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텅 빈 모든 방>

"미래의 나에게. 세상에, 고등학교라니. 평생 이날만 기다렸어. 긴장하지 마, 넌 평생 갈 친구들과 적들도 만나게 될 거야. 부정적인 데 신경 쓰지 마. 넌 이겨낼 거야. 함께하면 행복한 사람들은 지키고 아닌 사람들은 버려, 하하. 물론 예쁜 옷을 입어야지. 사랑해, 행운을 빌어. 과거의 그레이시가."
그레이시 앤 뮐버거가 미래의 자신에게 쓴 편지다. 하지만 그 편지는 미래의 그레이시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그녀는 2019년 11월 14일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리타의 서거스 고등학교 총격 사건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텅 빈 방은 그녀의 부모가 생전 그대로 관리하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단편 다큐멘터리 <텅 빈 모든 방>은 학교 총격 사건으로 숨진 아이들의 방을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을 이어가는 CBS 스티브 하트먼 기자와 루 보프 사진기사의 작업 여정을 따라간다. 하트먼은 1997년 처음으로 학교 총격 사건 보도를 맡았는데, 이후 사건은 연 17건에서 132건으로 늘었다.
영웅의 이야기 대신, 남겨진 방으로
스티브 하트먼은 오랫동안 학교 총격 사건 직후 영웅에 대해, 한마음이 된 미국에 대해 다뤘다.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너무 오래 하니 자기 복제를 하는 느낌이 강했고, 무엇보다 미국 자체가 학교 총격 사건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잊기 시작했다는 걸 체감했다. 그는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렇게 하트먼은 학교 총격 사건에서 목숨을 잃은 아이들의 ‘텅 빈 방’에 관한 뉴스 에세이를 7년 넘게 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국에선 그의 에세이를 내보내지 않았다. 슬프고 슬프며 슬플 것이기 때문에 시청률이 나오지 않을 터였다. 이 다큐는 그의 뜻깊은 작업을 차분히 따라간다.
도미닉 블랙웰 또한 서거스 고등학교 총격 사건의 희생자다. 그의 빈 방은 느낌이 좋다. 방의 주인이 활달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인다. 그의 엄마는 지저분한 옷조차 그대로 남겨 방에 블랙웰만의 냄새가 계속 있어 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추모하고 있고, 보프는 있는 그대로를 사진으로 남긴다.
침묵으로 말하는 다큐멘터리
그들이 행하는 작업 자체는 단순하다. 학교 총격 사건의 희생자 유족을 찾아, 더 이상 세상에 없는 아이들의 살아생전 방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경우 사진으로 찍는 것이다. 나아가 이 작품도 단순하다. 그들의 작업 몇 차례를 따라다니며 촬영한 것이다. 그러니 단편임에도 상당한 여백이 보인다. 하지만 밀도가 엄청나다.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하트먼은 이 작업을 통해 ‘미국’을 다시 비추고자 한다. 학교 총격 사건에 무뎌진 미국, 선정주의 혹은 교훈주의에 빠진 미국, 총기 규제가 정치적 논쟁거리로 전락한 미국을 말이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침묵’ 또는 ‘고요’다. 말로 옮기지 않고 보여줌으로써, 그것도 텅 빈 방을 보여줌으로써 누구보다 격렬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스카 후보에 오른 바 있는 조슈아 세프텔의 정교하고 절제된 연출이 빛을 발한다. 한 점 흐트러짐 없이 하트먼의 생각, 자세, 프로젝트를 보여주고 일말의 자극도 허용하지 않는다. 하여 텅 빈 공간 자체가 말을 전하고 하고 작품을 보는 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
텅 빈 방에 서게 한다면, 세상은 달라질까
<텅 빈 모든 방>은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다큐멘터리상 부문에 최종 노미네이트되었고 강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텅 빈 방을 들여다보고 사진을 찍고자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는 프로젝트, 그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힘들고 괴롭다고 한다. 학교 총격 사건이 늘어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사건은 빠르게 잊히지만 이제 그 방이 존재한다는 걸 아니까.
하트먼은 말한다. 모든 미국인을 단 몇 분만이라도 그 방, 텅 빈 방에 서 있게 하고 싶다고, 그럼 미국은 다른 나라가 될 거라고 말이다. 결국 이 프로젝트는 학교 총격 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한편 미국을 보다 인본적으로 바꾸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비록 매우 조용하지만 이보다 더 근본적이고 거대하기도 힘들다.
기억하고 추모하는 건 개인의 일로 치부되기 쉽다. 개인이 일으킨 일에 개인이 당했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적어도 동일한 종류의 사건이 계속 일어나는 건 사회의 책임이 크다. 미국의 학교 총격 사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더 이상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조용하지만 강력하고 확실한 대응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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