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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보시오, 이게 정치인의 진짜 모습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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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보기]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후 '대통령에게 권하는 책'이라는 미명 하에 수많은 책들이 오르내린 적이 있다. 그 중에는 한국현대사에 관련된 책들이 특히 많고, 대선 공약에 관한 책들도 상당수 차지할 것이었다. 하지만 당연히 추천 목록에 올라야 하는 리더십이나 정치에 관한 책은 의외로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심지어 대선 전에 조사한 '새 대통령에게 선물하고픈 책 1위'에는 <피로사회>(문학과지성사)가 뽑히기도 했었다. 현대 자본주의가 '할 수 있다'는 긍정성을 퍼트리는 이면에 성과주의를 숨겨둠으로써 현대인을 착취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어 해당 책을 고른 이유로 '국정 운영에 지혜를 주고 싶어서'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마키아벨리 


▲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외교관, 정치이론가, 저술가. ⓒ 돋을새김

반대로 새로운 정부를 받아들이는 국민들에게 추천하는 책은 뭐가 좋을까? 나는 모든 책을 제쳐두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추천하고 싶다. 왜 하필 <군주론>인가? 하다못해 홉스의 <리바이어던>도 아니고 말이다. 국민을 위한 <군주론> 추천의 깊은 뜻은 차차 밝히기로 하고, 군주론을 살펴보기로 한다.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집필한 때는 1513년이고, 출간은 1532년에서야 가능했다. 500년 정도가 되었는데, 그동안 이 책이 미친 엄청난 영향에 비해서 저서에 담긴 내용은 상당히 적다. 채 100쪽도 안 되는 소책자인 것이다. 그만큼 알짜배기 촌철살인의 잠언들이 시종일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는 것인데, 과연 어떤 내용이 들어가 있을지 궁금하다. 

책을 소개하기에 앞서 저자에 대한 간략히 설명하면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 피렌체 태생으로 일찍이 고위공직자로 활동했다. 특히 외교에 주력했는데, 로마에 갔을 때는 교황의 아들 체사레 보르자에게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의 빠른 판단력과 실행력 그리고 정치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모습 등. 결정적으로 체사레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시키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비록 잔인하고 비도덕적일지라도.

체사레 보르자의 냉혹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일화가 하나 있어 소개한다. 그는 가혹하지만 능력 있는 부관에게 자신이 약탈한 지방을 맡겼다. 부관은 기대에 훌륭히 부응했고, 그 지역을 평화롭게 만들었다. 이에 체사레는 그의 좋은 평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부관의 가혹함을 들춰내 처형해 버렸다. 주민들은 당혹감과 함께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런 체사레에게서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 통일을 이뤄낼 수 있는 영웅의 모습을 보았지만,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던 체사레는 몰락하고 만다. 체사레의 번영과 몰락은 <군주론>에서 주요 모토로 다뤄진다. 마키아벨리는 숙청당하고 만다. 메디치가가 피렌체로 돌아오면서 메디치가를 노린 음모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투옥되고 만 것이다. 비록 무혐의로 풀려놨지만 지방의 작은 농장에 칩거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는 다시 한 번 공직에 진출해 자신의 뜻을 펼쳐보고 싶었다. 그런 의미로 <군주론>을 집필해 메디치가의 군주에게 바쳤으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군주론


▲ <군주론> 표지 ⓒ 돋을새김

책은 26장으로 되어 있고 크게 4부분으로 나눌 수 있겠다. 군주국에 관한 고찰, 군사에 관한 고찰, 통치에 관한 고찰 그리고 이탈리아에 관한 고찰. 철저하게 군주의 입장에서 군주에 의한, 군주를 위한, 군주의 책이었다. 

"군주된 자는, 특히 새롭게 군주의 자리에 오른 자는, 나라를 지키는 일에 곧이곧대로 미덕을 지키기는 어려움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를 지키려면 때로는 배신도 해야 하고, 때로는 잔인해져야 한다. 

인간성을 포기해야 할 때도, 신앙심조차 잠시 잊어버려야 할 때도 있다. 그러므로 군주에게는 운명과 상황이 달라지면 그에 맞게 적절히 달라지는 임기응변이 필요하다. 할 수 있다면 착해져라. 하지만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사악해져라.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나라를 지키고 번영시키는 일이다. 일단 그렇게만 하면, 그렇게 하기 위해 무슨 짓을 했든 칭송 받게 되며, 위대한 군주로 추앙 받게 된다."(본문 중에서)

마키아벨리는 정치와 도덕을 떨어뜨려 놓고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군주의 통치에 있어서 도덕을 염두에 놓으면 안 된다는 말이었다. 이는 정통적인 군주론에 완전히 반하는 주장으로, 500년이 지난 지금도 파격적으로 다가온다. 

