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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부정확한 기억과 불충분한 문서가 만든 역사의 한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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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 읽기]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표지 ⓒ 다산책방

난 현재 평범하기 그지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남들처럼 아침에 지친 몸을 일으켜 세워 아침도 먹지 않은 채 출근길을 재촉해 출근을 완료하고 정신없이 오전을 보낸다. 점심을 먹고 졸음을 참아가며 오후를 보내고 퇴근을 기다린다. 퇴근길에는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책을 탐독하고 집에서 저녁을 먹는다. 컴퓨터를 하고 TV를 보다가 잠자리에 든다. 너무나 단조롭고 평범한 일상이 계속 되다보니, 이 범주 밖에서의 기억들은 자연스레 해체된다.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한 시간이 흘러 온전히 기억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누군가 나의 말이나 행동에 상처 받거나 감동을 받았을지 모른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내 평생에 걸쳐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는 장면이 있지만, 정작 장면 속 주인공은 기억하지 못할 때가 허다하다. 그래서 그에 관련된 무엇을 간직해 놓거나 기록해 놓는다. 그리고 그것을 보며 기억을 떠올려본다. 하지만 온전히 떠올리기에 불충분하다. 그렇게 부정확한 기억과 불충분한 문서가 만나 한 사람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그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다. 


2011년 세계적 권위의 영어권 최고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다산책방)는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 노년의 주인공이 불충분한 문서를 얻게 되면서 일어나게 되는 일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부정확한 기억에 의지해 이 문서가 무엇인지 추론해 보지만,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너무나 뜬금없고 생각지도 못했던 문서이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어린 시절(중학교 때)과 노년 시절을 구분 짓는다. 1부의 어린 시절은 주인공 토니의 부정확한 기억으로 기반한다. 그에겐 친한 두 친구가 있었고, 그 시절엔 으레 그렇듯이 허영심이 가득했다. 그런 그들 앞에 '진짜'가 나타난다. 전학생 에이드리언이다. 그는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아주 명철하고 이성적인 철학자와 같은 생각과 행동을 보였다. 


그러던 중, 그리 친하지는 않은 친구인 롭슨이 자살을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소문이 떠돌기 시작한다. 제일 유력한 진상으로 그와 여자친구 사이에서 아기가 생겨서 자살을 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토니와 에이드리언을 비롯한 친구들은 갖가지 허영심에 가득 찬 해석을 한다. 에이드리언은 역사 시간에 선생님의 질문인 '역사란 무엇인가'의 대답에서 롭슨의 자살을 예로 들며 이 해석에 종지부를 찍는 발언을 한다. 그리고 이 해석은 이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입니다. (중략) 우린 그가 죽었다는 것, 그에게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것, 그녀가 현재 임신했다는 것, 아니면 과거에 그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외에 우리가 뭘 알고 있을까요?(본문 속에서)


토니에게 베로니카라는 여자친구가 생긴다. 허세만 있을 뿐 실세는 없는 토니는 베로니카에게 숙맥 같은 모습을 보인다. 베로니카는 이에 싫증을 느낀 것일까? 결국 그들은 헤어지고 시간이 흘러 베로니카는 에이드리언과 사귀게 된다. 에이드리언은 이를 허락받기 위해 토니에게 편지를 쓴다. 토니도 이에 성실히 답변을 해준다. '아주 유하게'


한편, 토니는 베로니카와 헤어지기 전 베로니카 집에 초대를 받는다. 그녀의 가족들은 알듯 모를 듯 뭔지 모를 위화감이 들게 한다. 그곳에서의 기억들이 훗날 토니에게 다가올 거대한 파국의 강도를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된다. 흩어져 있던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면서. 


그리고 시간이 흘러 토니는 에이드리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친구들과 만나서 그가 왜 자살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너무 똑똑해서 자살을 했다? 그들로써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는 에이드리언의 자살이었다. 


