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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인체재활용> 죽음, 꼭 지루해 할 필요는 없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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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인체재활용>


<인체재활용> ⓒ세계사

한국축산물처리협회에 따르면 전국에는 77개의 도축장이 있다고 한다. 도축장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가? 도축이다. 고기를 얻기 위하여 가축을 잡아 죽이는 일.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30개 이상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식탁에 맛있는 고기가 올라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축을 살상하는데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도축은 단순 처리 과정일 뿐이다. 인간에겐 소중한 양식일 뿐이고. 가축은 참으로 유용하다.

 

반면 인간의 죽음은 어떤가. 수 많은 조문객들이 모여 그 또는 그녀의 죽음을 애도한다. 생전 참으로 '유용'했던 한 인간을 추모함인가? 인간의 죽음도 단순 처리 과정인가? 답은 그럴 수 없다이다. 하다못해 사형을 당한 인간도 '인간답게' 보내준다. 하물며 정상적인 인간의 죽음에서는? 문명이 발달하면서 만물의 영장이 된 인간은 언제나 어느 순간에나 인권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건 죽음 이후에도 계속된다. 지금은 많이 나아가 동식물의 권리도 많이 신장되었지만, 인간에 비할 바는 못 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뒤집는 사람이 있다. <인체재활용>(세계사)이라는 섬뜩한 제목의 책을 쓴 '메리 로치'라는 사람이다. 제목만 언뜻보면 스티브 킹의 괴기 소설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어울리지 않게도 과학 관련 서적이다. 원서 제목이 <STIFF>인데,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들이 과학사에 기여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특이한 생각의 소유자라 아니할 수 없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자신의 공간에서 멀리 떨어진 세계 곳곳, 미지의 장소를 뒤졌다. 남극을 세 번째 방문하고 난 뒤로 주변으로 눈을 돌려, 인체재활용에서는 과학과 시체를, 스푸크에서는 과학과 영혼을, 봉크에서는 과학과 성을 취재하였다. 그녀의 관심은 우리의 삶 가운데 존재하는 틈새에 항상 위치하고 있다. -저자 소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틈새를 찾아 다니는 그녀는, 과학에 기반을 두고 성과 영혼 그리고 시체를 파트너 삼아 책을 지어 왔다. 그녀의 밝고 유머러스한 문체와 분위기는 이런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에서 발아하는가 보다. 그럼에도 결코 가볍지 않다. 세계 곳곳을 방문해 발로 직접 뛰고 자료를 모아 사실을 확인하고, 그렇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은 방대한 양의 정보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책이기에.

 

이 책은 목차만 보아도 참으로 '엽기적'이다. 12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중 몇 개만 옮겨 보자면 이렇다.

 

1장 낭비하기에 너무 아까운 머리 _ 죽은 자를 상대로 하는 수술 연습

8장 내가 죽었는지 아는 법 _ 심장이 뛰는 시체 · 생매장 · 영혼에 대한 추적

9장 머리 하나만 있으면 돼 _ 참수 · 부활 · 머리 이식

10장 날 먹어봐 _ 의료 목적의 식인 행위와 인육 만두

 

뒤로 갈수록 자극적인 내용이 보인다. 부담스럽고, 역겹고, 더럽고, 무서운 내용들이 즐비한데, 누구나 한 번쯤은 궁금해 했을 얘기들이다. 신성한 죽음이 아닌 정말 현실적인 죽음, 더 이상 생명체가 아닌 시체로써 대하게 되는 순수한 궁금증. 저자는 연구용으로 기증된 시체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취재해, 이런 순수한 궁금증을 풀어냈다.

 

연구용 시체는 지난 2,000년간 자발적으로, 혹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과학이 대담한 한 발짝을 뗐을 때도, 더 없이 기괴한 실험에도 참여해왔다. 프랑스가 교수형보다 '인간적인' 방법을 찾다 만든 단두대를 처음 시험할 때도 시체가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레닌의 시신을 방부 처리한 실험실 사람들에게 최신 기법을 시험할 기회를 주었다. 또한 안전벨트 의무화 문제로 열린 국회 청문회에도 (서류상으로) 참석했다. 우주왕복선에 (물론 토막들이긴 하지만) 타기도 했고, 테네시 주의 한 대학원생이 인체 자연 발화 이론의 허점을 밝힐 때도 힘을 보탰으며, 파리의 한 연구소에서 예수의 시신을 감쌌다고 알려진 토리노의 수의의 진의 여부를 가리는 실험에서는 십자가에 매달리기도 했다. (6)

 

시체는 이처럼 다양하게 이용되고, 과학과 의학이 발전하는 순간을 함께 해왔던 것이다. 사실이 아닌 양 부정하고 싶은 생각도 들 것이다. 전쟁이 터지면 수많은 시체가 나오고 그 시체들을 이용해 엄청난 의학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다들 알고는 있지만 숨기고 싶은 그런 사실들을 대할 때와 마찬가지 심정이다. 그럼에도 엄연한 사실이다.

 

영국의 연구자들은 수술로 절단해낸 다리에 신을 신겨 지뢰를 실험하는 방법을 택했는데, 그런 식으로 절단해낸 다리는 대개 괴저나 당뇨 합병증이 있어서 건강한 사지와 비교하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어떤 연구자들은 새로 개발된 보호용 신발을 사슴 뒷다리에 신겨 시험했다. 사슴에게는 발가락과 뒤꿈치가 없고 사람에게는 발굽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알기로 사슴을 시켜 지뢰 제거 작업을 하는 나라는 없기 때문에 그 연구가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는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약간 재미는 있지만. (177)

 

참으로 실험 정신이 투철한 연구자들이다. 그들에게 시체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실험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인체를 훌륭히 '재활용'하는 그들의 모습을 어떤 표정으로 바라봐야 하는가? 이 책을 보면 마냥 얼굴을 찌푸리고 보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기괴하고 무섭기까지 한 주제이지만, 저자의 익살스럽고 유머스러한 글을 따라가다 보면,죽음과 시체에 대한 생각이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 인체를 기증하는 것이 저자가 밝힌 대로 '세상을 뜨면서 공원 벤치를 하나 기증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느껴질지 모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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