아무도 정치인의 비도덕적인 모습을 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마키아벨리의 주장에 따라 다른 관련된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정치인 본연의 모습과 임무를 생각해 본다면 다르게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 비도덕성이라 함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비도덕성은 아니다. 국고를 훔친다든지 권력을 이용해 비합법적인 일을 저지른다든지 하는 행동보다는,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는 걸 말하고 있다.) 

하지만 해석에 따라 명암이 갈릴 이유는 충분히 존재한다. 이를테면 다음의 문장에서 비춰지는 그의 군주상이다. 

"군주는 짐승의 성품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하며 짐승들 중에서도 여우와 사자의 성품을 선택해야 한다. 사자는 함정을 피할 수 없으며 여우는 늑대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함정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여우가 될 필요가 있으며 늑대를 깜짝 놀라게 하려면 사자가 될 필요가 있다."(본문 중에서)

군주가 여우와 같이 비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배워야' 할 뿐 아니라, 자신의 부도덕성을 온화하고 친절하며 품위 있는 가면으로 감추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떤 한계를 넘어서는 소리가 들리게끔 한다. 같은 정치가의 입장이었던 마키아벨리라면 몰라도, 일반인인 나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리더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않은 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마도 종교적 정통성을 무시한 주장을 한다는 이유겠지만, 이 책을 당시 바티칸에서도 금서(禁書)로 정했다 한다. 

그럼에도 그의 사상이 사장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비난받고, 해석되고, 재조명되고 결국 역사를 바꾸기까지 했던 힘은 무엇일까. 그 제일 큰 이유는 그 동안 누구도 제기하지 못했던 정치에 대한 솔직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국가를 잘 통치하기 위한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냉혈한 방법(마키아벨리즘)이라고 욕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실용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힘을 갖추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쉬쉬하는 현실을(더군다나 당시는 종교의 시대였기에) 있는 그대로 드러내놓고, 군주의 갈 길을 제시한 것이다. 

또한 앞서 말한 정통성에서 한 발 나가 근대성에 이바지 했다는 점에서, 그의 사상은 적어도 정치 분야에서 새로운 시조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근대라는 말이 갖는 함량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한마디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마키아벨리의 사상에 비추어 보자면 전통적인 사회의 대체와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멀지 않는 시대를 대변하는 이념이나 사상이 아닌, 전통의 대체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을 정통적인 군주론의 관점에서 보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뒤따른다.

국민을 위한 군주론

이대로라면 <군주론>은 오로지 군주를 위한 책이 되고 만다. 분명 어떤 뜻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공화주의자였다. 그런 그가 군주를 위한 책을 쓴 이유는 당시 이탈리아의 상황에서 기인한다. 당시 이탈리아는 구심점 없이 모래알같이 흩어져 있었다. 북부의 베네치아, 밀라노, 제노아 등과 중부의 로마 교황청, 피렌체 등, 남부의 나폴리 왕국 등으로 난립하고 있던 도중, 프랑스의 침공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공화제로는 이런 상황을 타파하지 못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인 군주제로 힘을 하나로 뭉쳐 나라를 구해야 하지 않겠냐고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군주를 위한 내용으로 꽉 차있는 책이지만, 국민들에게 나라를 지키지 못하는 공화제는 필요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며 국민들에게 군주의 진짜 모습을, 어느 누구보다 위선적인 군주의 모습을 확실하게 각인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국민을 위한 <군주론>의 본질인 것이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피터 본다넬라는 <군주론>에게 '최초'의 수식어를 달아주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최초로 정치지도자의 역할을 분석한 책", "최초로 정치에 무관심한 대중을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책"

정치인(군주)을 위한 책이기도 하지만 국민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명백한 예다. 주로 선악과 파격의 시점으로 해석되어 그 이면에 숨겨진 진짜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지만, 마키아벨리가 군주에게 원했듯이 선악의 색안경을 벗어 던지고 책을 본다면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바가 무엇이었는지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해야 한다고 주장하듯이, 마키아벨리는 비(非)도덕적 행동을 발판삼아 무엇을 얻길 원했을까 생각해본다. 그의 사상의 끝에는 국가 이탈리아가 있었다. 국가를 위해서는 군주와 군주제조차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거기에 자칫 아무것도 아닌 양 지나쳐 버릴 수 있는 부분이지만, 진정한 대(大)도덕을 실천할 수 있는 국가라는 존재를 위해서 스스로의 사상까지 스스럼없이 바꿔버릴 수 있었던 마키아벨리야말로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닌가.



"오마이뉴스 2013.2.27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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