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코트 스틸링>

행크 톰슨, 고등학교 때만 해도 성공이 보장될 만한 실력의 야구 유망주였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무릎을 트게 다친 후 야구를 그만둬야 했고, 1998년 지금은 뉴욕 변두리의 작은 바에서 바텐더로 일하고 있다. 그뿐이면 나쁘진 않겠지만 알코올 중독자의 삶을 살고 있다. 그는 비록 뉴욕에서 살고 있지만, 집안 대대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팬이기도 하다.
불의의 사고 당시를 악몽으로 자주 꾸지만 큰 탈 없이 살아가던 중, 옆집 친구 러스가 급히 집을 비우며 그의 고양이 버드를 맡긴다. 오래 지나지 않아 러스의 집을 이런저런 사람들이 드나드는데, 심상치 않아 보인다. 급기야 휘말려 크게 다치기도 한다. 사실 우연히 ‘열쇠’를 취득하는데 그것만 줘 버리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술을 이기지 못해 열쇠의 행방을 잊어버리고, 찾아오는 이들의 잔인성은 기하급수로 커진다. 꼬여 버릴 대로 꼬여 버리는 일, 행크는 자신과 하등 관련이 없는 이 일에서 도망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이젠 더 이상 다른 누구도 아닌 그의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정신을 차려 보니 그의 주위 사람들이 하나둘 피해를 보기 시작하는데…
범죄와 블랙코미디 사이, 뒤엉킨 사건의 쾌감
베니스 영화제 단골손님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 <더 웨일> 이후 3년 만에 <코트 스틸링>으로 돌아왔는데 큰 주목을 받지 못한 느낌이다. 흥행 실패는 그렇다 쳐도 평론 면에서 어마어마한 호평을 받진 못했으니 말이다. 그의 작품치고 평작 정도랄까.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에선 극장 개봉 아닌 넷플릭스 공개로 찾아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꽤 괜찮은 범죄 액션 스릴러 영화다. 블랙 코미디적 성격도 다분히 띠고 있어 풍성하다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오스틴 버틀러 원탑에 레지나 킹, 맷 스미스, 조이 크래비츠 등 굵직한 이름의 배우들이 열연했다. 대런의 작품치고 밝은 편이나 폭력 수위는 꽤 높아서 종잡기 힘들다.
혹은 종횡무진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행크가 겪는 연속다발적 사건들이 중구난방으로 튀지 않고 최소한의 개연성을 갖추고 있다. 그와 얽히고설킨 관계가 최소한 다섯 사람 혹은 무리이고 그들끼리 또 얽히고설켰으니,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몰입하고 있을 것이다.
와중에 영화의 핵심 인물(?)은 다름 아닌 러스의 고양이 버드인데, 빼어나게 귀여운 미모로 눈을 사로잡고 감탄을 불러온다. 그야말로 장면 전체를 지배한다고 할까. 상당히 잔인한 범죄 액션 스릴러이지만, 블랙 코미디적 요소들과 함께 버드의 존재가 부드럽게 마사지해 주고 있다. 대단한 존재감이다.
사고가 아닌 사건, 그리고 마주한 진실
영화의 표면은 행크가 엉겁결에 휘말린 범죄 이야기다. 사실 그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저 당해 버렸으니 말이다. 그러니 ‘사고’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문제는 정작 그는 죽을 것 같다가도 살아남지만 그의 주위 사람들이 하나둘 허무하게 죽어 나간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사고는 더 이상 사고가 아니게 된다.
영화의 진면목에는 행크의 트라우마가 자리하고 있다. 고등학생 유망주 시절을 끝장내 버린 그 사고, 행크와 친구가 자동차를 몰다가 그는 크게 다치고 친구는 즉사한 사건 말이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다리가 크게 다친 것만 인정하고 친구가 죽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다름 아닌 그가 운전하는 차량의 사고로 말이다.
시간이 흘러 그가 휘말린 사건으로 주위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걸 보고, 사고가 아닌 사건이었고 그는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 사건을 일으켰으며 예전 그 친구가 죽은 것도 지금 주위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도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고 깨닫는다.
영화의 제목인 ‘코트 스틸링’은 야구 용어로 주자가 도루를 시도하다가 태그 아웃당하는 걸 뜻한다. 훔치다가 딱 걸렸다는 것이다. 영화의 내용을 보면 다분히 중의적인데, 남의 것을 자의든 타의든 훔쳤을 때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한편 기억에게서나 삶에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기도 한다. 여러모로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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