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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히틀러를 알아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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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돌베개

'희대의 악마', '악의 화신', '악마의 자식' 이 모든 수식어들이 단 한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믿어지는가? 누구나 그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 사람. 아돌프 히틀러다. 그는 독일을 넘어, 당대를 넘어, 인류까지 넘어, 지구 역사상 가장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나쁜 의미로 말이다. 


한때 히틀러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가 '독재자'였다. 이후 탁월한 '연설가'였다가,  '학살자'가 되었고, 언젠가 '미치광이'가 되었다가, '불우한 사람'이 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중요한 세계사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는 '히틀러'를 히틀러 개인에게 한정 시키기에는 너무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하나의 현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히틀러에 대해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어설프게 알았다가는 그 마성에 이끌려 빠져들거나, 밑도 끝도 없는 무조건적인 부정을 행사할 수가 있다. 이는 히틀러 본인이 원했던 바이기도 하다. 그가 생의 마지막에서 원했던 바는 '히틀러'에 관련된 거대한 무덤을 만들고 그 근처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복수 행위였다고 한다. 특히 독일에 대한 복수. 


이런 해석은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돌베개)의 마지막 부분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이 책은 제바스티안 하프너라는, 독일에서는 많은 사랑을 받는 역사 교양서 작가이지만 한국에는 최초로 소개되는 이가 35년 여 전에 지었다. 독일이 통일되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은 시점이며, 히틀러가 죽은 지 33년 밖에 되지 않았다. 많은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을 거라 생각되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기시감이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수작이다. 


히틀러에 관한 최고의 책 몇 권 중에 하나라고 전해지는 만큼 히틀러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지만, 굉장히 얇다. 히틀러에 관한 최고의 정전이라 평가 받는 요하임 페스트의 <히틀러 평전>(푸른숲)이 1400쪽이 넘는 양을 자랑하는 반면, 이 책은 230여 쪽이다. 그렇지만 그 안에 히틀러의 전체가 들어 있다. 저자의 탁월한 능력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책은 히틀러의 생애, 성과, 성공, 오류, 실수, 범죄, 배신의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히틀러의 삶에서 '성과와 성공'을 볼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 부분만 체득해도 충분한 가치가 있을 듯하다. 평소에 절대로 볼 수 없는, 그리고 생각할 수도 없는 부분들이니 말이다. 저자에 따라 간략히 서술하자면, 히틀러는 경제 기적과 군비 확장이라는 성과를 이룩하였다. 그리고 그는 오스트리아 합병, 주데텐 지역 합병,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지역에 대한 보호령, 메멜 점령, 그리고 폴란드 점령 이후 전 유럽 대륙 지배 등의 현기증 나는 성공 행진을 이어 나갔다. 앞뒤 볼 것 없이 이 부분 만을 놓고 보면, 히틀러의 '성과와 성공'은 지극히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부정들은 치가 떨린다. 히틀러가 평생 희망했던 두 가지 목표가 있다. '독일의 세계 지배'와 '유대인의 근절'. 그는 민족에 기반을 둔 '큰 독일'이 홀로 종족 개선과 반유대주의를 동원하여 세계 패권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기 위해서 정복 전쟁을 벌여 유럽을 독일의 패권 하에 두고, 궁극적으로 '생존공간'인 러시아를 지배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생명체의 자기 보존 충동과 지속적 보존의 욕구는 무한한데, 그에 비해 이 전체 생명의 과정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유한하다. 생존공간의 이런 한계가 바로 생존전쟁을 강요한다."라고 말하며 파괴적 전쟁을 진행했다. 한편 그는 유대인이 '민족의 지식인'을 멸종시킬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를 멸종시키려 한다며, 전 인류가 그들을 멸종시키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곧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재앙을 불러 온다. 


히틀러가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 초반의 압도적인 모습. 러시아를 공격하는 패착. 그리고 이어진 연합군 측의 반격과 무너지는 히틀러. 이후 히틀러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수행한다. 더 이상 점령을 위한 그리고 지배를 위한 전쟁을 수행하지 않게 된 것이다. 다만 방어를 위한 파괴 전쟁이 시작되며 2막이 올랐다. 그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이렇게 시간을 계속 끄는 이유는 바로 유대인의 근절에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전쟁의 소용돌이에 밀어 넣어버리며 능력 이상의 군사적 재능을 발휘한 히틀러의 모습 이면에는, 그 시간을 벌어 유대인을 전멸 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홀로코스트는 그렇게 시행되었다. 


또한 전쟁 막바지에 이르러 히틀러가 이해할 수 없는 서부전선 총공격을 시행한 이유도 히틀러 다웠다고 할 수 있을까. 그의 결심에는 독일 국민들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러시아가 쐐기 공격을 해올 것을 알았음에도 동부전선의 모든 병력을 다 끄집어 내어 서부전선을 공격한 것에는, 독일 국민들이 러시아보다 서방 연합군을 원했던 이유가 있었다.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을 러시아의 분노에 찬 무자비한 공격에 고스란히 노출되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며 독일을 초토화 되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독일 국민들은 독일군을 더 무서워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철저하면서도 처절한 노림이다.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히틀러의 악마의 행동들, 그리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히틀러의 성과와 성공들, 책을 보면 알 수 있을 히틀러의 이해가 되면서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생각들을 상세히 그리고 깊게 무엇보다도 객관적으로 보여준 책이었다. 


적을 이기려면 먼저 적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히틀러를 단순히 적이라고 규정하기엔 뭔가 아귀가 맞지 않을 테지만, 적어도 미래에 절대 그런 사람이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 대해서 먼저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많은 친일파들이 극일(克日)을 위해서 지일(知日)을 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즉, 일본을 극복하기 위해서 일본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말이 좋아 극일이고 지일이지, 실상은 일본을 잘 알아 일본과 친해지고 결국 자신에게 이득이 되기 위한 행동으로 나타났을 테다. 하지만 그 말 자체는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아주 정확한 말이다. 문제는 얼만큼 아는 것에 있지 않다. 문제는 아는 만큼 보일 때, 그 보이는 것을 대하는 태도에 있는 것이다. 


이 책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은 히틀러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보이는 것들을 올바르게 대하는 태도도 어느 정도 정해준다. 그렇지만 주관적이지 않고 객관적이다. 이렇게 마성적인 인물에 대해 객관적으로 보게 해주면서 어떻게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해주는 지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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