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책 다시 읽기] <유혹하는 글쓰기>
<유혹하는 글쓰기> ⓒ김영사
무수한 밀리언셀러 발표, 세계 35여 개국 번역, 전세계 3억 5천만여 부 판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화려한 기록과 함께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이 소설가는 누구일까? 그 이름에서 이미 '최고'를 느낄 수 있을 법한데, 그는 '스티븐 킹'이다.
2000년대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를 고르라고 하면 <해리포터 시리즈> 또는 <다빈치 코드>를 말하는 게 맞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시리즈 자체로만 5억여 부가 팔렸고, <다빈치 코드>는 1억 부 가까이 팔렸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 또는 '성경의 판매량을 뛰어 넘은 책'이라는 비정상적인 수식어는 이 책들의 출현 이후 생긴 것이다.
그런데 <해리포터 시리즈>나 <다빈치 코드>의 '소설가'는 소설보다 유명세가 한참 떨어진다.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 시리즈>의 후속으로 낸 소설들인 <캐주얼 베이컨시>, <쿠쿠스 콜링>이 전작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를 보여준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댄 브라운은 <다빈치 코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와 설정 등으로 만들어낸 소설들이 그의 이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의 이름이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반면 '스티븐 킹'이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가 된 지 오래다. 비록 한국에서는 그 명성에 비해 큰 인기를 끌지 못하지만, 영미권에서는 그를 따라잡을 소설가는 단연코 없다 하겠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는 그의 소설 대신 그의 글쓰기 책 <유혹하는 글쓰기>(김영사)가 제일 큰 히트를 쳤다. 이 책은 스티븐 킹의 자서전, 작가 수업, 글쓰기 비법서를 겸하면서 굉장히 실용적이고 재미있고 감동을 주기까지 한다.
책은 크게 네 파트로 나뉜다. 이력서(어린 시절부터 작가가 되기까지를 자서전 형식으로 서술), 연장통(글쓰기에 필요한 자세와 도구들), 창작론(작가가 되고자 할 때 필요한 구체적 방법), 인생론(생명을 잃을 뻔한 교통사고를 당한 체험과 그에 따른 창작에의 깨달음)이다.
이 중에서 이 책이 여타 글쓰기 책과 구별되는 파트는 '이력서'라고 할 수 있다. 책의 2/5에 해당하는 분량의 이 파트는 작가가 되기까지 어떤 우여곡절을 겪어 왔는지 서술하며 그 안에서 글쓰기와 작가에 대해 은근하게 말하고 있다. 그의 체험이 자체로 작가 수업으로서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작가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자세를 취하며 어떤 글을 쓰는지 알게 된다.
"사람들이 환경에 의하여, 또는 자기 의지에 의하여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작가의 자질은 타고나는 것이다. 그러나 특별한 자질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조금씩은 문필가나 소설가의 재능을 갖고 있으며, 그 재능은 더욱 갈고 닦아 얼마든지 발전시킬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 밖의 '연장통' 파트나 '창작론' 파트는 말 그대로 글쓰기의 실전에 해당한다. 글쓰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또는 들어가서 어떤 도구를 써서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다만 '스토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소설가답게 스토리를 뼈대로 삼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재미있지만 한 눈에 확 와 닿지 않을 수 있겠다.
그의 설명을 간략히 요약해 보자면 이렇다. 스티븐 킹은 글쓰기에서 최선의 능력을 발휘하려면 연장들을 골고루 갖춰 놓고 그 연장통을 들고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주 쓰는 연장들 순서대로 배치를 해야 한다고 한다. 맨 위부터 차례로 '낱말', '문법', '문장', '문단', '형식', '문체'의 순이다. 그러며 웬만해서 수동태, 부사를 최대한 배제하고 근심과 허위 의식을 벗어던지라고 강력하게 '부탁'한다. 지극히 그의 주관적인 생각들이지만, 그가 기준점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글쓰기는 창조적인 잠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침실처럼 집필실도 자기만의 공간이고 꿈을 꿀 수 있는 곳이다. 글쓰기에서든 잠에서든 우리는 육체적으로 안정을 되찾으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정신적으로는 낮 동안의 논리적이고 따분한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정신과 육체가 매일 밤 일정량의 잠을 자듯이, 깨어 있는 정신도 훈련을 통하여 창조적인 잠을 자면서 생생한 상상의 백일몽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것이 훌륭한 소설이다."
그가 말하는 창작론의 기본은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동의하고 동의하며 또 동의한다. 그러나 이 명제만 믿고 무작정 읽고 쓰기만 해서는 좋은 작가가 되기 힘들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스티븐 킹은 작가가 되고자 하지 않아도 누구나 학생 때 한 번 들어봤을 만한 말을 하고 있다. 소설의 삼 요소인 '서술', '묘사', '대화'. 창작론의 태반을 이 삼 요소의 설명에 할애한다. 이는 정말 작가 지망생을 대상으로 한 자세한 설명이다.
한편 그의 소설은 웬만큼 읽은 팬들도 흥미롭게 읽을 만하다. 이 설명의 거의 모든 예가 자신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즉, 스티븐 킹 소설 출간의 뒷 이야기를 하며 작가 수업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베스트셀러' 소설가 다운 발상인가? 그러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요약은 놓치지 않는다.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한 기본적인 방법들을 살펴보았는데, 그 모든 내용은 결국 두 가지로 귀결된다. 연습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진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스티븐 킹은 1999년 산책 중에 목숨을 잃어버릴 뻔한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다. 무릎 아래에서 적어도 아홉 군데가 부러져 자칫 다리를 절단할 수도 있었지만 다섯 번의 마라톤 수술로 다리를 고치게 되었다. 이후 그는 글쓰기에서 많은 어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사정이 점점 좋아졌다. 다리 수술을 두 번 더 받았고 심각한 후유증을 넘기며 글을 계속 쓰고 있다. 어떤 날은 글쓰기가 한없이 어렵지만, 또 어떤 날은 글쓰기를 하며 행복해진다. 태어난 이유가 글쓰기 때문이라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글쓰기가 스티븐 킹의 삶을 더 밝고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에게 글쓰기는 곧 삶이다. 이것이 그의 작가 수업, 마지막 한마디이다.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작품을 읽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준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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