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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서푼짜리 오페라>서글픈 한 마디... "돈이 세상을 지배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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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


<서푼짜리 오페라> ⓒ 열린책들

1988년에 일어났던 일명 '지강헌 사건'은 올림픽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았을 때 일어나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샀다. 사건의 대략은 이렇다.

 

당시 전두환의 동생인 전경환은 수십억 원의 사기와 횡령으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으나 2년 정도 실형을 살다가 풀려났다. 반면 지강헌 등은 상대적으로 낮은 죄질의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10~20년의 형량을 받았다.

 

이에 지강헌을 비롯한 12명의 미결수는 집단으로 탈주해 인질극을 벌이다가 자살하거나 경찰에게 사살당했다. 12명의 미결수 중 마지막 인질범이었던 지강헌은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들으면서 깨진 유리로 자기 목을 그었다. 그리고 곧바로 경찰의 총에 맞고 죽었다.

 

"돈 없고 권력 없이는 못 사는 게 이 사회다. 전경환의 형량이 나보다 적은 것은 말도 안 된다. 대한민국의 비리를 밝히겠다. 돈이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우리 법이 이렇다.“

 

"우선은 처먹고 나서야 다음이 도덕이라는 것을"


그의 절규에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가 연상된다. 극 중에서 노상강도단의 두목인 매키 메서()'두 번째 서푼짜리 피날레'를 감상해본다.

 

"정직하게 살고 죄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고 우리를 가르치는 신사 양반들. 우선 우리에게 먹을 걸 줘야지. 그럼 말할 수 있지, 그때부터 시작하라고. 당신들의 배때기와 우리의 정직함을 좋아하는 당신들 이것만은 꼭 알아 두길. 당신들이 아무리 둘러대고 속임수를 쓸지라도 우선은 처먹고 나서야 다음이 도덕이라는 것을. 가난한 사람들도 커다란 빵 덩이에서 자기 몫을 얻을 수 있어야지."(본문 중에서)

 

노상강도단 도목 매키 메서()는 거지 떼 두목인 피첨의 딸 폴리를 꾀어내 마구간에서 몰래 결혼식을 올린다. 너무나 단촐하고 성의 없는 결혼식 같지도 않은 결혼식이지만, 맥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폴리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뒤늦게 폴리로부터 이 사실을 알게 된 피첨 부부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이혼을 강요하지만, 딸이 말을 듣지 않자 그를 잡아들일 계책을 세운다. 매키 메서가 창녀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직업여성들로 하여금 매키 메서를 배신하게끔 하려는 것이었다. 사건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피첨 부인 : "내가 어떻게 좀 해보죠. 돈이 세상을 지배하니까요. 곧장 턴브리지로 가서 그곳 아가씨들 좀 만나 봐야겠어요. 그 신사가 지금부터 두 시간 이내에 한 여자를 만난다면 그는 곧장 경찰에 넘어갈 거예요."(본문 속에서)

 

하지만 맥에게는 절친한 '경찰총장' 브라운이 있었다. 그 둘은 젊은 시절부터 친구였고, 직업상 이해관계가 아주 다름에도 진정한 우정을 과시하고 있다. 맥이 어떤 부탁을 해도 브라운은 거절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 런던 경찰 관청에 맥의 반대 세력은 없고, 고로 맥은 절대 잡힐 일이 없는 것이다. 과연 피첨 부부는 맥을 잡을 수 있을까?

 

"돈이 세상을 지배하니까요"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매우 적나라하게 꼬집고 파헤치는 이 희곡의 초반을,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느끼고 이해관계가 완전히 달라도 신의와 우정을 지키는 모습으로 채운다.

 

자본주의의 폐해를 맛보지 못한 이들, 아직 자본주의의 지독한 현실에 발을 담구지 않은 이들을 보여줌으로써, 극의 전체적 스토리 라인을 극적이게 구성하고 극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극명히 보여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어쩌면 당연히 극의 후반부는 전반부와 완전히 반대되는 비극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맥을 위시한 노상강도단과 공생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창녀들은 피첨 부부에게 매수되어 맥을 밀고하고 만다. 하지만 다른 창녀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다. 맥이 무사히 도망가길 바라는 브라운과 폴리. 하지만 어이없게도 맥은 또 다른 여자의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맥이 도망친 날이 하필이면 여왕의 대관식 일자와 겹치게 된다. 이를 이용해 피첨은 브라운에게 쐬기를 박는 일화를 건넨다. 옛날 어느 나라의 여왕 대관식 때 일어났던 하층민에 의한 소란. 그 때문에 여왕이 경찰 책임자에게 내린 엄중한 벌. 이 말에 브라운은 오랜 세월의 우정과 신의를 한 순간에 져버리고 무조건 맥을 잡아 죽여야 하는,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죽여야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남들의 시선 때문에, 자신의 안위 때문에, 돈 때문에 행해지는 장인과 장모의 배신, 절친한 친구의 배신, 공생관계에 있던 창녀의 배신 등으로 점철된 맥의 인생. 하지만 이런 인생은 자본주의 하에서 너무나도 자주 일어난다.

 

사건의 시작과 끝은 '돈'


결정적으로 맥이 강도짓을 할 수밖에 없게 된 이유가 바로 돈 때문이 아닌가. 먹고 살아야 하니까. <서푼짜리 오페라>를 관통하는 사건의 시작이 돈이고 끝도 돈인 것이다.

 

맥은 교수형이 확정된 순간, 돈으로 간수를 매수해 위기를 탈출하려 한다.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은 시간에 1천 파운드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의 노상강도단 부하들은 제 시간에 오지 못하고, 그의 아내 폴리에게는 돈이 없다. 또한 그의 절친한 친구 브라운에게는 오히려 빚을 갚아야 하는 처지이다.

 

결국 그는 1000파운드를 구하기는커녕 브라운에게 38파운드의 빚을 갚고 교수형에 처해지게 된다. 하지만 그는 대관식을 기념한 여왕의 선처로 구원된다. 비록 실제 인생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말하면서.

 

"여러분은 몰락하는 계층을 대표해서 몰락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낡은 쇠막대로 구멍가게의 니켈 금고나 터는 소시민 수공업자들인데 대기업인들이 우리를 집어 삼키고 있습니다. 그 뒤에는 은행들이 버티고 있죠. 주식에 비하면 곁쇠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은행을 설립하는 것에 비하면 은행을 터는 게 무슨 대단한 일입니까? 한 사람을 고용하는 것에 비하면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대수입니까?"(본문 중에서)

 

1928년에 쓰인 이 희곡이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고 칼 같이 예리하다. 거즌 100년이 흐른 이야기지만 지금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여전히 세상은 돈이 지배하고 있고, 밥을 주지 않고 도덕을 지킬 것을 요구하며, 대기업은 소상인을 집어 삼키고 있다.

 

더 말해봐야 무엇하랴. 100년 동안 바뀌지 않은 이 거대한 시스템은 앞으로도 상당히 오랜 시간 지속될 것이기에. 그 안에서 힘없는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테니. 맥은 죽음의 문턱에서 여왕에게 구원받지만, 현실에서 그럴 일은 없으므로. 현실에서 그 끝은 비참함을 면치 못할 것이다.



"오마이뉴스" 2013.8.20일자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