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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타잔> 친숙함으로 포장되는 흉악함의 정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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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의 <타잔>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의 <타잔> ⓒ 다우

미국에서는 콜럼버스가 와틀링섬에 도착한 1492년 10월 12일을 기념해 이 날을 '콜럼버스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그는 죽을 때까지 그가 발견한 신대륙인 '아메리카'를 인도의 일부로 믿었는데, 후에 이탈리아의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그곳이 인도가 아니라 새로운 땅임을 밝혀내었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따서 이 신대륙을 '아메리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는 순전히 신대륙을 발견한 유럽인들의 시선일 것이다. 이에 따른 비판 또한 거세다. 2002년,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콜럼버스의 날'을 '원주민 저항의 날'로 바꾸는 대통령령을 공표하며,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후에 이어진 유럽 강국들의 침략으로 원주민 수백만명을 학살했다고 비난한 바 있다.


원숭이 무리 속에서 자라난 백인


덩굴을 이용해 숲 속을 휘저으며 '아아아아아~' 괴성을 울리며 동물들을 불러들이는 밀림의 왕자가 있다. '타잔'. 40편이 넘는 영화와 수백 권의 만화, 세계 56개국 언어로 번역된 소설 <타잔>의 주인공이다.


소설은 영국이 서아프리카를 더욱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하여 군인이자 귀족인 그레이스톡 경을 식민지로 파견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영국 귀족은 선상 반란으로 인해 그곳에 도착하지 못하고 무인도에 떨어진다. 그곳에서 오두막을 짓고 아들을 낳는다. 하지만 곧 부인이 죽고 남편은 원숭이의 습격을 받아 죽고 만다. 아이까지 죽게 될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감정이 풍부하고 지능까지 높은 원숭이가 구해 키우게 된다. 그가 바로 '타잔'이다.


20년이 지난 후, 똑같은 방식으로 백인들이 타잔의 나라를 침범한다.


"새들에게나 육상동물에게나 밀림은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인간들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 인간이 다가오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인간이 나타나면 몸집 큰 동물들은 대부분 본능적으로 그 지역을 완전히 떠나버렸고 다시 돌아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인간들이 전염병을 피하듯 동물들은 인간을 본능적으로 피했다."


하지만 그 중에는 미국 여성 제인이 있었다. 그녀를 위해 타잔은 암사자, 원숭이를 차례로 죽이고 영국인의 후예다운 '신(神)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미개한 아프리카 자연에서 자랐음에도 그의 피에는 백인이 있었다.


시작부터 제국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서술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이 소설은, 그럼에도 재미있는 것이 사실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여과없는 우월주의 서술이 이 소설의 매력이자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하게된 이유인 것이다.


소설 <타잔>의 메시지


(Left) 에서 처음 등장하는 타잔. 1912년 10월. (Right) 최초 캐나다판. 토론토. 1914년. ⓒ위키피디아


우리가 너무도 친숙하게 알고 있는 콘텐츠 중 대부분에는, 어렸을때는 모르는 진짜 메시지들이 많이 숨겨져 있다. <타잔>도 마찬가지이다. 원작소설에서와는 다르게 애니매이션, 게임등으로 탈바꿈하면서 더욱 친숙하게 바뀌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역경 속에서 살아남기, 문명(제인)과 자연(타잔과 동물 친구들)의 조화, 드라마틱한 싸움 등이 많이 부각되었다.


분명 <타잔>처럼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사건을 흡인력 있고 박진감 있게 표현해내기란 쉽지 않다. 그 자체로는 찬사를 보낸다 하여도 아무도 반론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메시지의 극렬함이 독자를 뒤흔든다.


책을 발견해 글을 깨우치는 장면으로 아름다움과 거기에서 느끼는 인간의 본질. 자연에서 태어난 인간 '타잔'과 자연을 파괴하러 오는 인간 '타잔의 동족'의 간극에서 오는 모순. 여기에 너무도 자연스럽고 여과없이 보여지는 다양한 우월주의 의식들까지. 단순하지만은 않은 다양한 메시지들이 도처에서 이목을 끌고 있다.


그가 창조한 캐릭터인 '타잔은' 그 어떤 캐릭터보다 오래도록 사랑받았고,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인기를 거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면엔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제국주의, 백인 우월주의가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친숙함으로 교묘히 포장해 흉악함을 정당화하고 있는 사례가 더 있지 않을까?


타잔 - 10점
에드가 라이스 버로스 지음, 안재진 옮김/다우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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