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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10년의 사랑, 마지막을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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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위 리브 인 타임>

 

영화 <위 리브 인 타임> 포스터.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자신의 식당을 이끌며 앞으로 달려가는 여자 알무트, 이혼의 상처로 잠시 머물러 있는 남자 토비아스. 토비아스는 시리얼 브랜드 위타빅스에서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데, 어느 날 회사 일로 정신없는 와중에 도로에 나왔다가 차에 치인다. 그를 들이박은 이는 다름 아닌 알무트, 처음 대면한 그들은 사랑에 빠진다. 육체적으로 빠져든 그들, 곧 함께하기로 한다. 
 
토비아스는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반면 알무트는 꺼려한다. 토비아스의 간절함이 전달되었는지, 합심해 아이를 갖기로 한 그들. 난소암 판정을 받은 알무트는 난소 절제술을 선택한다. 완치 후 힘겹고도 힘겹게 임신에 성공하고, 말도 안 되는 출산 과정을 통해 딸 엘라를 낳는다. 이제 이룰 건 모두 이룬 것 같은 그들, 함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며 따로 또 같이 자아실현을 위해 나아간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그들을 뒤덮는다. 
 
알무트의 난소암이 재발한 것이다. 의사는 담담하게 말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걸. 그녀는 얼마나 남은 지 알 수 없는 시간을 허비하기 싫다. 딸에게 쇠약한 모습을 남기기 싫다. 환상적인 일을 하며 남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하여 그녀는 세계 최고의 요리 대회에 참가하기로 한다.

 

시간과 기억을 뒤섞은 파격적 로맨스

 

영국 영화 <위 리브 인 타임>은 현지 개봉 1년 반 만에 한국에 상륙했다. 지각 개봉이라고 할 만한대, 제작진과 출연진의 면면을 보면 왜 이렇게 늦었는지 이해가 잘 안 된다. <보이 A> <브루클린> <더 골드핀치> 등으로 유명한 존 크로올리 감독의 최신작으로, 플로렌스 퓨와 앤드류 가필드가 주연으로 활약했다. 또한 영화 자체가 상당히 독특하고 자극적인 부분도 적지 않다. 
 
알무트와 토비아스의 10년을 크게 3개의 시기로 나눠 보여 주되, 그야말로 '뒤죽박죽'으로 섞었다. 시간 순이 아닌 의식의 흐름에 따랐다고 할까. 하여 전혀 다른 시기의, 서로 연관되어 있지 않은 장면들이 이어진다. 영화로선 당황스러울 수 있으나, 실제 삶에 있어 기억은 절대 순서대로일 수 없다. 자신도 통제할 수 없이, 기억은 중구난방으로 튀어나와 행복의 순간으로 이끌고 괴롭히기도 한다. 
 
영화는 상당히 파격적인데, 알무트와 토비아스의 배드신부터 만삭의 알무트와 토비아스가 함께 알몸으로 욕조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장면 그리고 하이라이트이자 근래 보기 힘든 충격적인 장면도 연달아 나온다. 주유소 화장실에서 의사나 간호사의 도움 없이 아이를 출산하는 장면 말이다. 이런 파격적이고 자극적일 수도 있는 장면들이 아름다워 보이는 건 연출의 힘 덕분일 것이다. 
 
지극한 우연에서 시작된 사랑, 하지만 이후 그들은 함께 필연의 사랑으로 나아간다. 난소암 판정-임신과 출산-난소암 재발-요리 대회 출전-죽음까지 이어지는 10년의 시간이 길지만 짧은 듯 느껴지는 건 편집의 힘 덕분일 것이다. 정신 차리지 않고 보면 내용을 정확하게 캐치하기 힘들지만, 굳이 시간의 퍼즐을 맞춰 보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보면 좋지 않을까 싶다. 시간의 마법이랄까, 기억의 마법이랄까.

 

죽음을 앞에 두고, 삶을 선택하는 용기

 

알무트는 머지않아 필연적으로 다가올 죽음에 대항하여 살고자 의학적 기술에 기대 삶을 연명하기보다 현실에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죽음을 거부하는 본능에 반해 삶에 오롯이 천착하는 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아가 그녀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 것인지, 즉 토비아스와의 사랑의 결실인 딸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았으면 하는지 생각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하여 이 영화는 미래지향적임과 동시에 과거지향적이다. 알무트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 자신이 어떻게 기억될지를 생각하니 미래지향적이랄 수 있지만, 알무트와 토비아스의 10년을 오롯이 담아 내려했기에 과거지향적이랄 수 있다. 지나온 세월이 모든 면에서 충만했기에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하는 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정리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삶의 마지막 나날을 어떻게 보냈으면 하는가, 나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었으면 하는가, 지나온 시간들이 충만했는가. 이 만만치 않은 로맨스 영화가 건네는 질문들은 하나같이 인생을 관통한다. 아름다운 죽음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아니 오히려 아름다운 삶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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