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스트링어: 그 사진은 누가 찍었나>

1972년 6월 8일 베트남 짱방,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남베트남 공군 스카이레이더 공격기가 표적을 잘못 설정해 아군 지역을 폭격한다. 혼비백산한 병사와 민간인들이 도망친다. 그 광경을 영상과 사진으로 찍는다. 그렇게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진 중 하나인 <전쟁의 공포>, 이른바 '네이팜 소녀'가 전 세계로 퍼진다. 사진을 찍은 닉 웃은 퓰리처상과 세계보도사진상을 수상하며 전설을 쓴다.
그렇게 50년이 지난 2022년, 1972년 당시 AP 통신 사이공 지사의 사진 편집자로 일했다는 칼 로빈슨이 주장하길 <전쟁의 공포>를 닉 웃이 찍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메일을 받은 프랑스의 저명한 사진기사 게리 나이트는 칼의 충격적인 주장을 듣고 진위 여부를 가리고자 베트남으로 향한다. 그렇다면 그 사진은 누가 찍었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스트링어: 그 사진은 누가 찍었나>는 지난 2025년 1월 선댄스 영화제에서 공개된 후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사자라고 할 만한 AP에서 자체 조사에 들어가 방대한 보고서를 내놨고 세계보도사진협회 또한 자체 조사에 들어가 <전쟁의 공포> 저작자 이름에서 닉 웃을 삭제했다.
<전쟁의 공포> 현상 현장에 있었던, 칼 로빈슨
작품은 게리 나이트가 진두지휘하며 크게 3명의 입장을 보여주려 한다. 칼 로빈슨, 그리고 닉 웃이 아닌 당시 AP 통신의 사이공 지사 책임자 호스트 파스, 스트링어까지. 우선 칼 로빈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주지했듯 그는 1972년 당시 AP 사이공 지사의 사진 편집자였고 6월 8일 당시 사진 현상 현장에 있었다.
그는 호스트 파스로부터 명령을 받길, 어느 스트링어가 찍은 사진 <전쟁의 공포>의 사진기사 이름을 닉 웃으로 바꾸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이튿날 사진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고 닉 웃의 명성도 만방에 떨쳤다. 칼은 차마 진실을 밝힐 수 없었고 50년간 속앓이를 해왔다고 한다.
의문이 남는다. 그는 왜 지금에서야 진실을 밝히려 하는가? 관련자들이 많이 죽고 없는 지금에서야? 그가 말하길,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을 계속 해왔지만 AP의 협박이 있었고 닉 웃은 범접할 수 없는 명성을 쌓았으며 무엇보다 진실을 밝힌 이후의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전쟁의 공포>의 배후 인물, 호스트 파스
의외의 인물 호스트 파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났기에 본인한테 들을 수는 없었다. 살아생전, 특히 1972년 6월 당시 그는 AP의 전설적인 사진기사였다. 이미 베트남전쟁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거니와, 탁월한 심미안과 카리스마 어린 판단력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리더였다.
그러나 그가 굳이 닉 웃을 픽한 건 의외로 인정주의적인 이유가 있었다. 닉 웃의 형도 AP에서 사진기사로 일하며 호스트한테 인정받았는데 베트남전쟁을 취재하는 도중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에 호스트는 그의 동생인 닉 웃에게 큰 걸 베풀고자 했고 역사에 길이남을 사진의 주인 자리를 준 거라는 것이었다.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지만 일리는 있어 보인다. 호스트라는 사람이 상당히 복잡다단한 인물이었다고하니 어느 정도 수긍이 가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그 사진을, 역사적인 사진을 찍고 아무것도 받지도 누리지도 못했을 그 스트링어에겐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게 아닌가?
스트링어 웅우옌 탄 응에, 그리고 저작의 윤리
마지막으로 <전쟁의 공포>, 일명 ‘네이팜 소녀’를 찍은 당사자, 스트링어 웅우옌 탄 응에의 이야기를 들어볼 시간이다. 스트링어는 신문사의 비상근 기자, 즉 프리랜서 기자를 가리킨다. 응에도 당시 수많은 스트링어 중 한 명으로, 20달러를 받고 사진을 넘겼다고 한다. 생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그러나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 작품은 게리 나이트가 웅우옌 탄 응에를 찾아 나선 여정을 표면적 이야기로 다룬다. 50년 전의 이야기를, 증거나 증인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닉 웃이 <전쟁의 공포>를 찍지 않았다는 걸 밝히는 한편 <전쟁의 공포>를 찍는 스트링어를 밝혀야 하니 어려움은 배가될 것이었다.
당대 관련자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과학적으로까지 밝혀낸 바, 닉 웃은 물리적으로 <전쟁의 공포>를 찍을 수 없었다. 하지만 AP는 완벽하게 결정적인 증거가 아니라고 반박했고 닉 웃 또한 일련의 의혹에 반박했다. 응에를 찾지 않았다면 이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라 본다. 그러니 결국 응에를 찾아서 만나고 이야기를 듣지 않았을까?
<전쟁의 공포>의 상징성과 위대함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베트남전쟁의 유해함을 전 세계 만방에 알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작품을 정녕 누가 찍었는가를 밝히는 건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일 수 있다. 결국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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