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윗집 사람들>

미대에서 강사로 일하는 정아와 독립영화를 연출하다가 8부작 시리즈를 맡은 현수는 부부다. 하지만 각 방을 쓰는 건 물론 하루에 한 번 얼굴 보는 것도 여의치 않다. 와중에 윗집에선 매일 밤마다 광란의 성관계를 하는 듯 층간 소음이 심하다. 언젠가 한 번 진득하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윗집을 초대하기에 이른다.
한문을 가르치는 김선생과 정신과 전문의 수경은 부부다. 아랫집 부부에게 심각한 층간 소음을 유발할 만큼 육체적으로 격정적인 사이다. 그뿐만 아닌 듯한 건, 그들은 함께 요가를 즐기며 정신적으로도 격렬한 교감을 나누는 것 같다. 안 그래도 미안해서 언젠가 한 번 방문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부부, 그래도 어른이니 만큼 스몰 토크로 이어간다. 그런데 김선생이 정아를, 수경이 현수를 유혹하는 듯한 행동을 취한다. 정아와 현수는 당황한 듯 싫지는 않은 모습이다. 그러다가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했는지, 윗집 부부는 아랫집 부부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건네는데… 이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정우식 코미디, 그리고 욕망의 실험
하정우 ‘감독’은 2013년과 2015년에 이어 2025년에만 두 작품의 연출과 각본을 맡아 세상에 내놓았다. 첫 작품 <롤러코스터>만 제외하고 주연까지 도맡았는데 흥행에서 실패했다. 특히 그는 2020년대 들어 주연으로 분한 작품들도 거의 모두 실패하고 있으니, 하정우 수난 시대라고 해도 틀리지 않겠다.
와중에 가장 최근의 연출작 <윗집 사람들>의 경우 채 55만 명이 찾지 않은 극장 개봉 3개월 만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어 큰 화제를 뿌리고 있다. 연일 1위를 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파격적이면서도 은밀한 이야기가 주로 혼자 보는 OTT에서 잘 먹히고 있는 것 같다. 나아가 소위 흥행 실패한 기대작들이 빠르게 OTT에서 공개해 손실을 메우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 같다.
하정우는 연기 톤과 연출 톤의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2000년대 <용서받지 못한 자> <비스티 보이즈> <멋진 하루>의 그 톤, 짧은 호흡의 능글 맞은 농담조. 지질하지만 어딘가 사랑스러운 캐릭터.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지만 조금씩 호불호가 갈리는 듯하다. <윗집 사람들>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격렬하면서도 다양다층적인 성관계를 지향하는 윗집 부부의 김선생, 한문을 가르친다는 설정도 이채롭다. 그는 자신과 한마음 한뜻 한 몸인 듯한 아내 수경과 함께 아랫집 부부를 방문해 ‘공략’에 나선다. 아랫집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생활상과 가치관을 관철시키고자 함이다. 그들은 훼방꾼에 불과할까, 스승이 될 수 있을까.
현대 부부 관계에 던지는 불편한 질문
윗집 사람들의 행태는 다분히 비현실적이니 고유의 상징성을 띠고 있다. 한 집에서 살고 있으나 도무지 하나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아랫집 사람들로 하여금,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관계적으로든 변화가 가능한 골든타임에 '특단의 조치'로 어디선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다. 즉 윗집 사람들은 작금의 인간관계, 그것도 가장 긴밀하다는 부부 사이의 관계에 놓는 일침이다.
이른바 ‘현대적인 부부’는 서로 각자의 삶을 존중하며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점점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모든 게 멀어지며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어 간다. 과연 ‘현대적인 부부’는 괜찮은 걸까? 서로를 귀찮아 하며 언젠가부터 꼬여 버린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사라진 상태를 좋게 포장한 것뿐 아닐까?
영화는 코미디에서 시작해 드라마로 끝난다. 섹드립이 난무하며 파격적인 제안 후로 가라앉아 있던 감정이 폭발하고 말하지 못할 욕망이 튀어나오더니, 눈물을 쏟을 만큼의 감동을 선사한다. 하여 아랫집 사람들의 부부 상담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체계적이기 이를 데 없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윗집 사람들의 유머, 농담, 드립 등은 아랫집 사람들의 감정을 끄집어내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여러모로 독특하고 재밌는 영화다. 작금의 한국 영화 메인스트림에서 나오기 힘든 류의 영화다. 그러니 용기 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이왕 ‘끝’을 보여 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이를테면 섹드립과 농담의 끝 또는 감정 폭발과 감동의 끝을 말이다. 윗집 사람들처럼 영화 자체를 좀 더 열어 젖혔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럼 훨씬 더 재밌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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