2부는 토니의 현재인 노년 시절을 이야기한다. 작가가 묘사하는 노년 시절은 아주 섬세하고 실제적이다. 그 노년의 이야기만 놓고 보면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문학동네)에 필적하고도 남는다. 어떤 면에서는 더욱 와 닿기도 한다. 이 소설을 즐김에 있어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과는 약간 다르지만 잠시 머리를 식히며 쉬어가는 페이지로 너무나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토니는 어느 날 우연히 문서를 발견한다. 그 문서는 편지봉투이다. '고 사라 포드 여사의 재산 처분 문제'로 집 주소를 확인하고 여권 사본을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다. 오백 파운드와 두 개의 '문서'가 남겨졌다는 것. 오백 파운드는 포드 여사의 유산이다. 두 개의 문서 중 한 개는 포드 여사의 유언, 두 번째 편지는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이다. 이 일기장은 현재 베로니카의 소유로 되어 있다. 하지만 포드 여사의 유서 내용 상으로는 토니의 것이기에 토니는 베로니카를 찾아 나선다. 그녀와 만나게 되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거대한 파국으로 점점 다가가게 된다. 


그런데 토니에게는 궁금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베로니카의 어머니인 하라 포드 여사가 왜 유산과 유언을 자신에게 남겼고,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왜 하라 포드 여사가 가지고 있었는지, 그걸 또 어떻게 베로니카가 소유하고 있는지. 이 모든 궁금증을 풀기 위해선 베로니카를 만나야 했다. 


결국 베로니카를 만나게 되었고, 그녀로부터 충격적 사실을 듣게 된다. 에이드리언이 토니에게 베로니카와 사귀는 것을 허락 받는 편지를 보냈고 이에 대해 토니가 답장을 보냈을 때, 그 내용은 '아주 유하게'가 아니라 '아주 격하게'였다는 것이다. 그의 기억은 완전히 반대로 되어 있었다. 


나는 이 편지를 몇 번에 걸쳐 읽고 또 읽었다. 내가 그 편지를 썼다는 사실이나 그렇게 험담을 퍼부었다는 것을 부인하기가 어려웠다. 행여 하소연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 편지를 쓴 당시의 나와 현재의 나는 다르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이지, 나의 어떤 성정이 나를 부추겨 그런 편지를 쓰게 했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본문 속에서)


'부정확한 기억'에 대한 충격, 그리고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토니의 아주 격한 편지에 대한 충격. 그리고 이어지는 베로니카가 데리고 다니는 조금은 지능이 낮아 보이는 아이에 얽힌 충격. 여기에 또 다시 이어지는 베로니카의 어머니 사라 포드 여사와 에이드리언에 얽힌 충격적 반전. 


소설은 토니의 정확해 보이는 기억에 기반한 어린 시절을 시작으로, 그의 평온한 노년 시절을 지나, 마구 쏟아지는 충격과 거대한 비극적 반전으로 끝을 맺는다. 부정확한 기억과 닫힌 뇌의 폐쇄 회로는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경구를 무색하게 만든다. 그 끝에는 거대한 혼란만이 남아 있다. 


언뜻 보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는 제목은 소설의 내용과는 정반대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읽는 사람에 따라 확실히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마케팅적인 측면이 강한 제목이었다고 생각된다. 책으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데는 탁월한 솜씨를 발휘했지만 읽을 때는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았나 싶다. 


내용면에서도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작가인 줄리언 반스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스토리에 완전히 녹아들지 만은 않는 내용들이 언뜻 언뜻 보인다. 이런 내용들이 누구에게는 좋게 다가오고 누구에게는 너무 생소하고 뜬금없어 나쁘게 다가올 것이다. 


마지막 최후의 반전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지만, 내용을 밝히지는 않겠다. 마지막 두 페이지에서 최후의 반전이 전개되는데, 웬만한 독자도 이 반전을 알게 된 후 바로 책을 덮지는 못할 것이다. 중간 중간 메모를 하지 않은 이상, 앞을 다시 뒤적일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한 반전이지만, 주인공 1인칭 시점이 발목을 잡는다. 시종일관 토니의 입장에서만 서술되기 때문에 소설이 끝날 때까지도 독자가 아는 사실은 거의 없다. 토니의 부정확한 기억과 토니가 얻게 된 불충분한 문서가 전부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읽고 나서도 뒷맛이 개운치 만은 않다. 여전히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다. 모든 걸 해결하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알 도리가 없다. 처음 읽을 때는 주인공의 시선을 쫓아가기 바쁘겠지만, 다시 한 번 읽게 될 때는 모든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짧고 잘 읽히는 이 소설이 결코 짧게만 느껴지지는 않는 이유이다. 소설 작법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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