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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따위가 어른으로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4. 5. 26.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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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 ⓒ반비

지나간 책을 다시 들여다보는 건, 지나간 내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책을 읽을 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하다못해 기분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책 뿐만이 아닐 것이다. 오래된 사진, 아기 때부터 함께한 귀여운 담요, 어릴 때 쓰던 작은 숟가락, 학생 때 매일 같이 오가던 등하교길. 


추억의 저장소에서 이런 것들을 꺼내 놓고 옛 생각을 하고 있으면, 한없이 말랑말랑해진다. 입가엔 미소가 번지고, 머리는 잠시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낀다. 하지만 어김없이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걸 어쩌나. 때로 이런 감상적 추억 놀이는 얼마간의 우울 증세를 동반하곤 한다. 그럴 때면 '다시' 보는 게 싫어진다. 


반면 과거로의 여행을 다녀와서도 현실에 잘 적응할 수 있는 것이 추억의 저장소 어딘가 있나 보다.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반비)의 저자들은 다시 동화를 읽었고 그 동안에라도 예전으로 돌아갔으며 어김 없이 현실로 돌아왔지만 괴리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오히려 어릴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어서 좋았다 하고 '동화' 따위가 어른으로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어릴 때로 돌아갔다가 왔기에 유년 시절을 회상하는 데 힘을 쏟는 저자도 있다. 


우석훈 경제학자는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고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자 맬서스를 떠올린다. 맬서스는 <인구론>을 통해서 너무 많은 인구는 기근과 범죄 같은 많은 사회문제를 야기 시킨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크루지 영감도 같은 요지의 말을 하곤 한다. 찰스 디킨스는 결국 '사랑'이라는 테마로 책을 마무리 짓는다. 이를 우석훈은 다시 21세기 현재의 한국에서도 이 이야기가 유효하다는 말로 글을 끝마치는 것이다. 


또 다른 이의 문제적 동화 읽기를 보자. 장석준 노동당 부대표는 쥘 베른의 <15 소년 표류기>를 읽었다. 그는 이 동화를 요즘 아이들이 읽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오목조목 댄다. 대략적으로 <15 소년 표류기>에는 유럽 제국주의 로망, 노골적 민족주의, 백인 인종주의, 여성 배제, 당연시되는 폭력이 함의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절대적으로 비판적 독서가 필요한 작품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여기에 윌리엄 골딩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파리 대왕>을 비교대조하고 있다. 이런 식의 책 읽기는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작품들을 읽을 때 꼭 필요한 방법이겠다. 


반면 한 권의 책이 멘토 이상으로 인생 전체에 깊숙이 각인되어 많은 부분을 형성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의외로 보기 드문데, 필자의 경우도 '동화'가 나의 인생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정말 적다. 그래도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일종의 성장 소설로 분류할 수 있는 소설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에 비슷한 자장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축복 받은 이들의 동화 읽기를 살짝 들여다본다. 


"<보리와 임금님>은 나를 퇴행 시킴으로써 재무장 시킨다. 한 번도 인생에 실망하지 않은, 한 편의 나쁜 글도 쓰지 않은, 아직 괴물과 마주친 적 없었던 과거로 나를 데려가 다시금 좋은 인간, 아름다운 세계, 훌륭한 문장을 탐내게 한다."


"<앤>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가 사람 답게 살 만한 세상이 가능하다고 믿게 만들고, 생생하고 활기찬 삶을 꿈꾸게 하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지켜줄 테니까."


그렇다면, '동화' 따위가 어른으로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말하는 이는 누구일까? 오영욱 건축가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고 그렇게 느꼈다고 한다. 과연. 첫 문장(세상에서 상상이 사라졌다.)과 끝 문장("상상력이 널 구원할 거야.")만 봐도 나의 결핍된 상상력이 애달프다. '동화'이기 때문에 어른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말로만 상상력 운운할 것이 아니라, 동화를 읽으면 될 일이다. 더 이상 미뤘다가는 갑자기 밀려오는 슬픔에 휩싸일지도?


필자는 어릴 적 동화가 아닌 위인전을 주로 읽었다. 그 어린 나이에도 '시시한' 동화 따위가 아닌 '위대한' 위인들의 삶에서 얻을 것이 많다고 여겼던 것일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으로 후회막심이다. 물론 위인들의 삶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을 테지만, 지금 기억에 남아 있는 건 굉장히 단편적인 사실들 뿐이다. 하다못해 그들 삶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었더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테지만 말이다. 위인전에 그들의 진짜 모습을 담았을 리가 만무하다. 


그나마 동화를 찾으라 하면, TV에서 만화로 방영해주던 옛날 이야기들이 기억난다. 이마저도 시각적으로 부분들만 기억날 뿐, 진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물론이고 전체적인 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른이 된 지금에 와서 '다시'가 아닌 '처음'으로 읽으려니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결코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다시' 읽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책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을 기저로 삼아 소개해준 동화들을 하나둘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장석준의 말에 따르면, 어른들에게도 뜻밖의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동화 읽기는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다. 특히 필자와 같이 동화와 함께 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 별로 없다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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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15 소년 표류기,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 동화, 위인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인생, 추억, 크리스마스 캐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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