 기억의 흐름 속에서 과거는 현실의 벽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고 만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가? 아니면 정녕 1942년 대기근은 중국이라는 광활한 땅에서 일어난 수많은 자질구레한 사건사고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가? 


르포 형식을 차용한다는 것은 자료보다 취재에서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전제 하인데, 이 소설은 그러지 못하니 이상할 따름이다. 이 부분에서 작가가 의도하는 바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다. 


소설이 막바지에 이르면, 1942년을 넘어 1943년이 나온다. 1942년의 가뭄을 넘어, 1943년의 메뚜기 떼의 습격을 받은 것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살 길이 없었고, 마지막 희망마저 없어진 상태였다. 이때 그들을 구해준 건 바로 일본군이라고 한다. 물론 일본군의 정치적, 전략적 의도가 숨겨져 있었지만 어쨌든 그들을 구한 건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화자는 당시의 국민당 정부를 더더욱 욕하기 시작한다. 일본군을 두둔한다기보다 그쪽이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들은 살아야 했고, 살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음식을 주는 이가 누구인지 가릴 여력이 없었다. 


우리 고향 사람들은 일본인의 식량을 먹고, 나라를 팔고, 반역자가 되었다. 이런 나라를 팔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미련을 가질 게 뭐가 있는가?... '굶어 죽더라도 중국 귀신이 될 것인가, 굶어 죽는 대신 매국노가 될 것인가?' 우리는 후자를 택했다. (본문 중에서)


그런데 마지막 페이지가 가관이다. 화자가 1942년을 돌아보고 얻은 마지막 결론이라 내놓은 것이 바로 그 기간 동안 발생했던 작은 사건들인 두 건의 이혼 성명이다. 대기근은 전체적인 흐름일 뿐이고, 그 흐름 아래에는 여전히 온갖 종류의 복잡한 감정의 갈등과 일상생활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며 대기근만 보면 사람들의 전모를 파악하지 못할 것이기에, 두 건의 이혼 성명을 통해 당시 시대 상황을 엿보자고 말한다. 


그야말로 작가 류전윈의 후련한 반전이다. 이 정도면 뒤통수를 시원하게 갈긴 것과도 같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1942년 대기근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기간 동안의 소소하고 일상적인 생활의 단면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화자가 1942년 대기근에 대해 알고자 당시 생존자들을 취재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인가? 그는 단지 그들의 일상을 알고자 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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