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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닭털 같은 나날> 현실에 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위대한' 이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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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닭털 같은 나날>


<닭털 같은 나날> ⓒ밀리언하우스

다들 그렇게 사는데 나는 그렇게 살지 않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곤 한다. 매일 지근거리에서 보게 되는 부모님의 삶을 보면서, 절대 부모님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설마 그렇게 살게 될까 하며 지나가 버리곤 하는 것이다. 그들의 삶은 너무나 재미없고 단순하며 천편일률적이고 희망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과 나을 거 없는 다를 거 없는 삶이란 말이다. 


반면 부모님 세대의 다음 세대는 상당히 많은 이들이 대학을 나왔고 지식의 함량이 출중하다. 생각하는 것도 웅대하진 않아도 소시민적이지는 않다. 적어도 부모님 세대와는 다른 삶을 그리고 더 나은 삶을 당연하게 기대한다. 이는 부모님 세대도 마찬가지이다. 자녀 세대가 그런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고 자부하는 당신들이다. 


그런데 바뀐 게 없는 것 같다. 대학을 나와도 지식 함량이 커져도 경쟁력이 월등해져도 살아가는 건 여전히 지리멸렬하다. 굳이 부모님 세대와 비교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보이는 나날들이 같고 생각이 같고 인생이 같다. 중국 작가 류전윈의 <닭털 같은 나날>은 베이징에 사는 한 부부의 일상을 통해 이런 현실을 보여준다. 


두 사람 모두 대학을 나왔고, 성취욕 또한 강했다. 열심히 학업에 매진했고, 웅대한 이상도 품고 있었다. 관공서의 처장이나 국장, 사회의 크고 작은 기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몇 년 후, 그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천편일률적인 삶을 살게 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본문 중에서)


남편 린은 새벽부터 국영 상점에 줄을 서서 두부를 사곤 한다. 언제 한 번은 밤에 계량기가 돌지 않을 정도로 살짝 수도꼭지를 열어 양동이에 몰래 물을 받은 적도 있다. 또한 몇 년 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집에 살다가 빈민촌으로, 임시 가옥으로, 옮겼다가 결국 지금의 방 하나 있는 집을 얻었다. 그렇다. 그는 가난한 소시민 가정의 가장이다. 


아내 리는 출퇴근 시간만 4시간 이상이 걸리는 직장을 다니고 있다. 일 자체는 편하기 그지 없지만 출퇴근이 너무 힘들다. 남편 린은 이를 해결해 주기 위해 수를 쓴다. 회사의 부국장에게 부탁해 그의 동창생이 인사 책임자로 있는 회사에 아내를 소개 시키려고 계획이다. 그런데 린은 불안감을 참지 못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다. 그는 다시 한 번 부탁하러 가면서 '코카콜라' 한 박스라는 웃지 못할 선물을 들고 가기도 한다. 


소설은 에피소드가 끊이지 않고 계속 되며 빠르게 전개 된다. 우리네 일상이 지리멸렬함 속에서도 끝없이 이어지는 사건 사고들의 연속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순간 순간 다가오는 소소한 문제들을 생각하고 처리하다 보면, 미래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과거는 이상(理想)만이 판치는 비현실적인 세계일 뿐이다. 현재는 오직 생존만이 있을 뿐이다. 살아가기 위해 뭐든 해야 하지 않는가?


모든 것에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도리어 참을 수 없는 것은 '두부가 상하는 것' 같은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다. 과거에는 처자식에게 따뜻한 잠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을 농민의식이라고 비판했지만, 사실 처자식을 돌보지 않으면 누구를 돌보겠는가? 그리고 처자식에게 따뜻한 잠자리를 마련해주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누가 날마다 따뜻한 잠자리를 보장할 수 있겠는가? 아내와 아이에게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과거에는 웅대한 이상을 품어도 양해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유치하고 성숙하지 않아, 사물의 발전 법칙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그렇지만 사람이 어떻게 살기 위해 먹기만 하겠는가. 먹기 위해 사는 때도 있어야 하지 않는가.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쇼핑도 하고 소풍도 즐기며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어떻게 매번 좋은 게 좋은 거라는, 과정은 어떻든 간에 결과가 좋으면 되는 거라는 생각만 하며 살아 갈 수 있겠는가. 하지만 소설 속에서 이런 생각은 현실의 장벽 앞에 슬며시 사라지고 만다. 


어느 날 린의 집에 손님이 찾아온다. 그는 린의 은사로서 린에게 매우 잘 대해주던 분이셨다. 그런데 린에게는 선생님을 모실 돈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은 물이나 얻어 마시고, 오히려 참기름 두 통을 린에게 선물로 준 뒤 나가야 했다. 또한 그들에게는 가정부가 하나 있었는데, 돈을 아끼는 방편으로 쫓아내기도 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리의 출퇴근 문제가 해결되었다. 회사에서 통근 버스를 리의 집 근처까지 배정해준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이유가 리에 있지 않았고 사장 처제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리는 기분이 좋지 않았고 모욕을 받은 느낌까지 들었다. 결국 자존심이 밥 먹여주지는 않는 다는 자기 합리화로 어물쩡 넘어가고 만다. 


이어서 비슷한 느낌의 일이 터진다. 딸 아이가 A 회사에서 운영하는 좋은 유아원에 가길 원하는데, 그곳은 가기가 너무나 힘든 곳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사회적 급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포기하고 있던 찰나, 앞집에서 손을 써주어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앞집 아이가 잘 울어서 적응하지 못할까 봐 린과 리의 아이를 짝지어서 들여보낸 것이었다. 결국 이 또한 자존심이 밥 먹여주지는 않는 다는 자기 합리화, 좋은 게 좋은 거다 라는 생각으로 넘어가고 만다. 


"사실 세상일이란 게 참 간단한 거야. 하나의 이치를 깨닫고 그 이치에 따르면, 삶이 흐르는 물처럼 순탄하거든.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면 아주 편해. 세상이 편해지면 지구도 그에 따라 추웠다 더웠다 하는 거라고." (본문 중에서)


살아가기 위해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자존심을 버리고 꿈도 꾸지 않는 이들을 비웃을 사람을 없다. 그들을 나무라거나 손가락질 할 수 있는 권리는 아무한테도 있지 않다.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그럴 권리도 있고 나아가 의무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조금 꺼려지는 이유는, 생존과 이상(꿈) 사이에서 고민하게 될 때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눈에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도 생존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나 하나는 괜찮지만 최소한 나의 가족에게는 따뜻한 밥 한 끼와 따뜻한 잠자리를 주어야 하기에. 소설 제목처럼 닭을 잡은 뒤에 피와 털이 난무하는 비참한 현실이나 허섭쓰레기 같은 일상이 내 삶을 온전히 지배하게 된다고 해도 말이다. 


이상을 선택한 사람들은 정녕 '대단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위대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하다. 그들은 현실의 토대 위에서 이상을 추구하는, 범인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분명 대단하다. 하지만 현실에 두 발을 붙이고 이상까지 떠 받들며 살아가는 이들은? 이들이야말로 위대한 이들이 아닐까?


퇴근길 버스 안에서 집에 쌓아둔 배추더미를 널어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하루 종일 그를 상심하게 했던 선생님의 일은 기억 저편으로 묻히고 말았다. 죽은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 더 생각해봐야 소용이 없다! 살아 있는 사람은 역시 배추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그는 또 생각했다. 배추를 다 정리하면 아내가 전자레인지로 닭을 구워줄 것이고 맥주를 내줄 것이다. 그것으로 그는 아무 불만이 없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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